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통해서 도시에서 다양성의 중요함을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다양성의 밀집이 더 많은 ‘가로 위의 눈(eyes on the street)’을 만들어 거리를 좀 더 안전하게 하고, 사람들을 더 머무르게 만들어 도시에 활력을 준다는 것이다.
반면 성수역 3번 출구의 카페 상권은 한 번이라도 가봤으면 알겠지만, 2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대형 건물들과 카센터, 공업사, 창고가 형성되어 있다. 건물이 애매모호하게 들어선 공업/비즈니스 단지의 느낌이다. 이곳에 몇몇 카페만 있어서 지역 전체로 보자면 매우 황량한 느낌을 준다. 당장 한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아파트형 공장과공업사, 피혁점, 카센터 등이 있어서 발길을 깊게 들이고 싶지 않다.
또한 성수역 인근은 공장과 IT 단지들이 밀집한 곳으로 직장인들의 움직임에 따라 지역 전체의 활기가 달라지는 전형적인 비즈니스 타운이다. 그곳이 가장 활기찬 시간은 평일 출근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시간이다. 점심시간인 12~1시에는 활기가 넘쳐흐르지만, 오후 2시만 넘어가면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공간이 된다. 더군다나 퇴근 이후인 평일 밤시간이나 주말의 경우는 제대로 된 인적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만약 공업사와 카센터들이 일반 다가구주택이었다면, 사람들이 거부감이 크게 들지 않아 가볍게 돌아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다세대주택의 성격상 1층이나 건물 전체를 개조해서 가게를 운영할 수도 있었을 테고, 거주민들도 주변의 유동인구를 발생시켰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지역이 가지고 있는 황량함을 조금이나마 줄여줬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장들이 오랜 세월 영업 중이므로 입주 자체가 쉽지 않고, 규모가 주택에 비해 크기 때문에 더 많은 자본과 더 철저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성수역 카페 상권에서 가장 핫한 플레이스인 전시를 겸하는 카페, 빈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카페들은 공통적으로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한다. 뒤집어 말하면, 이 지역은 이 정도 규모와 자본력에 기획력까지 갖춘 사업자가 아니고서는 진입이 힘들다는 이야기다. 진입 사업자가 많을수록 다양한 가게와 볼거리들이 생겨나는데, 이러한 지역적 조건은 다양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단조로운 몇 개의 핫스팟만 만들어낼 뿐이다.
서울숲 상권은 공원과 다가구주택,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와 공업사, 상가가 조화롭게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상가에 입점한 가게들도 다양하다. 즉 제인 제이콥스가 말한 다양성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언제, 어느 때 이 지역을 방문하더라도 사람들이 활력 가득한 환경을 만들어낸다. 반면 성수역 카페 상권은 비즈니스 타운에 독특한 카페가 몇 개 들어선 곳이다. 지역의 용도와 상점도 단조롭기에 직장인들이 길을 채우는 시간을 제외하면 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방문할 곳은 카페뿐으로, 지역에 머무르게 할 다양성이 없다. 그래서 이 지역을 방문한 보행자들은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재빨리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간다.
이 포스트는 『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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