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구 산골짜기에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한 반 정원이 열여덟 명 정도 되었다.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백 명 안팎이었다. 그래서 모든 선생님이 나를 알고, 동네 사람들도 다 나를 알고, 모두가 서로를 알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인천으로 전학을 갔는데,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내 번호가 77번이었다. 학생이 너무 많아 오전 반, 오후 반이 따로 있었고, 2부제 수업을 했다. 오전 반 77명, 오후 반 77명이 있어서 한 반 정원은 140명이 넘었다. 전교생은 6천 명이 넘었던 것 같다. 전학을 간 내가 처음에 얼마나 문화 충격을 받았겠는가.
그 학교에서 내 인생을 반전시킨 일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시다가 나를 보시더니 “네가 임시 반장 해라.”라고 하셨다. 반장같은 것은 꿈도 안 꿨던, 소심하고 삐딱한 학교 부적응아였던 나에게 임시 반장을 하라니. 그러다가 나중에 반장 투표를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로 반장이 되어 버렸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담임을 맡으신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반은 아침마다 영어 단어 쪽지 시험을 보곤 했다. 그런데 놀던 생활을 정리하지 못했던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부정 행위를 하는 것은 자존심이상해서 쪽지 시험에 백지를 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 백지 시험지를 보시더니 갑자기 내 앞으로 걸어오셔서는 “손 내밀어.” 하시고 손바닥을 때리시는데, 선생님 팔이 아플 때까지 때리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프다는 생각보다 ‘이 여자가 왜 이럴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 선생님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명성진, 넌 그런 놈이 아니잖아!”라고 하시면서 몽둥이를 던지고 교무실로 확 가버리시는 거였다. 그 순간 눈앞이 하얘지면서 내 머릿속에는 ‘명성진, 넌그런 놈이 아니잖아…잖아…잖아…’라는 말이 메아리가 되어 계속 울렸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늘 느껴 왔던 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는데, 심지어는 1년이 지나도 담임 선생님이 이름을 몰라 주는 그런 아이였는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던 존재감 없는 아이에게 “넌 그런 놈이 아니잖아.”라니.
이 포스트는 『세상을 품은 아이들』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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