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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문 교양 읽기/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

by 스마트북스 2021. 3. 1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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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속성일까 주관적 관념일까

미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질문은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입니다.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작품 속에 아름다운 속성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작품을 감상하면서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을 가지게 된다는 입장입니다. 전자는 아름다움이란 작품이 지니는 객관적 속성이라는 주장이고, 후자는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인 관념일 뿐이라고 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름다움이란 작품 자체의 속성이라고 보았어요.

아름다움의 속성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어떤 것이 아름다움의 속성인가요?

 

황금비율 1대 1.618

①은 고대 그리스의 <밀로의 비너스>이고, ②는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③은 일본의 18세기 화가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라는 목판화, ④는 15세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⑤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중 일부입니다. 모두 무척 아름다운 작품들이죠. 그런데 이 작품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각각의 작품 속에 적절한 비율의 균형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예술작품 속에 인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황금비율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황금비율이란 1대 1.618의 비율을 말합니다. 황금비율의 특징은 아래와 같이 짧은 쪽의 길이로 된 정사각형을 뺀 사각형의 비율도 1대 1.618이 된다는 점이지요. 또다시 짧은 쪽의 길이로 된 정사각형을 빼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무한히 반복되는 비율이 황금비율입니다. 우리는 이런 황금비율을 보면서 조화롭다고 느낍니다.

위의 그림처럼 사각형들의 모서리를 연결하면 나선형 무늬가 나타나는데 자연 속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앵무조개의 형태, 해바라기씨의 밀식 구조, 나뭇잎의 모양, 파인애플의 표면에서도 황금비율은 나타나지요.

앞서 살펴본 작품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적절하게 균형이 잡혀 있고 구도가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름다움의 원천을 이러한 비율에서 나오는 균형감과 조화라고 여겼어요. 플라톤은 적당한 척도와 비례를 유지하면 항상 아름답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적당한 크기와 질서가 잡힌 비율을 ‘미’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움은 대상이 지니는 아름다운 비율에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미의 대이론이라고 해요.

하지만 최근에는 예술작품 속에 황금비율이 있다는 것은 오차를 대충 얼버무린 결과라는 반론도 제기되었어요.

 

음악의 구조

음악에도 아름다움이 있어요. 음악에도 그림과 조각처럼 조화로운 비율과 구도가 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이 수이며, 행성 간의 움직임에도 수적인 질서가 있고, 음악에도 수적인 질서가 있다고 봤지요. 그래서 가장 어울리는 소리를 찾아 음계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음계를 만든 방법을 한번 볼까요.

 

현의 길이에 따라 음의 높이가 결정됩니다. 먼저 길이가 1미터인 현에서 나오는 음을 ‘도’로 놓습니다. 이것의 절반의 길이에서 나오는 음은 한 옥타브가 올라간 ‘도’가 됩니다.(인간의 귀는 하나의 음과 그 음의 2배의 진동수를 갖는 음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제 도와 가장 어울리는 음을 찾아보죠. 피타고라스는 어떤 음과 가장 어울리는 음이 현의 길이가 4분의 3일 때 나오는 음, 그리고 현의 길이가 3분의 2일 때 나오는 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현의 길이가 4분의 3일 때 나오는 음을 ‘파’로 놓고, 3분의 2일 때의 음을 ‘솔’로 놓았죠. 피타고라스는 이런 식으로 조화로운 음을 내는 현의 길이의 비율을 찾아냈는데, 음의 높이는 현의 길이에 반비례해요. 그래서 분자와 분모를 뒤집으면 다음과 같이 되고, 이것이 피타고라스 음계가 됩니다.

화음에는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있는데, 듣기 좋은 편안한 화음을 ‘협화음’이라고 하고, 듣기 어색하고 불편한 화음을 ‘불협화음’이라고 합니다. 수학적으로 단순한 자연수 비율을 가질 때 협화음이 되고, 자연수 비율을 갖지 않을 때 불협화음이 됩니다. 아마 모두 일상 속에서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들어보았을 거예요. 결국 이런 화음들이 있다는 건, 음악에도 그림이나 조각 같은 시각예술처럼 적절한 비율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거겠죠. 대상이 지니는 아름다운 비율에 미가 있다는 ‘미의 대이론’이 음악에도 적용될 수 있는 셈입니다.

 

부조화, 불균형 속의 아름다움

사람들은 미의 대이론을 고대부터 17세기까지 거의 2200여 년 동안 큰 논란 없이 받아들였어요. 즉 아름다움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객관적 속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8세기가 되자 아름다움이란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그저 주관적 판단이라는 주장이 등장합니다. 이렇듯 아름다움이 객관적인 속성이냐, 주관적인 느낌이냐 하는 논란은 오랫동안 계속돼왔죠.

하지만 이런 논란을 차치하고서도, 미의 대이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해 보입니다. 우리는 과도한 원근법에서, 불편한 크기의 비율에서, 사진의 어색한 구도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기 때문이죠.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불협화음에서도 진짜 감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포스트는 『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김필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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