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동영상 하나 먼저 보시겠어요?
동영상에서 지시하는 대로 집중하세요.
이 실험은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인지 심리학자인 대니얼 사이먼스 교수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입니다. 실험 대상자의 무려 50퍼센트가 “고릴라 같은 건 없었는데요.” 라고 대답했다는군요.
왜 그랬을까요? 시선은 오로지 공에만 쏠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감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지 구조는 불완전하며, 얼마든지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뻔히 고릴라가 나왔는데도, 공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이 말을 듣고 무엇이 떠오르나요? 아마도 코끼리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아니,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래도요!”
말의 내용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코끼리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먼저 코끼리를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고 할수록 머릿속에는 코끼리가 더욱 강하게 남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지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언어가 어떻게 인간의 생각을 형성하는지 연구한 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1941~ )는 이것이 프레임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에서 사이먼스 교수가 “공을 보라”고 했을 때와, “고릴라가 보이는가?”라고 했을 때, 두 경우에서 각각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이 달라졌지요. 이렇듯 말에 따라 인식하는 상황, 즉 프레임이 달라집니다.
프레임은 일상에서 쓰는 말에도 녹아 있어요. 예를 들어 A라는 여자가 인터넷 카페에서 가짜 상품을 명품이라고 속여 팔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해요.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은 그녀를 ‘사기꾼’이라고 하고, 어떤 기자는 신문에서 ‘용의자’라고 표현합니다.
사기꾼이라고 하면 이미 ‘사기’라는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되죠. 반면 용의자라고 하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사람입니다. 두 말은 의미가 뚜렷하게 다릅니다. 그녀를 사기꾼이라고 하는지, 용의자라고 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식도 달라집니다. 이처럼 프레임은 말과 은유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칩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란 말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프레임 중 하나입니다. 노인과 어른, 또는 윗사람과 아랫 사람 사이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다는 말입니다. 노인은 윗사람이니 더욱 공경받고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일부 노인들이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고 장유유서를 강요하며 세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임산부에게 젊은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호통 치는 노인도 있었죠. 또 노인임을 내세워 줄을 서지 않는 이도 있고요.
그러면서 노인도 공중도덕을 지키고 다른 이를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이에 ‘노인 매너’, ‘노인 품격’이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장유유서라는 프레임이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이처럼 프레임은 세상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하며, 변화에 맞지 않는 프레임은 경쟁력을 잃고 사라지게 됩니다.
프레임은 이처럼 힘이 셉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 정부, 언론은 프레임을 먼저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정치란 결국 ‘프레임 전쟁’이라고 합니다. 누가 어떤 프레임을 만들어,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하느냐의 문제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기존 프레임을 바꾸지 않고 지키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때 그 프레임이 틀렸다며 사실이나 진실을 나열해 봤자 거의 달라지지 않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할수록 자꾸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오히려 그 프레임을 강하게 만드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죠.
결국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을 담은 프레임을 계속 만들어야 합니다.. 더 많은 문제와 영역을 우리의 가치로 해석하고, 도덕적인 세계관 안에 녹여 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프레임을 행동과 목소리를 통해 반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프레임이 바뀌고 인식이 변할 수 있습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레임을 새로 조직하는 것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이 포스트는 『최진기의 교실밖 인문학』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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