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를 이긴 막강 고구려 군사력
고구려-수나라 전쟁은 우리 고대 전쟁사상 가장 통쾌하고 극적인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수나라는 중국 대륙을 재통일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맞선 고구려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죠. 수나라를 이겼으니까요.
다양한 병종의 균형잡힌 군대
고구려 군대의 모습은 고분벽화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황해도 안악3호 고분에 그려진 대행렬도는 고구려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행렬도에서 우리는 고구려군이 다양한 병종의 균형 잡힌 군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병은 창병, 근접전에서 칼을 쓰는 환도수, 그리고 도끼병, 궁병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창병과 환도수는 갑옷을 갖춰 입은 중장보병으로 분류됩니다. 반면 도끼병은 갑옷이 없는 경보병이었습니다.
‘고리자루큰칼’ (환두대도)
고구려군은 당시 동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대표적인 칼이었던 ‘환두대도’를 사용했습니다. 사실 환두대도란 말은 일본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보통 우리식으로는 ‘고리자루큰칼’이라고도 불렀는데, 손잡이 자루 끝에 고리 모양이 달려 있습니다. 칼날은 기본적으로 휨이 없는 직도이고, 날 길이는 60~120센티미터 까지 다양하게 있었으며, 손잡이는 보통 한 손으로 쥐고 휘두르기에 적합할 정도의 길이였죠. 기병용은 손잡이가 좀 더 짧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사신의 모습에서도 허리에 찬 환두대도가 보입니다.
탱크같은 존재 ‘개마무사’
고구려는 특히 기병이 유명했습니다. 각종 창작물에서 고구려 하면 기병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감히 당시 동북아 최강의 기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개마무사’라고 불리는 중장기병은 지금으로 치면 마치 탱크와도 같은 존재였죠. 개마란 말 갑옷을 뜻하는데, 기병은 물론 말에게도 갑옷을 입혔습니다. ‘찰갑’이라고 불리는 갑옷은 제작에 손이 많이 갔지만, 삼국시대의 풍부한 철 생산력 덕분에 초기부터 보편화된 갑옷이었습니다. 당시 고구려의 찰갑은 냉병기에 대해 방어력이 거의 완벽했습니다. 개마의 경우 고구려는 생산시기가 중국이나 북방 지역보다 적어도 2세기 정도 앞서기 때문에, 중국이나 북방 지역의 말 갑옷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정됩니다. 더구나 ‘강원도 철령’ 유적에서 안악 3호 고분보다 앞선 서기 3세기경의 개마모형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개마모형들은 고구려 개마 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에서 개마의 출현시기가 3세기 이전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합니다.
복합궁 ‘맥궁’ 사용
또한 고구려 하면 역시 활이었죠. 고구려는 ‘맥궁’이라는 복합궁을 사용했습니다. 맥궁은 고구려의 벽화에서 보이긴 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복원해내기는 힘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맥궁은 몸체가 많이 휘어져 있는 전형적인 복합궁 모양입니다. 특히 ‘고시’ 또는 ‘호시’라고 불렸던 싸리나무 화살은 탁월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 싸리나무 화살은 북방민족이 주로 쓰던 화살이었습니다.
고구려 건국신화에서도 주몽이 활의 명수였던 점, 또한 말을 수출하고 대량으로 운영하여 민간교육기관이었던 경당扃堂에서도 활쏘기와 말 타기를 배우게 했던 점으로 미루어볼 때, 고구려군은 궁병과 기병이 상당히 뛰어났으리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이 포스트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 1. 고대편』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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