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상식, 실무면접에도 통하는 만능 논술 노트, 어떻게 만들까?
논술, 상식, 실무면접에도 통하는 만능 논술 노트, 어떻게 만들까?
숱한 탈락에서 합격 릴레이로! 그 비결은?
언론고시에 처음 발을 들인 건 2009년이고, 빠져나온 건 2010년 12월이다. 그러니까 거의 2년 가까이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한 셈이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떨어졌다. 필기시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언론사는 서류전형 이후에 치러지는 2차 필기시험에서 지원자의 90% 이상을 떨어뜨린다. 글쓰기가 궤도에 오르지 못하면 아무리 시험을 쳐도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도 정말 지겹게 떨어지다가 겨우 경제매체 머니투데이에 입사했다. 이로써 첫 번째 ‘지망생’ 기간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돌아왔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생각 못하듯, 2년을 떨어졌던 기억을 가볍게 생각하고 다시 ‘기자 지망생’이 되었다. 이때가 바로 돌아온 지망생 기간이다. 2012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총 7개월이다. 준비 기간은 첫 번째 지망생 기간의 절반도 안 되었는데 ‘돌아온 지망생’ 기간엔 합격 릴레이였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개인적인 이유로 최종 면접 자체를 안 가기는 했어도 최소 필기전형에는 90% 이상 합격했다.
기자로 활동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았던 게 시험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내 옆에 항상 ‘노트’ 한 권
시험장에서 머릿속에 넣어둔 글감을 찾아 꺼내는 일은, 사계절 옷이 한 데 뒤엉켜 있는 옷장에서 얇은 여름 티셔츠 하나를 꺼내는 일 같았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글감을 넣지 못한 글은 뜬구름 잡는 것처럼 허황되었다. 떨어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돌아온 지망생 기간에 나는 내 기억력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버렸다.
나는 철저하게 기록했다. 신문을 읽든 책을 읽든 지하철에서 상념에 빠지든, 모든 내용을 기록했다.
책상에 노트를 펴두는 사소한 행동은 생각보다 많은 걸 달라지게 했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마음가짐이었다. 노트를 채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설렁설렁 읽던 책을 눈에 불을 켜고 보게 됐다. 글감을 찾아야 노트에 적을 게 생기니 말이다.
자연스럽게 텍스트를 읽는 시간의 집중도가 달라졌다. 두 손 놓고 읽을 때는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막상 ‘내 말’로 요약해서 쓰려니까 영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잘 요약하려면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더 완벽하게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다리 꼬고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공부하던 나는 어느덧 책상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
노트는 금방 채워졌다. 그만큼 탐욕스럽게 글감을 모았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노트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었다. ‘이 주제가 나오면 꼭 이 글감을 써먹어야지’라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노트에 정리한 내용을 내 머릿속 서랍에 넣는 과정이었다.
노트에 기록만 하고 거들떠보지 않으면 시험 시간에 떠오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텍스트를 읽고 요약해 정리하는 시간이 말짱 도루묵이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기 전 10~15분씩 이 노트를 반복해서 읽었다. 시험장에서도 이 노트만 들여다보았다.
여행가 한비야는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라고 했다. 무릎을 쳤다. 돌아온 지망생 기간, 글치를 탈출했던 노하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거다. 시험 글쓰기에서는 무엇보다 ‘기록’이 중요하다. 누가 더 차곡차곡, 체계적으로 글감을 정리해두는지에 따라 합격과 불합격이 갈린다. 희미한 연필자국이 또렷한 차이를 만든다.
자, 이제 ‘만능 논술 노트’를 만드는 3대 원칙을 소개한다.
1. 활용에 최적화된 형태로 정리하라
만능 논술 노트는 ‘글감 서랍’이다. 서랍에 물건을 정리하듯, 글감을 주제별로 정리해 두는 것이다.
일단 꽤 도톰한 대학노트 한 권을 준비한다. 이 노트를 정치·경제·사회·문화로 4등분 한다. 이때 모두 같은 분량으로 나눌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이슈는 경제와 사회 이슈가 가장 많다. 이를 감안해 경제·사회 섹션은 좀 넉넉하게, 문화 섹션은 좀 얇게 분량을 나눠둔다.
