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넌 나처럼 살지 마,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 우리 안의 라푼젤과 고델 부인

인문 교양 읽기/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

by 스마트북스 2018. 7. 2. 15:48

본문

넌 나처럼 살지 마,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 우리 안의 라푼젤과 고델 부인

고델 부인, 혹은 라푼젤

 

라푼젤에는 평행을 이루는 두 가지 침입이 일어난다. 하나는 마녀의 담을 넘어 들어가는 침입, 또 하나는 라푼젤의 탑에 올라 들어가는 침입이다. 남자의 침입에 분노하며 독설을 퍼붓고 저주하는 늙은 고델 부인과 아직 순수하고 무구하게 탑에 온전히 갇힌 라푼젤을 나란히 견주어 보게 된다.
그런데 늙은 고델 부인을 단순히 이 모든 사건의 가해자로 볼 수 있을까? 고델 부인은 왜 마녀가 되었을까, 왜 자기 정원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높은 담을 둘렀을까? 왜 남자의 침입에 불같이 화를 낼까? 답은 단순하지 않다.
한 여성의 뒤틀린 삶이 다른 세대의 여성에게 대물림되는 순환의 고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남자를 믿으면 안 되고,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고 역설하는
늙은 고델 부인이 젊어서는 남자에게 잔뜩 상처받은 또다른 라푼젤이며, 라푼젤이 남자에게 버림받고 늙으면 자신처럼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넌 나처럼 살지 마라혹은 난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라는 말을 하는 엄마의 딸로 살지만, 우리 삶에 고델 부인과 라푼젤의 모습이 한 조각씩 다 존재하며, 이 조각들이 맞물려 순환하며 이어지는 것을 보면 슬퍼지기도 한다.
평생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면서 남자의 집안에 희생하고 봉사하다가 늙어버린 엄마의 체념, 분노, 슬픔 등이 딸들을 나처럼 살지 말라며 세상으로 밀어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힘은 동시에 남자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로 바뀌어 높고 외진 탑에 스스로를 가둬버리기도 한다.

배배 꼬이고 뒤틀린 힘

고델 부인은 여성 속에 내면화된 사회문화적 가치, 그것도 역전되고 전복되고 뒤틀린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압제가 많으면 어떤 가치가 내면에 온전하게 자리잡기보다는 배배 꼬이고 뒤틀어져서 자리잡게 된다.
사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순순히 받아들이며 별 고민 없이 사는 여자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여자들은, 아니 많은 여자는 삶의 에너지가 넘쳐서 한 자리에만 있어라혹은 무언가를 하지 마라등의 금기에 자신을 억누르다 보면 속이 뒤틀린다.
그 뒤틀린 힘이 동화 속 마녀이고 계모이다. 그렇게 행동하면 벌 받지’ ‘그렇게 행동하면 큰일나지하고 위협하며 겁박하는 내면화된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적 가치관을 받아들이되, 싫은 것을 억지로 받아들여 배배 꼬이면, 순결이 중요하고 지켜야 한다면서 문도 계단도 없는 탑에 가두는 작태가 벌어진다. 어쩌면 자신의 본성을 알기에 무의식적으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내면에 도사린 에너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면 스스로가 아주 꽁꽁 싸서 가두려고 들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라푼젤은 내면화된 여성 순결의 가치에 갇혀서 세상 구경 한 번 못 하는 뒤틀린 여성의 반영이라 하겠다.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머리카락을 잘리는 일이 세상으로 나가는 첫걸음이다. 왕자는 계기일 뿐이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존재mothering figure로부터의 분리, 거세 등을 상징한다. 라푼젤의 경우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존재와의 분리를 통해 심리적인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라고 보면 된다. 배배 틀어지고 꼬인 내면의 어머니 초자아로부터의 심리적인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어머니와 이어져 있던 심리적인 탯줄을 끊는 행위로 보는 것이 훨씬 적절하다.

눈먼 남자가 나를 알아보기까지

이성과의 사랑 앞에 서면 비로소 독립된 개체로 시험을 받는 때가 된다.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된 성인 남녀로 서로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독립이 한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사랑 역시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처 다 크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독립적이지 않은 사람들끼리 얼마든지 사랑에 빠질 수는 있으나, 그 사랑이 아름답게 완성되고 결실을 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독립하는 데에는 황야를 헤매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슴 아픈 지점은 황야를 헤매는 여자를 찾는 남자는 눈이 멀었다는 점이다. 이 멀었다는 것은 사람 속의 참사람을 볼 줄 모른다는 뜻이다.
세상의 숱한 얄팍한 인연들이 그런 것처럼, 겉으로 드러난 모습, 외모만을 보고 다가온다는 것은 그 이상의 깊은 교감을 원하는 여자에게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그래서 둘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다.
남자가 왕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눈이 먼 상태로 세상을 방황하며 돌아다닌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눈뜰 준비가 된다. 여자는 황야에서 남자의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근근이 버틴다. 변방으로 밀려난 삶의 신산함을 알알이 겪으며 아이들로 상징되는 삶의 짐을 짊어진 채로 말이다. 그렇게 사람은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을 겪는다.
영어에는 ‘Time-tested love’라는 표현이 있다. 시간의 시험을 거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뜻이다. 많은 사랑이 이 시험을 받아서 시들어 퇴색한다. 사랑이 시작될 때에는 빠지는 fall’ , 즉 추락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이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으로 끌려가는 두 사람을 건져 올려 함께 상승하는 것은 시간의 시험을 거쳐야 가능하다.
   

