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악타 디우르나에서 유튜브까지! 간단히 정리해 보는 소셜미디어의 역사

인문 교양 읽기/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2

by 스마트북스 2021. 5. 12. 19:15

본문

신문의 조상 악타 디우르나

고대 로마의 공화정을 이끌었던 집정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B C 59년 무렵 광장에 마련된 게시판에 공고문 형식의 관보를 게재했다. 처음에는 법률, 황제의 칙령, 재판 결과 등 정치 관련 소식을 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명절과 종교 축일, 일월식 날짜, 중요한 인물의 출생이나 사망, 결혼 소식 등을 포함한 안내문도 추가했다. 이것이 바로 신문의 할아버지뻘로 불리는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다.

광장에 게시된 악타는 이틀이 지나면 별도로 보관했으나, 온전한 원본 악타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참고로 디우르나(Diurna)는 ‘매일’이라는 의미를 지닌 저널(journal)의 어원이다.

정보가 곧 권력

카이사르는 뛰어난 정치가로 ‘정보가 곧 권력’이던 로마에서 악타 디우르나를 이용해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정치적 계산이 있었겠지만, 원로원의 소수 귀족이 아니라 시민에게 정보를 공유했다는 차원에서 현대 미디어의 역할과 맥이 닿아 있다. 왜 2100여 년 전 과거에서 미디어의 흔적을 찾는 것일까? 인류의 문명이 탄생한 후, 결속과 연대라는 가치를 공동체에 구현하기 위한 움직임이 끊임없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출판의 대중화

근대적 의미에서 미디어의 출발 기준을 찾는다면 출판의 대중화가 시작된 15세기라고 할 수 있다. 15세기는 유럽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등으로 식민지를 개척한 시기로 ‘대항해 시대’라고 한다. 1492년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콜럼버스(1450~1506)가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금과 보물을 찾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콜럼버스의 1차 항해가 성공한 후, 유럽의 강국들은 식민지 개척을 통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고 탐험에 나섰다.

 

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

미디어의 특징 중 으뜸으로 꼽히는 것은 정보 공유다. 사람이 모이고 부를 형성할 수 있는 곳에 정보가 생기게 마련이다. 신문도 그렇게 탄생했고, 1인 미디어를 표방한 유튜브 역시 그렇다.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게 정보를 교류할까.’ 인류는 그 답을 찾아 진화하고 있다.

매체를 기준으로 미디어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책이다. 1440년 무렵 구텐베르크가 금속인쇄술을 발명하기 전까지, 책은 왕이나 귀족 등 소수 권력층의 전유물이었다. 파피루스, 죽간, 양피지, 종이 등 재료가 바뀌기는 했지만 글자가 적힌 책은 항상 진귀한 보물이었다.

15세기 말의 필경사

 

앨리 프린트숍 박물관에 있는 구텐베르그 인쇄기의 복제품

 

특히 책에 적힌 지식은 국가 통치에 필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이를 쓰고 읽는 사람들이 별도로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종교에 관련된 정보를 다루는 지식층이었다. 책을 만드는 작업도 이들의 몫이었다. 당시에는 말을 하는 사람과 그 말을 옮겨 적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연설이나 대화를 글로 옮겨 적는 사람을 ‘필경사’라고 한다. 필경사는 17세기까지 전문직이었고 대부분 교육을 받은 수도사들이었다.

_ 이 포스트는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2』 3장 미디어 리터러시 & 실용 글쓰기(장선화) 96~98쪽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