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의 단위노동비용
다음의 그림은 미국 소비자물가와 단위노동비용(Unit Labor Cost)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쇼크 전, 즉 2019년 말까지 호황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가 단위노동 비용의 안정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위노동비용이라는 말은 좀 어렵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B 자동차회사의 근로자들이 단체협상을 통해 임금을 10% 인상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근로자 1인당 자동차 생산량이 20% 늘어났다면 이 회사가 느끼는 체감 인건비는 10% 떨어진 셈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1980년대로, 당시에는 단위노동비용이 연 10%씩 계속 상승했습니다. 결국 단위노동비용이란 임금상승률에서 생산성 개선율을 뺀 값이며, 기업이 느끼는 ‘체감 인건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위노동비용과 경제와의 관계
단위노동비용이 크게 상승하거나 하락하면 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는 경쟁구도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면 기업들은 단위노동비용이 하락할 때에는 적극적인 가격인하 정책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점가를 걸어가다가 ‘폭탄세일’이라는 팻말을 보면 눈이 저절로 돌아잖아요.
반대로, 단위노동비용이 상승할 때에는 경쟁력을 가진 기업부터 가격을 인상하기 시작할 것이며, 가장 경쟁력이 약한 기업이 가장 나중에 가격 인상에 나설 것입니다. 얼마 전에 라면 가격이 인상될 때, 어떤 회사가 가장 먼저 가격을 올렸는지를 보면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위노동비용이 떨어질 때에는 경제 전반의 물가상승 압력이 떨어지며, 반면 단위노동비용이 급등할 때에는 물가상승 압력 이 높은 ‘인플레’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노동생산성 107%, 실질임금 40% 상승
미국은 코로나19 쇼크 전까지 실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이었는데, 단위노동비용이 왜 오르지 않았을까요?
미국이 2019년 말까지 경기가 좋았는데도 단위노동비용이 오르지 않은 이유는 임금이 인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의 명목임금은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실질임금은 거의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질임금이란 물가를 감안한 임금으로, 예를 들어 임금이 10% 상승했더라도 소비자물가가 10% 올랐다면 실질임금의 상승률은 0%가 될 것입니다.
다음 그림은 미국의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의 장기적인 흐름을 보여줍니다.
그림을 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이 나란히 상승했습니다. 즉, 근로자들의 1인당 생산량이 늘어나면 기업도 그에 맞추어 임금을 인상해주었죠. 그러나 이런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 실질임금은 생산성 향상 속도에 비해 별로 오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정보통신 혁명 덕분에 생산성이 더욱 빠르게 향상되었는데도 실질임금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1953년 이후 3.8배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2.5배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1980년 이후로 한정해보면 더욱 참혹합니다. 1980년 이후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107% 상승했지만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단 40% 인상되었습니다.
물론 생산성의 향상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생산성이 향상되면 기업들의 경쟁력이 개선되며, 더 나아가 경제도 성장하죠. 다만,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음에도 실질임금이 별로 오르지 않으면, 결국 생산성 향상의 이득이 기업에만 집중된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불평등이 디플레 위험 높인다
생산성이 빠르게 개선되는데, 실질임금이 이를 따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B 자동차회사의 생산성이 100% 개선되었는데 직원들의 연봉 총액이 40% 올랐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노사협상 담당 임원은 분명 승진했을 것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단위노동비용, 즉 체감 인건비가 떨어진 셈이니 그만큼 이익이 늘어났을 겁니다. 이 이익을 고스란히 누리는 측은 누구일까요? 바로 최고경영자와 주주들입니다.
최고경영자는 실적 개선에 따른 보너스를 두둑하게 챙겼을 것이고, 주주들은 배당 혹은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미국 주식시장이 지난 1990년 이후 2019년 말까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인 이유 중에 하나도 단위노동비용 하락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기업의 단위노동비용이 하락한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이런 현상은 불평등이 심화되는 문제를 낳습니다. 특히 미국의 중산층 및 근로계층의 경우 주식 보유 비중이 낮기 때문에, 기업의 실적개선 및 주가 상승의 효과는 상류층에만 집중되는 문제가 생기죠. 대부분의 가계는 주식투자의 비중이 낮아 주가 상승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UC버클리대학 경제학과 이매뉴얼 사에즈(Emmanuel Saez) 교수 등의 분석에 따르면, 1920년대와 달리 최근의 불평등 확대는 대부분 ‘임금 격차’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즉, 최고경영자 및 1류급 엔니지어의 연봉은 폭발적으로 상승한 반면, 대다수의 근로자 임금은 정체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물론 최고경영자 등의 연봉이 급등한 것은 연봉인상뿐만 아니라 스톡옵션 제도의 확산에 힘입은 바 큽니다. 스톡옵션이 없는 근로자들은 퇴직연금 계좌 등을 통해 주가 상승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다수 근로자들의 주식투자 규모는 고소득층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죠.
이 포스트는 『디플레 전쟁』(홍춘욱)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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