황야를 가득 채우는 노래

황야는 비어 있는 공간이다. 어쩌면 처절하게 자신과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롯이 자신의 삶과 마주하고 텅 비어 있는 어둠의 바닥에서 자신을 건져올릴 힘을 기르면, 능히 황야를 그득 채우는 노래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높이 솟은 탑에서 홀로 부르던 노래가 시선을 끌기 위한 노래였다면, 이젠 들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도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된다. 그리고 눈이 멀어 세상을 헤매던 남자의 귀는 드디어 이 노래를 듣는다.
높은 곳에서 쉽게 퍼지던 그 운율이 아니라, 음향을 반사해 퍼뜨릴 것 하나 없는 평지에서 나지막하게 홀로 부르는 노래를 드디어 듣는다. 사람을 알아볼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운율을 들을 마음을 입었을 때, 노래하는 그녀를 만나 드디어 시력을 되찾고 왕자의 지위를 회복한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세계를 여는 법

 흔히 라푼젤의 눈물로 남자가 눈을 뜨는 것이 기적이라고들 하지만, 운 것은 여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제 드디어 세상 끝까지 헤맨 끝에 내면의 눈이 생겨 참사랑을 알아보고 찾는 순간, 남자도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기적은 두 눈물이 섞였을 때 일어난 것이라 믿는다.
치유는 치유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일어난다. 존귀한 왕자라는 신분을 되찾는 것은 내면의 자존감을 다시 찾는 것을 뜻한다. 내면세계에서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다 왕자이고 공주이니 말이다. 그득한 자존감으로 내면이 회복될 때에 사람은 비로소 사랑 안에서 흔들림 없이 상대를 붙잡고 새로운 세계,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로 살아가는 세계를 열 수 있다. 그렇게 ‘happily-ever-after(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세계가 열린다.
빛나는 황금 머리 타래를 모두 잃은 후, 세상의 변방인 황야로 쫓겨난 세월을 모두 견디고는 다시 서서히 자라난 황금 머리카락과 함께 세상의 중심으로 귀환한다. 어려운 시험을 거쳐 이룬 사랑은 결국 모든 것을 중심으로 돌려보내주는 힘이 된다. 그리고 많은 동화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이유는 사랑이 모든 것을 중심으로 되돌리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라푼젤은 힘들게 완성한 사랑의 힘을 통해 황금으로 빛나는 자존감의 중심으로 돌아간다.


라푼젤 | Rapunzel
아기를 가진 여인은 옆집 마녀의 정원에서 자라는 라푼젤(초롱꽃)을 먹고 싶어했다남편이 담장을 몰래 넘어가서 라푼젤 한 움큼을 뽑다가 마녀에게 들켰다. 마녀는 라푼젤을 주는 대신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했고, 아이가 태어나자 이름을 라푼젤이라고 짓고는 데려가 버렸다.
라푼젤은 살아 있는 아이 중 가장 아름다운 아이로 자랐다. 열두 살이 되자 마녀는 라푼젤을 숲속 깊은 곳, 문도 계단도 없고 꼭대기에 창문 하나만 있는 탑에 가두었다. 탑에 올라가고 싶으면 마녀는 아래에서 외쳤다. “라푼젤아, 라푼젤아, 머리를 내려라.”
몇 년이 지난 후 한 왕자가 숲속을 지나가다 노랫소리를 듣고 탑을 발견했다. 왕자는 탑 근처에서 숨어 있다가 노파가 하는 걸 따라해 탑에 올라갔다. 라푼젤과 왕자는 사랑에 빠졌다.
 어느 날 라푼젤이 실수로 말했다. “고델 부인, 어떻게  왕자님보다 무거울 수 가 있죠? 왕자님은 단숨에 올라오던데 말이죠.”
마녀는 라푼젤의 머리채를 싹둑 자른 후 황야로 쫓아내고 라푼젤의 자른 머리채를 가지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왕자가 라푼젤아, 라푼젤아, 머리를 내려라라고 외치자 마녀는 라푼젤의 머리채를 내려주었다마녀는 깜짝 놀란 왕자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네가 찾던 아름다운 새는 더 이상 창가에 앉아 노래하지 못해! 고양이가 채어가 버렸지. 그리고 네 눈도 뽑아가 버릴걸. 너는 다시는 라푼젤을 보지 못할 거야.”
왕자는 너무 상심해서 탑에서 뛰어내렸고, 목숨은 건졌으나 가시덤불에 눈을 찔려 눈이 멀어버렸다. 그렇게 눈이 먼 채로 숲으로 황야로 떠돌기 시작했다.
몇 년을 그렇게 떠돌던 어느 날, 왕자의 귀에 라푼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왕자의 아이, 남녀 쌍둥이를 낳아 키우던 라푼젤은 왕자를 알아보았고, 그의 눈이 먼 것을 보고는 얼싸안고 눈물을 쏟았다. 그 눈물이 왕자의 눈에 들어가자, 왕자는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된다. 왕자는 기뻐하며 라푼젤과 아이들을 이끌고 왕국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이 포스트는 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