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에 몇천만원 모으기'로는 안 된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1년에 2000 플랜’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1년에 2000 플랜은 1년에 2,000만 원을 모으기 위한 계획으로, 한 달에 약 167만 원을 저축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2,000만 원이야?”라고 묻는 질문에 그는 1년에 2,000만 원 정도는 모아두어야 자신이 생각하는 ‘보통의 서른살’에 부합할 수 있을 것같다고 하더군요.
사회 초년생인 그가 실제로 매달 167만 원을 저축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활이 어려워지더라도 그 저축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는 듯 보였습니다.
OO살이라면 최소 얼마는 갖고 있어야 하고, 그러니 얼마는 저축하라는 조언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재고 따질 것 없이 그 숫자만 목표로 삼고 달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목표는 개별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와 환경, 필요와 욕구와는 동떨어진 허구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보통의 OO살’이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그 보통에 맞추기 위해 고생해야 하는 건 여기 존재하는 특수한 자신이니까요.
그냥 저축 대신 이름표 저축
무작정 ‘5,000만 원을 모으자’, ‘1억 원을 모으자’는 목표는 돈을 모으기 위해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않습니다. 상담을 할 때면 내담자의 지금까지 모은 금융자산을 살펴보고, 이 금융자산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는데요. 대다수의 경우 구체적인 목표보다는 ‘그냥’ 저축을 한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건지도 알 수 없는 5,000만 원과 1억 원은 지속적으로 저축을 유지하는 동기가 되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막연히 큰 금액을 갖고 싶어서 야심차게 시작해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름맞이 여행상품 앞에서,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동생의 부탁 앞에서 목표를 잃고 흐지부지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설령 어렵게 돈을 모았다고 해도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목적이 없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 쓰이기도 하고요. 그러므로 내 돈을 모으고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위해 돈을 모으는지 저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왜’ 돈을 모으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를 정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먼저 다음 세 가지를 목표로 돈을 모아보세요.
첫 번째 저축 : 비상자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먼저 마련해야 할 자금은 비상자금입니다. 보통 비상자금은 한 달에 지출하는 생활비와 대출 상환금 합계의 최소 3개월치로 잡는데요. 갑자기 소득이 중단되어도 최소한 3개월 정도는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금액이 비상자금입니다. 이 자금은 ‘갑자기 제주도에 가고 싶어졌다. 비상이야!’ 하면서 쓸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3개월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을 수 있지요. 그럴 때는 자신의 기준에 맞춰 6개월, 1년, 3년 등의 생활비를 비상자금으로 준비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나의 한 달 생활비가 150만 원이고 대출 상환금이 20만원이라면 한 달에 총 지출하는 금액은 170만 원입니다. 이 경우에 최소 비상자금은 170×3개월인 510만 원이 됩니다. 비상자금이 1년치는 있어야 할 것 같다면 170×12개월인 2,040만 원이 내게 필요한 비상자금이 됩니다.
이렇게 비상자금을 마련해두면 불안정한 미래 앞에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조금은 다잡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저축 : 주거안정자금
비상자금으로 필요한 돈을 다 모았다면 다음 목표는 주거안정자금입니다. 모두에게 필요하면서도 가장 비싼 상품이 집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거주한다면 첫 보증금을 목표로, 이미 독립을 했다면 2년마다 돌아오는 재계약에 대비해 보증금 인상분을 준비합니다.
보증금은 집마다, 계약마다 다르기 때문에 얼마를 모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얼마가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막연히 보증금을 모아야지라고 생각하면 돈이 영영 모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에 맞게 2년 동안 2,000만 원, 1,000만 원 등으로 기준점을 잡아놓고 목표치를 달성하며 자산을 늘려나갑니다.
그렇게 저축을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 그동안 모은 주거안정자금을 결혼자금으로 사용해도 좋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독립이나 보증금 인상을 위해 사용하면 됩니다.
세 번째 저축 : 1년 내에 하고 싶은 것
이렇게 비상자금이나 주거안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추가로 다른 목표들에 대해 생각할 여력이 없습니다. 이미 이 두 가지 목표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월급이 빠듯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미래의 안정을 위해서만 저축을 한다면 돈을 모으는 재미는 떨어질 거예요. 좀 더 욕심을 부려 저축을 통해 1년 안에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계획해두면 추가 저축을 위한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아니잖아요? 유럽 여행이나 대학원 진학처럼 거창한 목표일 필요는 없습니다.
국내에 있는 절 탐방, 와이너리 투어, 아이패드 구입 등 다양한 목표를 세우는데요. 이렇게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들을 미리 생각해 두어야 돈이 모이고, 또 모인 돈을 정말 원하는 곳에 쓸 수 있습니다. 계속 하고 싶은 것들, 사고 싶은 것들을 참기만 하면 나중에는 돈이 생겼음에도 무엇을 하면 좋을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금액 목표 대신 우선순위 저축
비상자금, 주거안정자금, 1년 내에 하고 싶은 일은 그 순서대로 저축의 우선순위입니다. ‘나는 1년에 2,000만 원을 모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한 달에 167만 원을 모아야 해’라고 계획한다 해도 내가 저축할 수 있는 여력이 100만 원뿐이라면 결국 현실적으로 내가 저축하는 금액은 100만 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축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른 매달의 저축 필요 금액을 정하는 대신에 내가 저축하는 만큼 ‘나의 우선순위’가 대비된다고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1년에 2000 플랜’을 목표로 할 때 실행 가능한 현실의 100만 원 저축은 실패한 것이지만, ‘저축의 우선순위’를 채운다고 생각하면 100만 원만큼 성공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으는 돈을 충동적으로 쓸 위험도 줄어들고요.
큰 저수지를 상상한 뒤 매달 저축을 할 때마다 그 저수지에 물이 찬다고 생각해보세요. 일정 수준이 되면 올해에 비상자금을 위한 물이 채워집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주거안정자금이, 마지막으로 1년 내에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자금이 모아지고요.
예를 들어 올해에 비상자금으로 500만 원, 주거안정자금으로 1,000만 원, 1년 내에 하고 싶은 일로 아이패드 구입 100만 원이 목표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저수지의 총 용량은 1,600만 원이 되겠지요?
그런데 나에게 이미 1,000만 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미 500만 원의 비상자금과 500만 원의 주거안정자금이 모인 거예요. 앞으로 저축하는 돈은 주거안정자금과 아이패드를 위해서 모이는 거고요.
내가 필요한 돈은 얼마인가?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를 모른다면 우리는 불안해집니다. 반면에 그보다 적은 돈을 갖고 있어도 내가 얼마가 필요한지를 명확하게 안다면 문제는 훨씬 쉬워집니다. 따라서 저축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돈을 왜 모으는지,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느 정도의 금액을 모을 것인지 기준점을 잡는 일입니다.
이 포스트는 미스 페니의 『나의 첫 번째 머니 다이어리』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돈 관리 첫 걸음,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제대로 들여다보기 (0) | 2019.08.01 |
---|---|
자산성 저축 vs 소비성 저축, 나의 저축 스타일은? (0) | 2019.07.31 |
알면 돈 버는 2030을 위한 공공정책 3가지 (0) | 2019.07.26 |
씀씀이가 한 눈에 보이는 돈 관리, 지출항목 구성법 (0) | 2019.07.25 |
올 여름엔 다이어트와 돈 관리 두 마리 토끼 잡아볼까? (0) | 2019.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