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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소년의 인생을 바꾼 선생님의 말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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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트북스 2017. 5. 1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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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소년의 인생을 바꾼 선생님의 말 한 마디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에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한 반 정원이 열여덟 명 정도 되었다.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백 명 안팎이었다. 그래서 모든 선생님이 나를 알고, 동네 사람들도 다 나를 알고, 모두가 서로를 알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인천으로 전학을 갔는데,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내 번호가 77번이었다. 학생이 너무 많아 오전 반, 오후 반이 따로 있었고, 2부제 수업을 했다. 오전 반 77, 오후 반 77명이 있어서 한 반 정원은 140명이 넘었다. 전교생은 6천 명이 넘었던 것 같다. 전학을 간 내가 처음에 얼마나 문화 충격을 받았겠는가    

“아유, 촌놈이 별 수 있어?”

시골 학교에서는 공부를 굉장히 잘했기에 선생님이 내 성적표를 보고는 매우 좋아하셨다. 그런데 전학 후 첫 번째 시험을 보고 나서 결과를 보신 선생님은 얼굴이 일그러지셨다. 그리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성적이 왜 이래? 아유, 촌놈이 별 수 있어?”라고 투덜거리시는 거였다. 성격이 소심한 나는 안 그래도 움츠러들어 있었는데, 그 일이큰 상심이 되고 아픔으로 남고 말았다.
사실 전학 오기 전 학교와 수업 진도가 달랐던 것인데, 전학 오자마자 배우지 않은 부분에서 시험을 보았으니 어쩔 수 없이 점수가 안 좋게 나온 거였다. 나는 상심과 억울함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도 그 마음을 몰라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더욱 소심한 아이가 되었고, 점점 더 학교에 적응을 못했다. 어느덧 나는 학교에서 존재감 없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가는 마지막날이었다. 선생님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무언가를 나눠 주셨는데, 나를 장명진이라고 부르셨다. 나는 명성진이다. 1년이 지나도록 선생님이 내 이름을 모르고 계셨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 집은 가난하기까지 했기에 어린 나이에 모멸감을 느끼는 일도 종종 겪어야 했다. 당시에는 중학교 때 월사금을 내야 했는데, 그걸 못 내면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자리에서 일어서 있어야 했다. 그런 일들까지 겪다 보니 극단적으로 소심했던 아이가 어느 순간 반발심이 생기면서 일부러 공부도 안 하고 자꾸만 비뚤어져 갔다.
그렇게 위태로운 사춘기를 겪던 중에 중학교 3학년 초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수학 시간에 칠판 앞에 나와 문제를 푸는 시간이었는데, 문제를 못 풀었더니 종아리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맞은 것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내가 왜 이렇게 맞아야 되나, 저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 게 그렇게 큰 죄인가?’라는 생각을 하다가 화가 나고 오기가 생겨서 공부를 시작했다. 8개월 정도 연합고사 준비를 했더니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가는 학교에 가게 되었다.

“너는 그런 놈이 아니잖아?”

그 학교에서 내 인생을 반전시킨 일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시다가 나를 보시더니 네가 임시 반장 해라.”라고 하셨다. 반장같은 것은 꿈도 안 꿨던, 소심하고 삐딱한 학교 부적응아였던 나에게 임시 반장을 하라니. 그러다가 나중에 반장 투표를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로 반장이 되어 버렸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담임을 맡으신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반은 아침마다 영어 단어 쪽지 시험을 보곤 했다. 그런데 놀던 생활을 정리하지 못했던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부정 행위를 하는 것은 자존심이상해서 쪽지 시험에 백지를 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 백지 시험지를 보시더니 갑자기 내 앞으로 걸어오셔서는 손 내밀어.” 하시고 손바닥을 때리시는데, 선생님 팔이 아플 때까지 때리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프다는 생각보다 이 여자가 왜 이럴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 선생님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명성진, 넌 그런 놈이 아니잖아!”라고 하시면서 몽둥이를 던지고 교무실로 확 가버리시는 거였다. 그 순간 눈앞이 하얘지면서 내 머릿속에는 명성진, 넌그런 놈이 아니잖아잖아잖아라는 말이 메아리가 되어 계속 울렸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늘 느껴 왔던 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는데, 심지어는 1년이 지나도 담임 선생님이 이름을 몰라 주는 그런 아이였는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던 존재감 없는 아이에게 넌 그런 놈이 아니잖아.”라니    

“이렇게 살지 않을게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세수를 하고는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께 저 이렇게 살지 않을게.”라고 말씀드렸다. 바로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선생님이 그때 처음으로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나를 존중해 준 것이다.
소심한 내가 가슴에 한이 되도록 느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내가 권위 있는 존재라고 여겼던 그 선생님의 한 마디 말로 날아가버렸다. 그 선생님 덕분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 모교의 교장 선생님이 되셨다. 어찌 보면 내게는 유일한 선생님이다시피 한 분이다. 선생님은 혹 잊으셨을지라도 분명 그때 열정적인 신참 선생님이 해주신,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진심어린 말 한 마디가 내 인생을 바꿨다     
                       
                    

이 포스트는 세상을 품은 아이들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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