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 이유 101
불안정한 일자리와 노후 불안, 그리고 저성장 시대라는 삼단 콤보는 굳이 긴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미래 불안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돈을 모아야만 하는 이유는 자명하며, 전문가들은 101가지 근거를 들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 101가지 근거를 듣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외면해왔던 두려움이 몰려오고, 어쩌면 이미 시작이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급함을 더합니다. 불안한 마음은 어찌나 상상력이 풍부한지 급기야 집도 절도 없이 길거리를 떠도는 미래의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월급50% 저축, ‘너님’은 가능?
돈을 모아야만 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면 다음으로는 화려한 저축 계획이 따라올 차례입니다. 주거 안정을 위해, 결혼을 위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노후를 위해 목표 자금을 설정하고 저축이 필요한 금액을 산정합니다. 내 월급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저축해야 한다는 말에 움찔하지만 괜찮습니다. 돈을 모아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며 마음을 굳게 먹어봅니다. 문제는 그 계획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을 때, 아무리 훌륭한 계획도 공허한 외침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각종 목표들을 고려했을 때 월급의 50퍼센트를 저축해야 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당장 나가는 돈이 월급의 90퍼센트라면 저축 가능한 금액은 10~20퍼센트 내외입니다.
이대로만 실천하면 10년 후, 20년 후에 얼마가 되고 꿈꾸던 바로 그 표를 이룰 수 있다는 화려한 저축 계획은 참 멋있습니다. 아마 화려한 저축 계획을 세워주는 전문가들은 그들 자신이 굳은 의지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뤄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직접 해서 성공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해보라고 추천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굳센 의지로 현실을 돌파해나갈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이상을 갖고 있고, 그것을 추구해나갈 수 있는 똑똑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지금 내 모습이 개나리라면, 나는 꽃을 피운 개나리는 될 수 있어도 튤립이나 장미가 될 수는 없습니다. 현실은 끼니를 제때 챙겨 먹기 힘들 정도로 바빠 식사를 모두 외식으로 해결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축이 필요하니 집에서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하자고 결심을 한다면 이는 지켜질 수 없는 계획입니다. 눈앞의 현실은 무시한 채 스스로에게 이상적인 모습만을 강요하는 것은 자기를 괴롭힐 뿐입니다.
적금만 저축? 한 번 안 사는 것도 저축!
제 직업의 특성상 ‘저축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저축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을 빼는 방법을 몰라서 살을 못 뺀 게 아니듯, 저축하는 방법을 몰라서 저축을 못한 게 아닙니다. 저축은 특정 금융상품에 가입하고, 풍차 돌리기를 하는 등 일회적인 방법을 따라 실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기발한 금융 상품을 골라 매달 저축액을 높인다 해도 그에 따라 일상의 소비 수준을 낮출 수 없다면 그 적금은 얼마 안 가 해지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저축은 이 상품을 가입하고, 저 카드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매 순간 ‘지금 이걸 살까 말까’ 사이의 질문에서 후자를 택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상품에 가입할 때, 적금액이 빠져나갈 때만 저축을 하는 게 아니라 소비를 한 번 하지 않을 때마다 저축이 되는 것이지요.
상황과 성향에 맞게, 균형을 잡고
애석하게도 오늘 돈을 쓰는 소비의 즐거움과 내일을 대비하는 저축의 안정감을 나란히 놓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돈을 쓰면 그만큼 미래에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드니 안정감이 줄어들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만큼 오늘 릴 수 있는 즐거움은 줄어드니까요. 결국 우리는 오른쪽, 왼쪽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한 축에는 즐거움이라는 축을, 다른 한 축에는 안정감이라는 축을 둔 채로 말이에요.
어느 한쪽을 극단적으로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조건 당장을 즐겨야 하고 미래는 생각할 것 없다거나 저축이 우선이고 오늘은 참는 게 답이라는 말만큼 답답한 것도 없으니까요. 빨간색과 주황색 사이에도 다홍색처럼 수많은 애매한 색들이 있는 것처럼, 소비와 저축 역시 0 아니면 1처럼 어느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 더 중요한 반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안정감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수준이 어떠하든지 자신에게 맞는 즐거움과 안정감의 수준을 잘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일상의 행복에 가까워지리라 생각합니다. 극단에 있는 소비 축과 저축 축 사이에서 자신의 상황과 성향에 맞는 중도를 찾아가는 것이 현명한 저축 계획의 시작입니다.
이 포스트는 미스 페니의 『나의 첫 번째 머니 다이어리』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돈 관리에 관한 흔한 오해 3가지 (0) | 2019.08.07 |
---|---|
어디에 얼마를 쓸까? 분배의 미학, 예산 잘 세우는 법 (0) | 2019.08.05 |
돈 관리 첫 걸음,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제대로 들여다보기 (0) | 2019.08.01 |
자산성 저축 vs 소비성 저축, 나의 저축 스타일은? (0) | 2019.07.31 |
무조건 저축 아닌 우선순위 저축이 더 효율적인 이유 (0) | 2019.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