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 회사채 발행량 급등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회사채에는 파산의 위험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회사채는 일반적으로 각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국채에 비해 더 높은 금리, 즉 가산금리가 붙게 됩니다.
그런데 2019년까지 미국의 회사채 가산금리가 끝없이 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투자적격 등급도 아닌 BB등급 회사채의 가산금리가 2%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일입니다. 전기차회사인 테슬라가 장기에 걸쳐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다면 첫 번째 스포츠카(로드스터) 이후 새로운 모델을 대량생산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무구조가 부실하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마저 손쉽게 발행하게 되면서 회사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특히 2020년 3월 코로나19 쇼크 이후 회사채의 가산금리가 급등한 점이 이러한 우려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팩트부터 체크해보면, 미국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량이 급증한 것은 분명합니다. 다음의 그림에서 보듯, 미국 기업(금융업 제외)의 명목GDP 대비 회사채 발행규모는 27%를 넘어서는 사상 최대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었기 때문입니다. AAA등급 회사채 금리는 코로나19 쇼크 이전 2%대 후반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196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이것만 보면, 미국 회사채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늘리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회사채 발행, 왜 늘어났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은행들은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속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습니다.(스트레스 테스트는 강력한 불황이 닥쳤다고 가정했을 때, 은행이 스스로 버텨낼 힘을 가지고 있는지 측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행들은 2008년 이후 가계는 물론 기업 대출에 대해 대단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 그림은 미국 은행 대출 담당자의 대출 태도와 기업( 및 상업용) 대출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대출 태도란 은행권 대출 심사역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집계한 것으로, 대출 태도지수가 플러스이면 대출 심사를 더욱 타이트하게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미국 금융권은 대출 심사를 매우 강화했으며, 그 결과 기업대출은 2012년까지도 마이너스 증가율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기업들은 예전보다 빡빡한 대출 심사를 피해 회사채 발행량을 늘렸고, 또 저금리에 지친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미국 회사채에 대한 투자에 나섰습니다. 즉, 미국 기업의 회사채 발행량이 늘어났다고 부정적인 면만 볼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자금조달의 원천을 다변화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특히 2008년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대출 회수’입니다. 대출의 만기연장이 어려워지면 기업의 파산이 빈발하고, 이는 다시 경제 전반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강하게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국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량을 늘린 것은 어쩌면 ‘은행 위기’로 인한 걷잡을 수 없는 경기위축 위험을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부채 증가, 2%포인트에 불과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회사채 발행량이 늘어난 것이 경제에 아무런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미국 기업들의 부채(GDP 대비)가 사상 최대 규모이기는 하지만, 지난 2000년대 중반의 가계부채 문제와 비교하면 차이도 큽니다. 미국의 가계부채(GDP 대비)는 2008년 이전 10년 동안 65%에서 99%로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기업부채는 지난 10년 동안 72%에서 74%로 단 2%포인트 늘어난 데 불과합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기업들이 회사채를 조금이 라도 덜 발행하고,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펴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업들에 이런 ‘진중함’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업들이 그렇게 빚을 내어 투자하지 않았더라면, 코로나19 쇼크 이전까지 미국의 ‘실업률 3.5% 시대의 개막’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미국 정도의 경제규모에서는 3%대 실업률은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로 본다). 다시 말해 적절한 수준의 부채는 경제의 활력소가 되기에, 부채를 죄악시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특히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이 세계은행의 141개국 기업 단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외부자금 조달이 수월한 나라일수록 국민소득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포스트는 『디플레 전쟁』(홍춘욱)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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