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는 1970년의 논문에서 중고차 시장의 사례를 통해 레몬시장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내용인즉 이렇다.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는 더 좋은 차를 싸게 사길 원한다. 그러나 차의 품질을 잘 알 수 없으니 어떤 차든 일단 가격을 깎고 본다. 그런데 중고차 판매자 입장에서는 품질이 좋은 중고차도 소비자가 가격을 후려치려고만 들기에, 좋은 물건을 시장에 내놓기 꺼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시장에는 질 나쁜 중고차만 넘쳐흐르게 되고, 소비자들도 가격을 열심히 깎아봤자 저질 상품을 사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단것(좋은 품질의 상품)은 없고 너무 신것(저질 상품, 레몬에 비유)만 가득한 상태를 ‘레몬만 가득한 레몬시장’이라고 한다.
『호황 vs 불황』의 저자인 군터 뒤크는 한 발 더 나아가 소비자의 불신이 모든 시장을 레몬시장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앞서 예로 든 ‘4,000원짜리 커피의 원가는 400원이다!’라는 기사를 접하고, 소비자들이 분노하고 가격을 불신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하자. 소비자는 생산자에게 날을 세우고 가격을 깎거나 인상을 통제하고, 유료 서비스를 무료로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즉 생산자가 폭리를 취한다고 여기고 최대한 이득을 뽑아내려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이런 시장에서는 정상적인 상품을 정상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생산자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나름 스마트한 소비를 하겠다고 나선 소비자들이 정상적인 생산자의 적으로 돌변하는 셈이다. 반면 질 낮은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생산자들이 이득을 본다. 소비자들은 품질을 판별할 수 없을 때, 가격을 상품을 판별하는 단일 요소로 삼고 더 싼 것만 찾기 때문이다.
이제 원래 정상 상품을 생산하던 생산자들도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져서 저질 상품 생산에 합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 시장에는 저질 상품만 넘쳐흐르고 소비자들도 저질 상품만 소비하게 된다.
한편 저질 상품이 범람하는 반면, 고가시장은 그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한다. 고가 브랜드 상품은 소비자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요소이므로 가치가 더 높아진다. 군터 뒤크는 시장이 아주 고가의 상품과 저가의 저질 상품으로 극단적으로 양분화되며, 중간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여기까지 오면 저질 상품 판매자들은 온갖 이상한 수식어, 품질을 담보하는 듯한 애매모호한 표현, 사실과는 다른 내용 등으로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고, 이 악순환은 계속 반복된다. 결국 생산자는 수익성도 낮은 저질 상품만 계속 팔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돈은 돈대로 주면서 저질 상품만 소비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다.
군터 뒤크는 이처럼 시장 전체가 레몬시장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경기 하강 국면에서 발생한다고 했지만, 만약 특정 시장의 신뢰도가 기본적으로 매우 낮다면 경기 하강 국면이 아니어도 이러한 현상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한때 범람했던 ‘착한 가격’, ‘착한 식당’과 같은 표현들이 바로 그 예이다. ‘착한’이란 수식어가 품질이 아니라 가격과 양에 기반했으며, 그‘착한’의 기준에는 오직 소비자의 입장만 있었다. 실상은 ‘더 싸게, 더 많이’라는 방식으로 생산자를 압박하는 것인데, ‘착한’이라는 표현을 붙인 것뿐이었다. 이는 군터 뒤크가 이야기한 시장 전체의 레몬화에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모습이다.
이 포스트는 『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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