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은 내일 참형에 처해질 예정입니다. 대대로 태사령을 지낸 명문가의 후손이었던 죄인은, 자신 역시 태사령의 직무를 수행하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옥에 갇힌 몸이 되었습니다. 태사령이란 당시 천문, 역법, 역사 등의 기록과 저술을 맡았던 관직입니다.
형리가 죄인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일 당신이 죽는 날이다. 각오는 되어 있는가? 당신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금전속죄. 황금 3만 8,000근을 바치고 서인으로 떨어지면 목숨은 건질 수 있다. 두번째는 궁형! 히히히, 그대의 거시기를 싹둑 잘라버린다는 뜻이야.”
잠시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죄인은 나직이 말했습니다.
“잘라라.”
결국 죄인은 거세당하고 세간의 조롱과 비웃음 속에 묵묵히 붓을 놀려 역사서를 써내려갔습니다. 그렇게 20여 년에 걸쳐 무려 130편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역사책을 완성했습니다. ‘동양 역사서의 근간이 되는 역사서’로 평가받는 사마천의 <사기>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왜 사마천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을 당했을까요? 그 뒤에는 일곱 번에 걸친 한무제의 흉노 정벌 스토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BC 91~90년에 걸쳐 흉노는 상곡·오원과 오원·주천으로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이에 한무제는 2차 흉노 정벌을 단행합니다. 한무제는 총애하는 후궁 이씨의 큰오빠 이광리를 장군으로 등용합니다. 그리고 이광리에게 흉노 정벌에 앞서 특별한 말을 구해오라고 지시합니다. 흉노가 부리는 거친 말보다 훨씬 강한 말을 원했던 것이죠. 그래서 찾은 것이 한혈마였습니다. 한무제는 한혈마를 얻기 위해 이광리에게 약 7만의 병력을 주어 대완국을 정벌케 했고, 우여곡절 끝에 한나라의 군대는 3,000의 한혈마로 구성된 기병을 구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2차 원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총사령관은 후궁 이씨의 오라버니인 이광리였습니다. 한무제는 정예 기마군단을 그에게 내줍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젊은 장군 이릉도 병력을 나누어달라 한무제에게 청합니다. 이릉은 명문 장군가의 후예입니다. 한무제는 이광리 휘하의 보급부대를 이릉에게 맡기려 했지만 그는 전투부대를 고집했습니다. 한무제는 마지못해 5,000의 병력을 내줬지만 심기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죠.
한편 이광리는 연속해서 전투에서 대패를 하고 3만의 기병 중 무려 2만을 잃습니다. 곧이어 이릉은 5,000의 보병으로 흉노 기병 3만과 맞섭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몇 번의 전투에서 이릉은 놀랍게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보급이 원활치 않아 궁지에 몰렸습니다. 흉노의 대병력이 이릉의 부대를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으나 이릉의 부대는 무려 8일을 잘 버텨냈습니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결국 흉노에게 항복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한무제는 그 자리에서 이릉에게 사형을 명했습니다.
“그놈,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이때 분위기 파악 못한 태사령 사마천이 입바른 소리를 합니다.
“이릉은 죄가 없습니다. 그는 3만의 대군에게 포위되어 끝까지 분전했습니다. 임전무퇴의 그 정신은 오히려 상을 받아 마땅합니다.”
한무제의 노여움을 산 사마천은 곧바로 체포되어 옥에 갇히고, 결국 궁형에 처해집니다. 사마천이 이런 수모를 겪게 된 것은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입바른 소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허망한 죽음 대신에 치욕적인 삶을 택함으로써 역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저서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한무제의 흉노 정벌은 한-흉노의 역학관계를 역전시킨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나비효과’도 낳았습니다. 장건의 비단길 개척은 서양과 동양을 연결하는 통로를 뚫은 셈이었고, 고비사막 서쪽으로 옮겨간 흉노족 일부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시켜 결국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입바른 소리 하다가 궁형을 받은 사마천은 <사기> 여러 곳에서 한무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 ‘율서’에서 자신이 받은 형벌을,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로서 정치를 했다고 평가합니다.
집안을 다스릴 때 훈계와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나라를 다스릴 때 형벌을 버릴 수 없고, 천하 차원에서 정벌전쟁을 폐할 수 없다. 단지 운용을 정당하고 적절하게 해야 한다.
이 포스트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 고대편』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한니발은 어떻게 영웅에서 전설이 되었는가 (0) | 2020.10.12 |
---|---|
한무제가 사랑한 두 장수, 위청과 곽거병 (0) | 2020.09.16 |
한나라 유방은 왜 이런 유언을 남겼을까? (0) | 2020.09.10 |
명장 왕전은 왜 전쟁중임에도 진시황에게 땅을 달라 했을까? (0) | 2020.09.04 |
진나라는 어떻게 중원을 차지했을까 (1) | 2020.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