경제성장률 높인다 vs 저성장은 계속된다 : 4차산업혁명과 경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세계가 저생산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3% 성장도 허덕이는 산업혁명, 과연 말이 될까요?
‘전후 황금기’ 눈부신 성장
선진국들을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약 20~30년 동안의 이른바 ‘전후 황금기’에 가장 성장이 빨랐습니다. 미국 같은 선진국도 무려 4%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요. TV나 자동차 등과 같은 2차 산업혁명의 발명품들이 급속히 확산되던 시기였고요. 이른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중반 선진국에서 1차 오일쇼크1973년를 전후하여 경제성장률과 생산성 증가율의 추세적 감소와 탈산업화로 인한 제조업 고용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응하는 시기는 대략 1990년대 중반쯤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진국의 1970년대 초처럼 고성장이 꺾이는 시기가 1997년 외환위기와 맞물리게 되죠.
PC혁명과 생산성 역설
1980년대에 들어와 PC가 발명되면서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IT 기술이 급속하게 확산되고요.
문제는 이것이 1970년대 이후의 저성장을 극복하고, 과거의 고성장을 다시 회복시켜주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몸으로 생산성 향상을 체감했는데도 불구하고, 생산성 및 GDP 통계상으로는 1980년대에 그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Robert Merton Solow가 한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컴퓨터 시대가 모든 곳에 도래했으나 오직 생산성 통계에서만은 그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이유에 관한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 가설은 생산성에 미치는 효과가 지연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PC의 도입과 IT 기술의 확산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학습 및 적응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기술혁신 초기의 과도기에는 생산성을 증가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 그럴 듯한 것이, 1990년대 들어서 인터넷이 확산되고 닷컴 버블로 불리는 엄청난 호황이 오면서 생산성 통계 수치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970~80년대에 침체를 보이던 미국의 경제성장률과 생산성 증가율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다시 반등하게 됩니다. 실리콘밸리의 IT 기술혁신이 그러한 반등을 주도한 것으로 여겨지지요. 드디어 ‘솔로의 생산성 역설’이 깨진 것이지요.
GDP와 생산성의 과소추정 문제
두 번째 가설은 생산성 통계가 IT 기술의 공헌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산성은 산출량/투입량인데, 산출량은 결국 시장가격을 1차적 기준으로 측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IT 기술의 효용이 화폐가치로 측정이 잘 안 된다면 어떡하죠? 예를 들어 IT 기술이 소비자에게 높은 만족을 주지만 아주 낮은 가격, 심지어 공짜로 제공된다면 매출은 0이 됩니다. 그러면 생산성과 GDP에 미치는 기여도가 0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구글 검색은 소비자에게 공짜로 제공되며, 구글은 광고주에게만 돈을 받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GDP 통계에 반영되는 부분은 광고주에게서 받은 돈만큼이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효용은 구글의 광고비 매출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GDP 통계가 IT 기술의 효용을 과소 추정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맞다’는 것이 다수론이고, 아예 ‘저성장이란 GDP 측정 오류로 인한 허구’라고까지 주장하는 것은 소수 의견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정확히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려서 구조적 장기침체를 탈출하게 할 수 있을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고, 아직까지는 전망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봅니다.
IT 기술의 발전이 매우 혁신적이지만, 부가가치 기준의 GDP로 환산되기 힘들다는 것을, 매트 리들리는 『이성적 낙관주의자』라는 책에서 ‘전구의 역설’이라는 논리로 설명하는데요.
과거 고래기름으로 조명을 밝힐 때에는 비용이 엄청 비쌌지만 조도는 형편없었지요. 이것이 등유와 전구로 발전해감에 따라서 비용은 크게 줄어들고 실제 조명효과는 수백 배 커졌습니다. 이처럼 효용은 엄청나게 커졌지만, 조명 비용이 엄청 싸졌기에 GDP에 아주 작게 반영되었다는 것이지요.
기술진보 효과가 소비자 후생증대로
기술진보로 인한 효용 증대가 생산자의 수익 확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소비자 후생 증대로 갔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소비자잉여가 증가한 것입니다. 소비자잉여란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사는 데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대가격과 그 물건의 실제가격사이의 격차를 말합니다.
전구의 경우, 기존의 등유나 고래기름 조명보다 더 비쌌더라도 당시 소비자들이 기꺼이 살 의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구 비용이 오히려 등유나 고래기름보다 가격이 낮았고, 이 차이가 소비자잉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격하락으로 인해 매출액이 감소하는 경우에는 소비자 후생 증가에도 불구하고, GDP는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나옵니다.
4차 산업혁명은 미 소비자의 후생에 다양하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비자의 후생 증대가 과연 얼마만큼 GDP 증가로 반영될지는 아직 알기 어렵습니다.
이런 식의 GDP 인식 오류는 과거에도 똑같이 있었고, 오히려 더 컸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IT 기술 수익 내기 어렵다?
맞습니다! GDP 통계가 이렇게 기술진보의 효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성장 저평가 현상이 과연 IT 혁명 때에만 나타난 것인가? 그 이전의 고성장 시대(예 :1960년대)에도 똑같이 그랬던 것 아닌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재반론으로, 특히 IT 기술은 자동차나 냉장고와 같은 과거의 신기술들보다 상업적인 수익으로 연결되기가 더 어려운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IT 서비스의 경우 유료화를 하더라도 돈을 안 낸 소비자를 가려내어 배제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에, 구글 검색처럼 거의 공짜로 제공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 종이신문 시절에는 구독료를 낸 사람만 신문을 보는 것이 당연했지만, 인터넷 시대로 오면 언론사 홈페이지나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를 공짜로 보는 것을 다들 너무나 당연히 여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언론산업이 침체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뉴스 기사의 소비량이 줄어들어 다들 보지 않는 것은 아니고, 인터넷 포털을 통해 여러 신문사의 기사들을 골고루 찾아보고 SNS에서 공유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서비스가 이처럼 무료화되면서 소비자는 더 많은 서비스를 향유하는데, 서비스 공급자의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거나 정체되는 패턴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어져서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서비스 같은 경우에는 구글 번역기나 네이버 파파고 번역기처럼, 기존 서비스의 고객만족을 위하여 공짜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포스트는 『4차 산업혁명, 당신이 놓치는 12가지 질문』(남충현, 하승주)를 바탕으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