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국면에 진입하면 ‘경제를 정상 수준으로 돌려놓기’ 어렵습니다.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통화정책이 무력화된다!
먼저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통화정책의 무력화 문제 때문입니다. 이는 경제학계에서 ‘제로금리 한계(Zero Rate Lower Bound)’라고 하는 이슈입니다.
‘제로금리 한계’란 중앙은행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제로금리 수준이 하한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유럽 중앙은행을 비롯한 일부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이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초과 지급준비금’에 대해서만 마이너스 금리가 도입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통화정책 무력화보다 더 심각한 두 번째 위험 요인은 ‘디플레 악순환(Deflation Spiral)’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의 국민 대다수가 ‘앞으로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디플레 기대심리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소비를 미룰 것입니다. 어차피 가격이 계속 떨어질 텐데 굳이 지금 소비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소비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기업의 실적이 악화되고 고용 및 투자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명목임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이 전년에 비해 줄어드는 것에 대해 강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플레가 발생하면 역설적으로 ‘실질임금’이 상승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디플레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떨어진다면, 임금이 동결되더라도 기업의 입장에서는 근로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을 1% 인상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업이 불황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까지 높아지면 대대적인 해고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대량해고는 다시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기업의 매출을 줄이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됩니다. 참고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 교수는 “미국에서 1%의 디플레가 발생하면 균형 실업률은 5.8%에서 10%까지 상승한다”라는 계산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실질적 부채 부담 증가
실질임금의 인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실질적인 부채 부담’의 증가입니다. 예를 들어 1990년에 도쿄의 맨션을 구입할 목적으로 금리 7%에 5,000만 엔을 대출받은 가계를 생각해봅시다. 1990년 이후 2016년까지 도쿄의 주택가격이 약 60% 이상 빠졌으니, 이 가계는 최악의 시점에 주택을 구입한 셈입니다.
더 큰 문제는 주택가격이 폭락했는데도, 이 가계는 매년 7%, 즉 350만 엔의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빌릴 때 약속한 이자를 갚지 않는 순간 은행은 대출을 회수할 것이며,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릴 것입니다. 결국 이 가계는 이를 꽉 깨물고 아껴서 빚을 갚아나가야 합니다. 부부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아픈 경우에는 순식간에 파산 위기에 내몰리게 됩니다. 국제통화기금이 2003년 보고서에서 “오랜 기간 지속된 디플레로 일본의 개인과 기업이 가진 부채의 실질적인 부담이 높아졌다”라고 지적했던 대목 그대로입니다.
결국 디플레가 장기화되면 부채를 짊어진 가계와 기업이 파산하고, 이는 다시 은행의 위기로 전염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포스트는 『디플레 전쟁』(홍춘욱)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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