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6 동탄메타폴리스점(사진출처 ENTER-6 홈피)
대로의 가치가 예전 같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대형 기획 쇼핑몰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기업이 운영하는 대형상가는 기획과 관리를 통해 건물 전체를 상권화하고 있다. 사람들을 건물로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배회하며 소비하고 더 오래 머물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기업형 상가 임대의 대표주자 중 하나가 ENTER-6이다. 패션 아울렛몰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무르고 돌아다니며 소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공간과 동선에 대한 연구와 함께 입점 상가에 대한 큐레이팅으로 그저 답답한 건물 내 상가가 아니라, 내부에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기업들은 과거처럼 상가를 분양 매각하지 않고,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여 임대료를 거두는 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옛날 같았으면 같은 건물의 내부 주거가구를 대상으로 했을 주상복합 아파트의 상가도, 이제 다양한 기획과 입점 상가에 대한 큐레이팅을 통해 외부인들까지 찾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합정역에 위치한 메세나폴리스나 마포한강푸르지오의 경우 각각 617세대, 396세대이다. 사실 거주세대 수만 따지자면 정상적인 영업을 위한 수요에 모자란다. 그러나 이들은 홍대 상권과 인접해 있고, 합정역 바로 옆이라는 입지를 활용하여 상가를 거대한 쇼핑몰로 만들고 내부구조와 배치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소비하며 머무르게 기획했다.
하남시에 위치한 신세계의 대형 복합 쇼핑몰인 스타필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앞의 사례와는 반대로 외곽 지역의 저렴한 부지를 개발 하여 기획을 통해서 내부 전체를 걷고 즐길 수 있는 상업가로로 만들었다. 좁은 인도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아도 되고, 차를 조심하지 않아도 되며, 사시사철 편안한 환경에서 쇼핑할 수 있다. 그야말로 건물과 내부공간을 가장 충실한 가로로 만든 것이다.
대로에 늘어선 건물을 따라 자유롭게 늘어선 상가들이 경쟁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혹한과 혹서라는 기후상의 제약이 있는데, 이런 쇼핑몰은 기후에 상관없이 쾌적하기까지 해서 안정적인 집객에 유리하다. 이로인해 대로의 가치는 더욱 하락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 중인 복합 쇼핑몰에 대한 규제는 대로와 골목상권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시각에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골목 상권과 대로 상가들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는 복합 쇼핑몰이라기보다 인터넷, 모바일과 같은 온라인 쇼핑이다.
복합 쇼핑몰은 임대료가 매우 높고 쇼핑몰을 운영하는 기업의 기획과 의도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입점 가게의 선정 과정도 거친다. 따라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골목 상권이 이런 곳과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상황이다. 이 말은 곧 골목 상권의 임대료가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점에서 보자면 골목 상권의 경쟁자는 복합 쇼핑몰이 아니며, 골목 상권과 대로의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 임대업자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기존의 개인 임대업자는 단지 입지적 우위를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을 누려왔다. 많은 상권의 침체에서 보듯이, 이들은 건물과 상권에 대한 가치평가 능력이 낮고, 입지적 우위만으로 상권이 가진 부가가치를 빨아들여 왔다. 그에 반해 대형 쇼핑몰은 기획과 운영을 바탕으로 제한된 공간 내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것을 단지 규모가 크다고 규제한다면 이는 부가가치 창출에 대해 규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점에서 복합 쇼핑몰에 대한 규제는 기업 임대업자에 대한 규제이자 개인 임대업자에 대한 보호와 우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골목 상권과는 무관한 일이다.
정말로 골목 상권을 보호하고 싶다면 가장 큰 위협 요소인 인터넷 상거래를 막아버리면 된다. 온라인 마켓들도 주 2일은 아예 접속조차 못하게 막아버리면 사람들이 골목으로 좀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상하다고? 이게 대형마트와 복합 쇼핑몰에 가하는 규제와 똑같다. 물론 이렇게 하자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니다. 이러한 규제안이 얼마나 바보 같은 아이디어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예시이다.
대로의 위기는 지금까지 다소 안일하게 상권의 가치에 올라타기 바빴던 개인 임대업자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세상의 흐름이 크게 변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복합 쇼핑몰이 인터넷 쇼핑몰이 할 수 없는 분야를 치고 들어간 것처럼, 대로와 골목 상권의 개인 임대업자들도 복합 쇼핑몰이 할 수 없는 가게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뛰어난 브랜드를 키워내는 인큐베이터가 됨으로써, 거기서 자란 가게들이 복합 쇼핑몰에도 들어가고 기업화도 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대로와 골목 상권이 나아갈 생존의 길이다.
이 포스트는 『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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