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천천히 키우자 : 차별화 전략 1

본문

천천히 키우자 : 차별화 전략 1

우리 농장 돼지를 좀 남다르게 키울 방도는 없을까요?”
한참동안 생각하던 농장장이 답을 했다.
사실 115킬로그램 규격돈보다야 130킬로그램 정도로 천천히 크게 키운 암퇘지가 훨씬 맛있지요. 근데 규격돈이 아니라고 제값으로 안 쳐주니 그것도 못 혀유. 그래도 홍성에서 돼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다 암퇘지만 찾는디…….”
나는 맛있는 암퇘지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똑같은 크기의 규격돈이 아니라 천천히 오래 키운 훨씬 더 큰 암퇘지라…….’ 나는 농장장에게 바로 부탁을 했다.
농장장님, 두 마리만 그렇게 키워주세요. 두 마리 출하는 제가 알아서 해볼 테니 염려 마십시오. 돼지만 잘 키워주십시오.”
농장장은 빛깔 좋은 암퇘지 두 마리를 선정하여 8개월짜리 암퇘지 키우기에 들어갔다. 보통 115킬로그램 비육돈은 6개월이면 출하하지만, 이번 암퇘지 두 마리는 최고의 사료만 신경 써서 먹이고 천천히 2개월 더 키워내어 남다른 돼지를 만드는 게 농장장의 전략이다    

도축부터 배송까지 첩첩산중

문제가 생겼다.
공들여 키운 130킬로그램의 암퇘지 두 마리만을 받아줄 도축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표준화된 공정에 혼선을 주는 비규격 돼지를 반길 리가 만무하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어렵게 도축장을 수배하여 겨우 도축을 할 수 있었다.

식당의 규모, 식당을 찾는 고객의 평, 무엇보다도 고기를 제대로 분할할 줄 아는 이른바 칼잡이가 있는 고깃집을 수소문했다. 나는 지인에게 소개 받은 경기도 분당의 한 식당과 고향 부산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오랜 친구에게 고기를 보내기로 했다. 부산 친구네 식당은 부모님 대부터 문을 열어온 전통 있는 고깃집이다.

드디어 우리 돼지를 식당에 보내는 날이다. 하지만 달랑 돼지 한 마리를 멀리 부산과 분당으로 배송할 냉장차량 수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다시 농장과 거래하는 돼지출하 상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장님, 배송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 대표님. 현재로는 고기를 진공포장하고 냉매를 가득 담은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특송 택배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쉬웠지만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일단 한 마리를 부산으로 배송하는 데 우려했던 문제가 터졌다. 배송한 돼지의 포장이 완벽하지 않아서일까? 돼지고기에 드립이 생겼다는 연락이 왔다. 드립(drip)은 냉장 상태가 완벽하지 않아 온도 차가 생길 때 육즙 일부가 고기에서 배어나는 현상이다. 육즙이 일부 빠져나오면 고기 품질이 점점 떨어진다.
돼지를 잘 키워도 배송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속상한 마음에 나는 분당으로 배송하는 돼지고기는 중요 부위를 중심으로 내가 직접 차에 싣고 가기로 결정했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전달하는 것이 차라리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두 식당에 모두 배송을 마치고 드디어 식당이 주최하는 시식회 날이 다가왔다. 시식회는 분당에서 먼저 이뤄졌다. 식당 정육사는 우리 돼지의 품질을 후하게 평가해 주었다.
대표님, 고기가 참 좋습니다. 마블링도 고르게 분포해 있고 색감, 질감이 모두 우수합니다. 참 잘 키우셨습니다.”
국내 최고급 브랜드 돼지고기를 쓰는 부산에 위치한 식당 사장인 내 친구의 평도 좋았다.
이렇게 잡냄새 없이 깔끔한 맛은 나도 처음이다! 너희 농장 돼지고기로 우리 식당 하나 새로 차릴까?    

고기 맛 외에 해결해야 할 것들

시식회를 마치고 홍성농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 번째 떠오른 것은, 한두 마리 소량 도축과 맞춤형 배송이 가능한 물류회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규모의 표준화된 돼지고기 가공-유통 시스템만 존재한다. 도축장 입장에서야 표준화된 다량의 일거리를 주는 대형 유통 상인이 중요하지 한두 마리 도축을 부탁하는 우리 농장을 반길 이유가 없다. 설사 도축장에서 우리 돼지를 도축 가공하더라도 한두 마리의 소량 배송을 책임지고 맡아줄 물류회사는 없다. 큰돈을 주고 냉동차를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돼지 가격보다 차량 운송비가 더 들어간다.
 
두 번째는 우리 고기를 고객에게 선보일 좋은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겹살, 목살 등 인기 부위만 취급하는 식당은 우리 파트너가 될 수 없다. 우리 농장은 유통업자가 아니다. 나머지 부위를 처분할 방법이 없다. 서로 신뢰하는 파트너십으로서 농장-유통-식당이 삼박자가 맞아야 제대로 된 소비자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차별화 전략의 가능성을 보다

유통의 문제, 파트너의 문제를 떠올리니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희망도 같이 발견했다. 차별화의 가능성이다. 규격돈 생산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 있게 돼지를 키워보니 확실히 고기의 맛과 육질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수의 농장이 표준화된 규격돈 생산에 매진하니 어쩌면 이 지점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틈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틈새를 공략하고 차별화를 위해 노력하면 우리 농장은 양돈 농가의 인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포스트는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에서 발췌, 재구성한 것입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