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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는 과연 존재하는가

인문 교양 읽기/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2

by 스마트북스 2021. 5. 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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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예로 들어보자. 인간이란 무엇일까? 김서연, 이준서와 같은 각각의 개인들이 인간이다. 그러면 김서연이나 이준서 같은 개인이 아니라 그냥 인간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존재할까? 즉 인간의 이데아가 존재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인간의 이데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쉽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 너머의 개념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만약 ‘인간’에 대한 이데아(개념)이 없다면,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은 전부 ‘없는 것’에 대한 지식, 거짓말인 셈이다.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원의 이데아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인간은 영장류이다’, ‘인간은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사용하며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지능이 높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등 이 모든 이야기가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 즉 허구가 된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자동차 바퀴를 생각해보자. 바퀴는 동그랗게 만들어야 한다. 동그랗게 만들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으니 바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원이다. ‘의 이데아가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자동차의 바퀴가 굴러가려면 바퀴 축을 돌리는 엔진의 힘이 필요하다. 여기서 도 이데아이다. 연료가 가솔린이든 경유든 전기든 상관없이 결국 바퀴 축을 돌리는 힘이 만들어져야 바퀴가 굴러가는 것이다. 이때 힘은 이데아로만 설명될 수 있다.

이데아는 다른 것보다 더 진정한 존재다

, 여기서 플라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데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다른 것보다 더 진정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김서연, 이준서보다 인간의 이데아가 더 진정한 존재이고, 자동차 바퀴보다 원의 이데아가 더 진정한 존재라 믿었다.

좀 이상한 이론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다. 진정 존재한다는 것은 영구불변하다는 뜻이다. 김서연, 이준서 등의 개인은 100년 내외의 인생을 살다가 사라지지만, ‘인간에 대한 지식은 수천 년 동안 발전해왔다. 고무로 만든 자동차 바퀴도 길어야 수십 년 존재하다가 폐기처분되겠지만, 원의 이데아는 수학 속에서 수천 년간 존재해왔다.

이데아야말로 현실세계 너머에 있는 완전하고 영원불변하는 진짜 세계인 것이다.
우리는 진짜 보석과 가짜 보석을 금방 구별할 수 없다. 둘의 차이는 가짜 보석은 곧 색이 변하고 쉽게 깨지지만, 진짜 보석은 변하지 않고 더 단단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존재자라면 더 오랫동안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데아가 그런 것이다.

이데아는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세상의 이치 혹은 불변의 법칙이다

이와 같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동양사상의 용어로 바꾸어 설명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동양에서 추구한 것은 도()이다. 혹은 세상의 이치(理致) 혹은 불변의 법칙 같은 것 말이다.

여러분은 세상 만물의 변화를 다스리는 이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상가가 그런 이치나 법칙을 추구해왔다. 세상 만물의 이치, 즉 도()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내용일까?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이 곧 공이며, 공이 곧 색이라’. 다시 말해 물질적 세계인 색()과 비어 있는 공()의 세계가 다르지 않다는 것일까? 혹은 노자가 말하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와 같은 것일까? 이런 진리에도 깊이와 통찰이 있겠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불교나 도교의 도는 노력한다고 해서 아무나 깨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오래 생각해봐도 알 듯 모를 듯하다. 반면 플라톤의 이데아는 매우 분명하다.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_ 이 포스트는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2』 2장 세상을 바꾼 철학자의 한마디(이창후) 61~64쪽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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