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을 개척할까? 상권에 올라탈까 : 사업자 유형과 상권의 관계
상권을 개척할까? 상권에 올라탈까 : 사업자 유형과 상권의 관계
강남역의 경우 임대료가 높아서 다른 곳에서 이미 성공하거나 아주 인기 있는 아이템들만 자리해 있다. 즉, 그곳에 입점하는 사업주는 리스크 회피형이라고 할 수 있다. 탄탄하게 확보된 유동인구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다른 곳에서 이미 성공한 아이템과 모델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리스크 추구형 자영업자들도 있다. 이들은 유동인구도 별로 없는 곳에서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매우 독특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처음 자리한 상점의 위치를 보면 ‘대체 누가 알고 찾아오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런 곳은 임대료가 낮기 때문에 리스크 추구형 사업자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좋다.
상권 개척자 리스크 추구형
리스크 추구자들이 만들어낸 상권은 독특한 분위기와 새로운 아이템들이 많다. 덕분에 새롭고 차별화된 것에 충분한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래서 이들이 모여드는 곳은 곧 뜨는 상권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상권 성장에 기대는 리스크 중립형
적막했던 상권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활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선구자들에 기대어 부수적인 효과를 얻고자 하는 사업자들이 상권에 진입한다. 이미 독특한 것을 찾는 소비자들이 유입되는데다가 아직 임대료가 크게 높지 않으므로, 상권 발달로 인한 수혜로 매출을 높일 수 있고 권리금의 상승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리스크 중립자(risk-neutral)라고 하자.
리스크 중립자들이 진입하면서부터 상권의 발달이 가속화된다. 이러한 상권은 주로 다가구주택 밀집 지역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진입은 기존 거주민들을 몰아내는 효과를 가져온다. 상점과 유입인구가 더 늘어나면서 매우 유망한 상권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리고 임대료도 점점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이 단계가 되면 리스크 추구자들이 점차 이탈하기 시작한다. 애초에 그들은 낮은 임대료에서만 가능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만약 높은 임대료를 감내할 수 있다면 사업을 좀 더 이어가겠지만, 거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리스크 중립자들은 리스크 추구자들보다 좀 더 많은 자본과 덜 실험적이고 다소 모방적인 업종과 아이템을 운영하므로 높아지는 임대료를 감내할 수 있다. 또한 애초부터 상권의 성장이 가져오는 효과를 기대했기에 임대료를 좀 더 감당하고서라도 사업을 유지할 유인이 충분하다. 또한 임대료의 상승으로 인해 수익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권리금이 크게 오를 것이라 예상하는 경우 영업을 더 붙들고 있을 유인이 된다.
발달된 상권에 의지하는 리스크 회피형
상권이 이 단계를 넘어서는 경우, 리스크 회피자들이 진입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잘 발달된 상권의 풍부한 유동인구에 기대어 어디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아이템을 들여와 사업을 한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들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이들이 진입하는 시기는 보통 최초의 리스크 추구자들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시점과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높은 임대료를 제시하는 식으로 그 자리를 교체한다.
리스크 회피형의 사업 아이템은 아무런 흥미도 관심도 일으키지 못한다. 예를 들어 번화가라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새로 생겼다 해서 새삼 이목을 끌 수 있을까? 새로운 것을 찾아서 리스크 추구자들이 만들어낸 상권을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식상함을 더할 뿐이다.
상권 침체의 진짜 주범은 누구인가
혹자는 이런 현상을 대기업 프랜차이즈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울시는 뚝섬 일대에 프랜차이즈 빵집과 카페의 진입을 규제한 바 있다. 물론 리스크 회피자들이 손대는 아이템에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막는다고 해서 이들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행을 타고 들불처럼 번져간 아이템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는가. 이런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리스크 회피자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대신에 이런 유행 아이템들이 길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거야말로 또 다른 흉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리스크 추구자들이 만들어낸 특색으로 인해 성장한 상권에 리스크 회피자들이 범람할 경우, 이 상권은 더 이상 다른 상권에 비해 우위를 가지지 못하고 쇠퇴할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 가게의 비율이 매우 높아질 때의 또 다른 문제점은 진입장벽이다. 리스크 중립자들이 진입한 이후 권리금이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리스크 회피자들이 들어오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결국 이들이 실패하고 떠난 자리에 올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리스크 회피자들뿐이다. 즉, 상권의 발달과 더불어 높아지는 권리금이 또 다른 진입장벽이 되어 리스크 추구자들의 진입을 제한하고, 그로 인해 쇠퇴하는 상권이 반전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상권 침체의 원인이 임대료를 올리는 임대인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그들에게도 원인이 있으나, 사업자 자체도 상권을 침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포스트는 『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