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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부장 산업 발전 뒤에는 남극 탐험이?

경제상식 경제공부/포스트 한일경제전쟁

by 스마트북스 2020. 9. 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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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식 주택, 풍력발전기… 남극탐험 기술

일본이 경제백서를 통해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라며 패전의 상처에서 벗어나 경제부흥 궤도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고 선언한 1956년, 등대 수리선을 개조한 남극 관측선 소야SOYA는 53명의 대원을 태우고 남극 탐험을 떠났습니다. 이후 일본은 1957년 남극에 쇼와기지를 건설했으며, 60여 년 동안 3,300여 명의 대원을 파견했고 극지 탐험을 통해 오로라 관측, 아이스코어 채굴, 오존홀 발견(1982년) 등 과학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남극탐험은 산업기술 발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본 최초의 조립식 주택은 남극탐험을 위해 개발된 것으로, 목질 패널을 사용해 영하 50°C의 혹한과 초속 60m의 강풍을 견딜 수 있고, 기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지을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일본건축학회가 설계를 담당하고, 다나카공무점이 패널을 개발했으며, 주택 건설업체인 미사와홈즈가 참여했죠.

풍력발전기는 남극의 강풍과 혹한을 극복하며 발전했습니다. 1차 탐험대는 지름 4.4m의 날개를 3개 장착한 기초적인 풍력발전기(혼다기연공업의 설계 및 제작)를 비상전원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1991년에는 풍력발전기를 1kw급으로, 2000년에는 10kw급으로 성능을 향상시켰으며, 2016년 20kw급이 디젤 발전기와 연계하여 남극기지의 전력원 중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강풍에 견디는 블레이드(추진기 따위의 날개, 진동을 경감시키는 타워) 등 다양한 소부장 기술이 발전했죠.

1965년에는 대형 설상차가 개발되었습니다. 쇼와기지에서 남극점까지 왕복 탐험을 위해 영하 60°C에서 8톤의 화물을 싣고 6,000㎞를 주행할 수 있는 설상차를 개발한 것입니다. 일본 방위청의 기술연구본부가 설계했고, 건설장비업체인 고마쓰제작소가 제작을 담당한 이 설상차는 혹한의 환경에서 디젤 엔진의 내구성 향상 등 수송기계 소재 부품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이밖에도 1952년 소형 설상차(오하라철공소), 1984년 디젤 발전기(얀마홀딩스), 1987년 위성 데이터 수신 시스템(NEC, 일본전기), 2009년 3만 마력의 디젤 전기추진 쇄빙선(히타치제작소) 등 많은 기업들이 남극탐험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기술을 갈고닦았습니다.

 

일사계 제작에서 태양광 기업 _ 에코정기

1956년 소야를 타고 남극으로 간 53명의 대원들은 일사계를 가지고 갔습니다. 태양빛을 측정하는 일사계는 남극탐험의 필수품이었고, 일본 기상청은 과학기기 수입업체였던 에코정기에 일사계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에코정기는 1차 탐험대에 일사계를 납품한 것을 인연으로 1979년 20차, 1981년 21차 남극탐험대와 함께 남극 일사량 계측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실험실이 아닌 남극의 극한 환경에서 1년 365일 태양빛을 측정하는 기술을 축적한 에코정기는 이후 1988년 미국해양대기청NOAA에 일사계 1천 대를 수주하는 등 일사계 분야에서 독보적인위치에 올랐습니다.

당시에 일사계는 큰돈이 되는 비즈니스는 아니었습니다. 수요자는 기상청 정도였고, 15년에 한 번 정도 교체수요가 생기는 협소한 시장이었죠.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에코정기의 일사계는 태양광 발전과 만나며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태양광 패널의 성능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태양빛을 측정하는 일사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실험 환경이 아닌 전천후 환경에서 일사량을 측정하는 노하우를 가진 업체는 남극 탐험에 참여한 에코정기밖에 없었죠. 에코정기는 태양광 패널용 전천후 분광방사기를 만들어 세계시장을 독점했습니다. 작은 과학기기 수입상이 종업원 86명의 단단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고, 무려 100%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달성한 것입니다.

강력한 국산화 의지가 원동력

일사계는 남극탐험의 필수품이지만 고가의 물품은 아니었기 때문에, 1950년대의 일본 입장에서는 국산화를 추진하기보다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본은 남극탐험을 통해 자국의 기술자립과 산업발전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1956년 남극지역 관측기계관계준비위원회의 3대 기본방침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첫째, 모든 물품은 일본산 제품으로 한다.
  • • 둘째,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물품에 최소한의 개량을 해서 영하 30~60°C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 • 셋째, 남극용으로 특별히 설계ㆍ제작한 물품도 포함한다.

이렇게 강력한 국산화 의지가 바로 에코정기와 같은 소부장 기업이 생겨날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한국의 남극탐험과 소부장 산업

한국의 극지연구도 일본에 못지않습니다. 한국은 1988년 세종과학기지를 시작으로 2002년 북극 다산기지, 2014년 동남극의 장보고 내륙기지를 세웠고, 최초의 쇄빙선인 아라온 호도 진수하여 극지탐험 인프라를 갖추었습니다.

과학기술적 성과도 내고 있습니다. 극지연구소는 북극 상공 제트기류의 하강이 미국 북동부의 폭설을 불러왔다는 ‘커튼 이펙트’를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남극 빙하가 얼마나 빨리 녹고 어떻게 이동하는지 연구하여 해수면 변동을 예측하고, 남극 미개척 내륙에 우리만의 탐사 루트(korean Route)를 찾는 K-루트 탐사에도 나섰습니다.

이렇게 극지연구 분야에서 30여 년간 쌓인 노하우는 소부장 산업의 진흥과 연계할 수 있는 접점이 많습니다. 국내 극지연구의 산 증인인 윤호일 극지연구소장에 따르면, 남극은 화성과 유사한 환경으로 탐사 로봇의 내구성, 결로, 센싱 등 소부장 성능과 기능을 가늠해보는 테스트베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남극은 자기가 강해 회로에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방향 센서에 오작동을 일으키는데, 고위도 지역에서 자주 추락하는 드론의 테스트베드로도 활용가치가 크다는 것이죠.

이 포스트는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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