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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치열한 프레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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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트북스 2017. 4. 2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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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치열한 프레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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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은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인지 심리학자인 대니얼 사이먼스 교수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실험입니다. 실험 대상자의 무려 50퍼센트가 고릴라 같은 건 없었는데요.” 라고 대답했다는군요.
왜 그랬을까요? 시선은 오로지 공에만 쏠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감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지 구조는 불완전하며, 얼마든지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뻔히 고릴라가 나왔는데도, 공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이 말을 듣고 무엇이 떠오르나요? 아마도 코끼리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아니,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래도요!”
말의 내용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코끼리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먼저 코끼리를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고 할수록 머릿속에는 코끼리가 더욱 강하게 남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지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언어가 어떻게 인간의 생각을 형성하는지 연구한 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1941~ )는 이것이 프레임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실험에서 사이먼스 교수가 공을 보라고 했을 때와, “고릴라가 보이는가?”라고 했을 때, 두 경우에서 각각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이 달라졌지요. 이렇듯 말에 따라 인식하는 상황, 즉 프레임이 달라집니다.    

프레임, 생각의 기본틀

 
아프리카 오지 여행을 가서 듣도 보도 못한 동물을 만나거나, 한 중학생이 책을 읽다가 생소한 철학 용어를 보았다고 해요.
우리의 뇌는 어떤 대상이나 개념을 처음으로 접하면, 그것을 인식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모르던 것도 한번 알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그것을 다시 인식하는 데 시간이 짧게 걸리죠.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쓴다고 합니다. 뇌가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고 생각을 하는 데는 이처럼 힘이 많이 들죠. 그래서 인간은 힘을 적게 들이고 효율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생각을 처리하는 방식을 공식처럼 만들려고 합니다.
프레임(frame)기본 틀, 뼈대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생각의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죠. 인간은 생각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프레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레임은 아이디어나 개념을 구조화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하며, 행동하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프레임을 잘 사용하고 있어요. 다만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이 프레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죠.

사기꾼과 용의자, 장유유서와 노인매너

프레임은 일상에서 쓰는 말에도 녹아 있어요. 예를 들어 A라는 여자가 인터넷 카페에서 가짜 상품을 명품이라고 속여 팔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해요.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은 그녀를 사기꾼이라고 하고, 어떤 기자는 신문에서 용의자라고 표현합니다.
사기꾼이라고 하면 이미 사기라는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되죠. 반면 용의자라고 하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사람입니다. 두 말은 의미가 뚜렷하게 다릅니다. 그녀를 사기꾼이라고 하는지, 용의자라고 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식도 달라집니다. 이처럼 프레임은 말과 은유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칩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란 말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프레임 중 하나입니다. 노인과 어른, 또는 윗사람과 아랫 사람 사이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다는 말입니다. 노인은 윗사람이니 더욱 공경받고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일부 노인들이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고 장유유서를 강요하며 세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임산부에게 젊은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호통 치는 노인도 있었죠. 또 노인임을 내세워 줄을 서지 않는 이도 있고요.
그러면서
노인도 공중도덕을 지키고 다른 이를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이에 노인 매너’, ‘노인 품격이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장유유서라는 프레임이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이처럼
프레임은 세상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하며, 변화에 맞지 않는 프레임은 경쟁력을 잃고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왜 프레임에 갇힐까?

흔히 인간은 이성을 가진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언론, 또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나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모두 한목소리로 말하면, 잘못된 프레임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하는 인간의 실제 모습입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실험을 다시 생각해 볼까요. 실제로는 고릴라가 지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사건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언론을 장악한 사람들이 고릴라가 아니라 농구공을 몇 번 주고받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고릴라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프레임의 문제는 이 고릴라 실험보다 훨씬 심각하죠.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부자들의 편에 서서 상속세를 줄이자고 주장했습니다. 레이건은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상속세를 죽음세라고 표현했습니다. 상속세는 죽은 다음에 재산을 물려줄 때 붙는 세금으로 당연히 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세라고 하면, 왠지 죽어서까지 세금을 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죠.
상속세를 줄이는 것은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입니다(가난한 이는 물 려줄 재산이 없죠).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가난하면서도 죽음세라는 말의 프레임에 갇혀서 상속세를 줄이자는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신에게 불리한 정책인데도 말이죠. 이것이 바로 프레임의 힘입니다.

정치와 선거,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프레임은 이처럼 힘이 셉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 정부, 언론은 프레임을 먼저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정치란 결국 프레임 전쟁이라고 합니다. 누가 어떤 프레임을 만들어,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하느냐의 문제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기존 프레임을 바꾸지 않고 지키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때 그 프레임이 틀렸다며 사실이나 진실을 나열해 봤자 거의 달라지지 않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할수록 자꾸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오히려 그 프레임을 강하게 만드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죠.
결국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을 담은 프레임을 계속 만들어야 합니다.. 더 많은 문제와 영역을 우리의 가치로 해석하고, 도덕적인 세계관 안에 녹여 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프레임을 행동과 목소리를 통해 반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프레임이 바뀌고 인식이 변할 수 있습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레임을 새로 조직하는 것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이 포스트는 최진기의 교실밖 인문학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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