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대 대형마트의 구도는 매우 오래된 논란 주제 중 하나다. 이 이슈가 언론에 오르내린 지 20년 정도 되어가지만, 여전히 많은 이야깃거리와 논쟁을 낳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시장 대 대형마트의 구도는 영세업자와 대기업, 즉 약자와 강자의 구도로 조명되기에 이것을 선악의 문제로만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20년 가까이 전통시장에 대한 정책을 지지했으며, 정치권과 정부도 많은 정책과 예산을 투입해왔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에는 연간 2,000억 원정도의 예산이 투입되었고, 지금까지 10년 동안 약 2조 원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동안 투입한 예산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에 뒤처지며 쇠락하는지 그 이유부터 생각해보자. ‘나쁜 대기업’과 ‘착한 시장’ 같은 선악의 이미지는 던져버리자. 이런 구도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기에 정부는 전통시장의 위기 원인을 시설의 노후화에서 찾았다. 낙후된 시설, 주차장이나 카트도 없는 환경이 시장 방문을 꺼리게 만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재래시장 현대화’라는 표어 아래 시설들을 개선하고 뚜껑을 덮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인근에 주차장을 확보하고 카트를 비치하기도 했다. 시장은 적어도 과거에 비해 물리적으로는 많이 개선되었다. 그렇다면 경쟁력이 생겼을까? 그렇지 않다.
상점이든 제조업 공장이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 지을 수 있다. 하드웨어가 물리적인 시설과 장비라면, 소프트웨어는 그것을 돌리고 기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오랫동안 예산을 쏟아부은 쪽은 바로 시장의 하드웨어였다. 이러한 시설투자는 돈을 들인 만큼 개선된 것이 눈에 쉽게 띈다. 그래서 정책 지원 결정을 내리기에도 유효할뿐더러 보고가 중요한 구조에서는 이러한 가시성이 우선순위가 된다.
그러나 하드웨어를 아무리 개선하더라도 그것을 움직이고 돌릴 소프트웨어가 개선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LCD모니터와 쿼드코어 CPU, SSD까지 설치한 컴퓨터에 윈도우 95를 설치하면, 결국 그것은 윈도우 95가 돌아가는 컴퓨터일 뿐이다.
시장의 하드웨어를 구성하는 것이 건물과 상점 등이라면,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것은 시장 상인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운영방식과 시스템은 현대의 방식, 특히 소비를 주도하는 30, 40대의 스타일과는 굉장히 거리가 있다. 단적인 것이 위생에 대한 인식이다.
나는 시장을 찾는 것을 좋아하지만, 방문할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것 중 하나가 때가 끼어 검게 변한 스티로폼이다. 주로 상품의 디스플레이를 위한 받침대로 쓰이는데, 매우 불결해 보여서 그 위에 놓인 물건을 구매하기 꺼려진다. 애초에 그것을 디스플레이 도구로 활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매일 교체만 해줘도 그 정도로 더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외에도 위생적으로 다소 꺼려지는 것들이 많다.
정찰제가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가격 흥정이 가능한 시스템은 현재의 30, 40대에게는 매우 피곤한 요소이다. 현대 소비자들은 정해진 가격을 확인하고 예산에 따라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행태를 가지고 있다. 일일이 가격을 물어보는 것이 피곤할 뿐더러, 특히 흥정의 경우 직장생활로 인해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또한 흥정이 가능하다는 것은 사정에 밝지 못한 사람은 더 비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전통시장을 대변하는 ‘정’이나 ‘덤’도 도시인들의 생활 특성과는 잘맞지 않는다. 농경사회에서는 한 지역에서 평생을 살다 보니 시장 상인과의 인적관계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인들은 직장, 자녀교육 등의 이유로 주거이동이 잦은 편이기에 같은 지역 주민이라도 결속력이 낮다. 그래서 정과 덤은 도시인들에게 장점은커녕 불편하고 귀찮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정리해보면, 사람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방문하게 만들려면 그것만이 가진 장점이 필요하다. 그런데 몇몇 시장을 제외한 대부분은 차별화된 장점이 없는 실정이다.
전통시장의 위기는 그것을 움직이는 상인들이 현대의 트렌드에 맞추지 못하고,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기존의 영업방식과 시스템을 지지해줄 장노년층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그 점에서 보자면 전통시장은 위기가 아니라 세대교체에 의한 자연적 쇠퇴라고도 볼 수 있다.
전통시장의 쇠락과 쇠퇴가 소비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과거의 답습은 시간이 흐르고 주요 소비자층이 바뀌면 천천히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30년 전까지 동네 시장은 우리가 소비를 하기 위해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깝고 편한 소비처였다. 그 이후 생활 패턴이 변하고 경쟁자가 등장했지만, 시장은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여전히 과거를 답습하고 경쟁자를 비판하는 데 급급했다. 그 덕분에 지지를 얻어서 오랫동안 막대한 예산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바뀐 것은 껍데기뿐이었기에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30년 전까지 시장이 담당하던 역할은 이제 대형마트로 옮겨갔다. 대형마트가 현대인의 새로운 시장이 된 것이다.
전통시장의 침체가 보여주는 두 번째 시사점은 대형업체의 공세에서 중소형 업체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현재 나름대로 차별화를 통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장들은 대형마트가 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특화되어 가고 있다. 즉 대형마트가 취하는 포지션과는 다른 포지션에서 경쟁력을 찾는 것이다. 이는 2011년 브래드 피트 주연으로 영화화된, 마이클 루이스의 책 『머니볼』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같다. 소형업체는 대형업체의 규모와 자본에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을 파고들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며 거기서 격차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전통시장은 사회적으로 매우 우대받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인 자영업은 전통시장처럼 정책자금을 지원받을 일도 없을 뿐더러 더 직접적인 공세를 받고 있다. 그래서 자영업은 시장이 쇠락하는 두 가지 요인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시사점을 얻어 확실히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럭저럭 장사가 되는 가게라도, 결국 지금의 전통시장처럼 쇠락해갈 것이다. 그것도 더 빠르게 말이다.
이 포스트는 『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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