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낡은 공장에 화사한 뷰티 놀이터의 날개를 달다
허문숙 아바마트 대표
“최고경영자는 정답을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혹여 그 선택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 결과에 연연하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항상 플랜 B와 플랜 C를 세워놓고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그들을 격려하고 이끌어가야 합니다.”
아버지가 생산하는 화장용 브러시를 활용해 스물여덟 나이에 창업의 길로 들어선 아바마트 허문숙 대표.
화장용 브러시를 비롯해 립스틱, 아이섀도 등 색조 화장품으로 품목을 넓히며 연 매출 10억원 규모의 뷰티 놀이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제품에 대한 자신감으로 뷰티 블로거를 공략하다
‘아바마트’ 법인 등록 후 적극적으로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허문숙(33) 대표는 유명 뷰티 블로거들을 주목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작정 아바마트의 브러시 제품을 보냈습니다. 제품에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블로거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가성비 높은 브러시라며 호평이 쏟아졌고, 1년 뒤에는 매출이 1억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6년에는 1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허문숙 대표의 부모는 독일에서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처럼 아버지는 파독 광부였고, 어머니는 파독 간호사였습니다. 허문숙 대표가 태어날 즈음 아버지는 오랜 광부 일로 건강에 문제가 생겨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았고, 화장용 브러시를 제조하는 게 어떻겠냐는 독일인 사업가의 제안을 받고 합작회사를 세운 후 1985년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독일 현지법인은 ‘바바라호프만’, 국내 제조공장은 ‘한서화장품기구’라는 법인명을 썼습니다.
1990년대 후반, 허문숙 대표의 아버지는 인건비가 높은 한국 공장을 정리하고 중국 선전으로 건너갔습니다. 화장용 브러시는 물론 장난감 등 다양한 품목을 제조했죠. 그러던 중 아버지의 독일 사업 파트너가 세상을 떠나면서 분쟁이 생겨 독일 수출 라인에 위기가 발생했고, 설상가상으로 선전 공장의 동업자와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톈진에 공장을 세우고, 법인명을 ‘한서코스메틱기구’로 정한 다음 브러시 한 품목에만 집중했습니다.
허문숙 대표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공장 일을 도왔습니다. 중학생 때는 완제품 검사를 하거나 화장용 퍼프를 포장했고,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한 후에는 용돈을 벌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돈을 벌어서 사야 한다는 경제관념이 일찌감치 몸에 뱄기 때문이죠.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던 중·고등학교 시절엔 아버지의 공장에서 생산한 화장용 브러시가 그녀에게 좀더 특별해졌습니다. 브러시를 이용해서 화장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던 겁니다.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도 아버지의 브러시로 화장을 하곤 했는데, 다들 화장이 너무 잘된다며 좋아했습니다.
패션과 화장에 관심이 많아진 그녀는 2003년 한양여대 패션디자인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편집숍에서 일했습니다. 당시에는 로데오 거리가 패션의 중심이었죠.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 데다 패션 트렌드의 중심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옷 가게들이 잘됐지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매장 사장님이 편집숍 세 곳을 운영했는데, 대학을 졸업하니까 제 감각이 마음에 든다면서 직접 운영해보라고 한 곳을 맡기셨어요. 그게 저한테는 첫 번째 사회생활이었던 셈이죠.”
그때가 2006년이었습니다. 일상은 단순했지만 육체적으로 몹시 힘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고객을 응대했고, 일주일에 며칠은 밤 10시에 물건을 사러 동대문으로 가야 했습니다. APM, 디자이너클럽, 청평화시장 등의 단골 거래처를 돌면서 잘 팔릴 만한 제품을 골라 새벽까지 커다란 옷 꾸러미를 끌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2년을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바친 공장을 내버려둘 수 없다
중국 공장 담당자와 허문숙 대표.
그녀는 좀 쉬고 싶었습니다. 친구가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다 온 게 너무 부러워서 그녀도 해외에 보내달라고 부모님을 졸랐습니다. 아버지는 인도는 인구도 많고 시장도 곧 뜰 것 같으니 가서 시장조사도 할 겸 학교를 다녀보라고 권했고, 허문숙 대표는 2008년 인도로 건너갔습니다.
그렇게 인도 생활 8개월을 보내고 귀국날짜가 다가오자 아버지는 한국에 들어가기 전 잠시 톈진 공장에 들르라고 당부합니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중국 공장을 직접 보게 됩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했어요. 거기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어요. 아버지께 이제 고생을 덜 하셨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나도 이제 너무 힘이 드니 네가 브러시를 팔아서 사업을 꾸렸으면 좋겠구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너무 뜻밖이었죠. 저는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을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그 무렵 바이어도 많이 끊겨서 사업 자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이내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바친 공장을 그냥 저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업 승계라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좋은 제품이니까 ‘한번 제대로 팔아보자’는 고집이 발동되었던 것 같아요.”
