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하자. 어느 날 A상품의 수입업자와 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최근 A상품의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고 하면서, 가게를 차려서 저렴하게 팔면 장사가 잘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알아보니 가격이 크게 떨어지긴 했다. 게다가 A상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으므로, 저렴하게 팔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제법 수익을 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되는 사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노파심에 A상품의 가격변동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조사해보니 다음과 같은 그래프가 나왔다. 현재 가격은 최고점 대비 37% 이상 하락한 상태였다. 당신이라면 이 상품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사업에 뛰어들겠는가?
2015년 하반기부터 엄청나게 늘어났던 연어 무한리필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연어는 특유의 기름지고 부드러운 단맛 때문에 회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매우 좋아하는 횟감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연어 선호도가 이처럼 높은데, 어느 날 무한리필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운 가게가 등장했다. 그것도 매우 저렴한 1만 원 초중반대의 가격에 말이다.
2015년 하반기 연어 무한리필점들은 큰 인기를 얻었고 SNS에도 자주 오르내렸다. 당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연어의 질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먹거리 X파일>에서는 무한리필 연어가 노르웨이산 양식이며, 양식 연어가 자연산보다 지방이 많다는 내용을 방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이 방송이 겨우 지방이 많다는 것밖에 지적 못한 것은 그만큼 안전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미와 EU의 식품안전규정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까다롭다.
그렇다면 연어 무한리필점은 어째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했을까? 국제 연어시장에서 노르웨이산 양식 연어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양식 연어의 생산량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자연산 연어의 생산량을 추월했다. 2015년 전 세계 자연산 연어의 연간 생산량은 82만 톤이며, 양식 연어는 220만 톤에 달했다. 그리고 전 세계 양식 연어 생산량의 50%를 담당하는 나라가 바로 노르웨이다. 그래서 노르웨이산 양식 연어의 가격은 국제 연어 가격의 표준지표로 쓰인다. 국제 양식 연어의 가격은 2014년 2월에 최고점을 찍었다가 하락하여 2015년 1년 동안은 kg당 5달러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2015년에 연어 무한리필점이 폭발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은 이토록 낮은 가격에 있었다.
연어 가격이 이렇게 급등하는데, 무한리필점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소비자 가격도 올랐다. 서울 시내를 기준으로 2015년 하반기에 15,000원 이내로 부담 없던 가격이 1만 원 후반에서 2만 원 초반으로 크게 상승했다. 그리고 2016년에 그 많던 가게가 하나씩 사라져갔다.
자영업은 하루 장사하고 그만두는 사업이 아니다. 본전이라도 건지려면 적어도 2년 이상은 해야 한다. 보통 1~2년 정도가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뽑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연어 무한리필점 사업이 지속되려면 연어 가격이 2015년의 저렴한 수준에서 중기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래프에서 보듯, 그 좋은 시절은 지속될 가능성이 낮았다. 그렇게 또 하나의 사업이 뜨고 사라졌다. 소비 문제가 아니라 공급 문제 때문에 말이다.
사업을 하기 전에 구글 검색을 통해 그래프만 확인했더라도 연어 무한리필점을 쉽게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업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속 가능성이 얼마인지 예측해야 한다. 연어 무한리필점처럼 예외적인 조건으로 인해 가치가 생긴 사업은 그 조건이 사라지는 순간 사업가치도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 포스트는 『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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