섹션 하나를 다시 여러 개의 소주제로 나눈다. 예컨대 정치 섹션이라면 개헌·대통령제·북핵·사드 같은 굵직한 이슈만으로 5~10개 정도를 추려, 한 개당 5페이지 정도를 할당해서 글감을 채울 공간을 마련해두는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비워놓은 서랍에 글감을 차곡차곡 넣어두는 일이다. 신문이든 잡지든 논문이든 책이든 상관없다. 글감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기록하자.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텍스트를 읽으면서 사례, 비유, 통계, 명언, 새로운 사실 등의 범주에 속하는 글감을 찾으면 이를 메모하면 된다.
다만 기록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활용하기 가장 쉬운 형태로 기록하는 것이다. 기껏 시간을 들여 텍스트를 읽었는데 결정적 순간에 활용하지 못하면 너무 아깝다. 이 글감이 어떤 주제의 글에, 서론·본론·결론 중 어디에 들어가면 가장 빛날지, 어떤 문장으로 표현해야 말하려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까지 모두 기록해 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메모만 보면 ‘법치주의’에 대한 글 ‘서론’에 활용할 만한 글감이며, 『법을 보는 법』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라는 여러 사실을 알 수 있다.
2. 노트북 대신 손으로, ‘내 말’로 정리하라
‘내 말’로 바꿔 적는 건 그냥 옮겨 적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 말로 적으려면 내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하게 요약하고 표현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숱한 어휘 중에 무엇이 제일 적합한지 골라야 하고, 이를 이리저리 배치해 문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베끼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인 작업이다.
특히, 좋은 점은 두뇌가 글을 쓰는 모드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뇌는 참 나태해서 쓰기보다 읽기를 좋아한다. 이 관성을 깨는 데 ‘내 말로’ 메모하는 행위만큼 효과적인 게 없었다.
시험을 준비하다 만난 동료 중엔 노트북으로 논술 노트를 만드는 지원자도 있었다. 예컨대 ‘재벌 개혁’을 주제로 기획 기사, 사설, 단행본, 논문을 모두 모아서 수십장에 달하는 자료를 모아두는 것이다. 그러나 Copy & Paste(복사와 붙여넣기)로 만든 자료가 직접 손으로 써서 만든 자료와 같을 순 없다. 시험 전에 훑어보기에는 분량도 너무 많다. 그래서 최대한 압축된 형태로, 내 손으로, 나의 언어로 정리하는 걸 추천한다.
3. 출처를 명확히 정리하라
마지막 원칙은 ‘정확한 출처’다. 부정확한 정보를 글에 사용해 신뢰도를 떨어뜨리거나,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재료를 잘못 인용해 채점자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신문에서 본 글감이라면 최소한 ‘몇 월 며칠 ○○일보’라고는 적어두자. 책에서 본 내용이라면 ‘제목과 페이지 수’는 기록하자. 우리가 보는 모든 시험의 채점자는 그 분야에서 최소 10년 이상을 일한 베테랑이다. 이들은 부정확한 데이터나 발언을 귀신같이 잡아낸다.
잘 만든 논술 노트는 만능이다
논술 노트에 ‘만능’을 붙인 이유도 비슷하다. 논술을 위해 만들었지만 시사상식, 실무 면접, 토론까지 여러 전형에 두루 쓸모가 있다.
시중에 출간된 상식 시험 대비 책들은 설명이 단편적이거나 빈약한 경우도 종종 있지만 논술 노트에 정리한 상식은 ‘내 말’로 적었기에 메모만 봐도 맥락이 살아난다. 상식 책이 단순 암기라면, 논술 노트는 선先 이해, 후後 암기에 더 가깝다.
면접 대비에도 도움이 된다. 노트에 적어둔 다양한 소주제 중 시험에 출제되는 건 결국 하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주제들에 대한 글감이 아무 소용없어지는 건 아니다. 실무 면접에서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조선일보 면접에서 진주 의료원 폐업에 대한 찬성·반대 입장을 밝히라는 질문을 받았다. 논술 노트에 정리해둔 주제였다. 이 문제가 나오면 쓰려 했던 글감을 말로 풀어내 답변했다.
‘만능 논술 노트’는 시험 글쓰기를 위한 최적화된 공부법이라 자신한다.
이 포스트는 『뽑히는 글쓰기 : 시험에 통하는 글쓰기 훈련법』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