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짜 남자가 되는가? : 아이언 존의 질문
어떻게 진짜 남자가 되는가? : 아이언 존의 질문
덜 자란 남자아이
소년은 대체 언제 자라서 남자가 되는 걸까. 아직은 말갛고 뽀얀 소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숱한 가능태들이 숨겨져 있는 존재들이라니,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이라니.
갓 피어나기 시작한 이성은 질주하는 호르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쉽게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한다. 생명은 어릴 땐 그저 아름다운 것 같다. 그런 어린 사람들을 보면 이젠 길을 잃어도 된다고, 가보고 싶은 길로 가봐도 된다고 토닥거려주고 싶다.
남자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들기까지 오래 걸렸다. 늘 피하고 경계하든가, 늘 대적하고 맞서든가, 아니면 늘 사랑해달라고 보채야 하는 대상이었다. 다 큰 어른 남자 중에는 부드럽지만 강하고 인자한 사람으로 성장한 사람도 있지만, 채 다 자라지 못해서 산만 한 덩치 속에 작고 불안한 자아가 숨어 있는 사람들이 섞여 있다. 아니, 어쩌면 성숙해 보이는 남자들 속에도 작고 불안한 소년은 어김없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위기의 순간에 이 어린 소년은 불에 데기라도 한 듯 튀어나온다. 드물지만 정말 자신을 열어 보일 줄 아는 남자들은 이 소년을 불러서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답은 소년에 있더라. 앞으로 자랄 말간 남자아이들, 그리고 아직 덜 자란 어른 남자 속에 숨어 있는 남자아이들, 이 작은 모습들을 들여다보면 남자라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이언 존」은 소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년이 어떻게 자라 남자가 되는지, 남자 어른 속의 덜 자란 남자아이는 대체 무엇을 놓쳤길래 다 크지 못한 건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무의식 속 본능을 추스르는 법
사춘기에 접어든다는 건 소년 속의 숲이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힘과 생명은 꿈틀대며 눈을 뜨고 기어코 숲 밖까지 넘쳐나 살생을 할 수 있을 만큼 폭발한다. 두려운 힘이다. 이 힘이 어떤 힘인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항상 기성 사회는 소년들의 힘을 억누르고 길들여 사회에 순응하는 얌전한 가축처럼 만들려고 한다. 정해진 길을 제시하며 극기와 이성의 힘으로 본능을 통제하고 하라는 대로 따라 살라고 한다. 그렇게 본능과 원시의 힘은 우리 안에 갇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뒤따르는 법이다. 억누르면 치고 올라오는 힘이 생겨나고, 갇힌 상태를 역전시키는 공은 그렇게 또르르 굴러서 야인의 우리 속으로 쏙 들어가기 마련이다. 야인은 우리를 열 열쇠를 달라고 요구한다. 호기심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본능을 들여다보면 본능은 대가를 요구한다. ‘궁금하면 열어봐, 열쇠를 찾아와’라고 얼러댄다. 본능을 여는 열쇠가 어머니 베게 밑에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어머니는 소년에게 영원한 연인이다. 소년의 영원한 리비도 libido(성적 반응과 행위의 원동력)의 대상인 어머니의 침상을 들쑤시면 열쇠는 나온다. 그렇게 본능인 아이언 존은 억압하는 기성 사회의 기대를 배반하고, 어린 남자아이를 목말 태우고 숲으로 간다.
황금 머리카락의 비밀
그러나 금기는 깨지라고 있는 것. 금기를 깨야 드디어 실체와 마주하는 법이다. 그리고 금기를 깬 소년은 드디어 자신의 실체인 황금 머리카락을 만난다. 금기를 넘어설 정도로 폭주하다 쓰러져 다시 일어날 때 드디어 자신 내면에서 삶을 긍정하는 힘을 찾게 된다. 자신이 황금 머리카락을 지닌 존재라는 무한 긍정은 삶을 버티는 데 엄청난 힘이 된다. 이 힘이 생기면 소년은 야인의 숲에서 나와 세상으로 나간다. 비로소 자신의 역량과 사람됨을 담금질해볼 수 있는 세상으로.