아바마트 브러시. (사진 출처 아바마트 홈페이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허문숙 대표는 사업자 등록부터 했습니다. 2008년 10월 ‘아바마트’가 탄생한 순간이었죠.
바비브라운이나 맥 등 외국 브랜드가 이미 브러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니 사업이 쉬울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화장을 했고 압구정동에서 편집숍을 운영하면서 패션 감각만큼은 남들 못지않다고 자부했기에 자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브러시 제조 사업을 하니 저는 일상적으로 메이크업 도구를 다뤘지만, 친구들은 브러시 자체를 생소하게 여기고 사용법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저희 집에 놀러와서 처음으로 브러시를 만진 애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또 외국 브랜드는 하나에 5만원을 호가하니 10~20대 젊은 여성들에게는 가격적인 부담이 컸지요. 아바마트 브러시가 가격 부담을 낮추고 쉽게 쓸 수 있는 메이크업 도구로 자리를 잡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격대를 확 낮춘 만큼 로드숍이 아닌 온라인몰에서 승부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포토샵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새벽에 학원을 다녀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제품 사진을 등록했죠. 처음에는 사진이 원하는 스타일로 나오지 않아 유명 스튜디오에 가서 눈동냥을 하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바마트 초창기에는 하루에 주문이 한 건도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출고되는 물건 개수가 1일 25개 이상이어야 택배사가 운송장에 주소지를 넣어 출력해주었기 때문에 밤마다 주문이 25개만 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25개 미만이면 그녀가 손으로 일일이 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주문이 들어오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 손 글씨로 감사하다고 편지를 써서 제품에 동봉해 보내기도 했습니다.
외국 브랜드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가격이 저렴한 데다 품질까지 좋다보니 곧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년쯤 지나자 매출이 상승 곡선을 그렸고 2년차에 이르렀을 때는 순이익으로 1,500만원 넘는 돈이 모였습니다. 그 정도면 작은 사무실 하나 빌리고, 직원 한 사람의 두세 달치월급은 줄 수 있겠다 싶었죠.
허문숙 대표는 2010년 10월 신대방 삼거리에 사무실을 얻고 법인 등록 후 더 적극적으로 사업에 나섰습니다. 브러시와 함께했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제품으로 색조 화장품을 선택해 사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화장품은 공장에 주문해야 하는 초기 물량이 일정 규모 이상은 돼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요. 일단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 기업과 협업을 통해 립스틱부터 시작해서 아이섀도 등 색조 화장품을 다양하게 갖춰나갔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색조 화장품 시장은 핑크색 주류의 공주풍 제품들이 대부분이라 저희는 콘셉트를 ‘개성을 살리는 아름다움’으로 잡고 이미지를 차별화했습니다. 저처럼 평범하지만 개성을 중시하는 여성들을 위한 색조 화장품으로 포지셔닝하고 싶었어요. 우리나라의 화장품은 대체로 품질이 좋은 편이라 콘셉트를 차별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판단했던 거죠.”
아바마트의 2016년 매출은 10억원에 달합니다. 화장품의 매출 비중이 55퍼센트로 브러시 비중을 넘어섰꼬, 퍼프와 브러시 거치대 등 메이크업 도구가 매출의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뷰티박람회 참석 당시 아바마트 부스
허문숙 대표는 올해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할 생각입니다. 구축해놓은 영문 사이트에 각국 소비자들이 들어오는 만큼 해외 고객 비중을 늘려나가는 것도 중·장기 목표입니다. 때문에 2017년 1월 중순 필리핀에서 K뷰티 기업들을 중심으로 열리는 뷰티 파티에 참여한 데 이어 2월에는 미국 대형 백화점 체인인 노스트롬에서 마련한 한국 화장품 뷰티전에도 참가했습니다.
아바마트 허문숙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바마트를 모든 여성들을 위한 뷰티 놀이터로 키우는 것입니다.
“아바마트는 누구나 쉽게 예뻐지는 ‘뷰티 놀이터’를 지향하고 있어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화장을 쉽게 따라 하려면, 가격 진입 장벽이 낮고 화장하는 재미가 있어야 하거든요. 이를 위해 화장품 자체에 디자인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젊은 세대에 게 친숙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다양한 화장법을 제안하고 있어요. 또 아바마트의 주 고객층이 한 살, 두 살 연령대가 높아지는 데 맞춰서 프리미엄 브랜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는 『그녀의 창업을 응원해』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