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과 궁수 등장
펠로폰네소스 전쟁(BC431∼BC404)은 외세의 침략이 아닌 그리스 도시국가 간의 내전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 도시국가들 사이에서는 지난 전쟁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보여줬던 스파르타를 모방하는 경향이 있었죠. 반면, 해군력에서는 아테네를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무기 측면에서는 약간의 변화는 있었는데, 우선 펠로폰네소스 전쟁부터 소수이긴 하지만 기병이 등장하고, 돌이나 활 등의 원거리 무기가 적극 사용되었습니다.
팔랑크스 전술
특히 이 무렵부터 중장보병의 집단대형 전술인 ‘팔랑크스’가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양측이 똑같이 팔랑크스 전술을 쓸 경우 결국에는 난전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았죠. 이때는 주무장이었던 창 ‘사리사’보다는 부무장이었던 검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이포스와 코피스
양날 검인 ‘사이포스’와 외날 검인 ‘코피스’가 주로 쓰였는데, 기존 40센티미터 내외의 파라조니움보다 더 길어져서 날의 길이는 약 60센티미터였습니다. 양날 검 사이포스는 전형적인 한손검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파라조니움에 비해 상당히 균형 잡힌 모습이죠. 부무장인 칼의 길이가 길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접근전이 잦아져 주무장만큼이나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장보병 장비 경량화
방어구에서는 꽤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30킬로그램이 넘었던 중장보병 장비의 경량화가 주목할 만합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그리스는 이른바 제국의 길로 들어서고, 따라서 이전보다 훨씬 먼 거리를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먼 길을, 말을 타는 것도 아니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누가 무거운 청동 갑옷을 반기겠습니까.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18킬로그램이나 되었던 갑옷 토락스는 가벼운 아마포섬유 재질로 바뀌었고 무게가 9킬로그램, 지름이 60센티미터 이상 되었던 방패 호플론은 훨씬 가벼워지고 작아진 무게 2킬로그램, 지름 45센티미터 이하의 ‘아스피스’로 대체되었습니다.
투구 변화가 가장 극적
가장 극적인 것은 투구의 변화였습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까지는 ‘코린트식’ 투구가 보편적이었으나 이 투구는 무겁고 덥고 귀가 막혀 있어 명령이 잘 들리지 않았으며, 코 가리개 때문에 시야도 좁은 단점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각 도시국가는 이런 단점들을 개선한 독자적인 형태의 투구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경량화와 함께 귀 부분을 노출시켜 명령이 잘 들리도록 했으며, 시야도 확보되었죠. 이런 형식의 새로운 투구들은 그리스를 거쳐 로마의 투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파르타의 ‘필로스식’ 투구는 여러모로 밋밋하지만 어쩌면 필로스식 투구야말로 가성비 면에서 뛰어난 투구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투구에는 얼굴을 보호하는 뺨 가리개 ‘버컬러’가 있지만, 과연 이 버컬러가 실전에서 치명상을 막아줬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강하게 휘두르는 칼과 둔기에 아마도 찌그러지면서 더 큰 2차 피해를 입혔을지도 모른릅니다. 만약 실전에서 버컬러의 효과가 입증되었다면 냉병기가 주류였던 14세기의 백년전쟁에서도 병사들이 사용했어야 하는데 ‘버컬러’가 달린 형식의 투구는 로마시대 이후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물론 돈 많은 귀족 기사들은 얼굴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금속으로 둘러싸는 플레이트 갑옷을 입지만, 이것은 기사계급에 한정되었고, 일반 병사들은 머리만 보호하는 간단한 투구로 전투에 임했습니다. 불편하고 효과가 의심스러운 투구를 쓰느니 단순한 투구가 더 편했을 겁니다. 스파르타가 고대부터 잘 싸운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포스트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 1. 고대편』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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