세상이 주는 시험은 일과 사랑의 형태로 온다. 젊기에 아직도 보잘것없는 정원사 보조에 불과한 자신을 꼭꼭 숨겨둔 황금 머리카락의 힘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긍정적인 자아상은 ‘난 정원사 보조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탄보다는 ‘난 알고 보면 왕자야, 난 왕국을 상속하게 될 거야’ 하는 믿음으로 사회가 젊은이에게 허락한 비참한 지위를 감수하게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빛나는 순간이 예정되어 있다. 그런 길을 따라 걷는 여정에서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 보잘것없는 존재 속에서 아련하게 빛나는 황금 머리카락을 볼 수 있는 여자, 다른 이들은 못 보지만 유일하게 그 황금 머리카락에 반해주는 여자, 그 황금 머리카락에 얹힐 왕관보다는 황금 머리카락 자체를 보아주는 여자를 만난다. 남자의 자기애는 이런 여성을 만나면 드디어 본격적으로 세상에 자신을 증명해 보이러 나갈 힘을 얻는다. 이제 전쟁터에 나갈 때가 온 것이다. 갑옷과 무기와 말은 본능적인 힘과 오래된 지혜의 내면에서 끌어와 갖춘다. 아이언 존에게서 조달받으니까. 그렇게 내면에서 우러나온 힘으로 젊은이는 전투에 나가 빛나는 승리를 이끈다.
세 가지 역경
소년이 젊은 남자로 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역경을 거쳐야 한다. 첫 번째는 사회가 정해주는 길이 아니라 외려 사회가 억압하는 내면의 본능과 원시 지혜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풀어주는 용기의 시험이다. 이 용기를 발휘하는 자는 사회와 부모에게서 떨어져서 비로소 자신의 긍정적이고 독립적인 자아상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사회가 길들이려는 본능과 원시의 힘인 아이언 존을 풀어주고 그의 목말을 타고 내면의 숲으로 가서 황금머리카락을 얻어야 한다.
두 번째는 여성을 만나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자신을 더욱 굳건히 세우는 시험이다. 남녀는 원래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여성 앞에 섰을 때, 남자의 자기애는 도가 지나쳐서 독이 되지도 않고 부족해서 병이 되지도 않은 채 건강하게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단 한 번에 황금 머리카락을 알아봐 주는 여성을 절대 만날 수 없다(여자도 그런 황금 머리카락을 알아보기까지 거저 자라는 건 아니라서 말이다). 그리고 알아봐 준다고 당장 그 손을 잡고 품에 안을 수도 없다. 세상에 나갔다가 여성에게 돌아와야 안아주는 게 가능하다. 여성은 세상을 주유하고 세상에서 자신을 입증한 남자가 늘 돌아와야 하는 고정 좌표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역경은 남자가 자신의 일에서 인정받고 입지를 다지는 시험이다. 젊고 경험이 없어서 말단인지라,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비루함을 일상에서 버텨내며 힘을 기르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때가 오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따라가는 독립적이고 긍정적인 자아상, 알맞게 차서 그득한 자기애의 힘으로 달려 나가 승리를 거머쥐어야 한다.
황금 머리카락을 찾지 못한 남자들
또 세상으로 달려간다 해도 절름발이 말을 타고 변변치 않은 무장을 하고 뒤처져 따라가는 꼴밖에 되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사실 이런 모습이다.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저 성공을 향해 질주하던 남자들은 어느 시점에서 무너진다. 혹은 됨됨이가 받쳐주지 못하는 성공인지라 세상이 이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만나는 여자들은 그저 요부같이 흐느적거리며 남자를 약올리고 이용할 뿐이다. 문득 커버린 껍데기 같은 몸과 부질없이 먹어버린 나이가 남자를 공허하게 만든다. 그 비어 있는 공허함을 견디다 못해 유치한 남자들은 그걸 분노로 채운다. 그리고 분노를 외부로 돌린다. 나잇값 못하고 목소리만 큰 늙은 남자들은 이렇게 거리에 버려진 비닐봉지처럼 자신들을 끌고 다닌다.
사랑이 왜 힘드냐면
소년은 언제 남자가 되냐고? 비밀은 야인의 목말을 타고 내면의 숲으로 들어가 황금 머리카락을 얻는 데에 있다. 황금 머리카락이 이후 소년이 남자가 되는 행보를 열어주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 동화는 남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숲속으로 야인의 목말을 타고 들어갈 용기가 있는가, 그리고 터부를 깨고 자신의 실체와 만나 황금 머리카락을 얻을 용기가 있는가?’
이 포스트는 『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