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본 무역수지 만성적자품목의 반전
초창기 한국의 자동차 부품산업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1962년 새나라자동차는 일본 닛산자동차의 도움으로 블루버드 승용차를 생산했는데, 부품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1975년에 현대가 개발한 국내 최초의 완성차 ‘포니’는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설계했지만, 차체 모델링오기하라금형, 엔진과 변속기미쓰비시 등 핵심부품을 여전히 일본에 의존했죠.
이처럼 자동차 부품은 만성적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품목이었습니다.
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MTI74200, 엔진을 제외한 자동차 부품의 대일본 무역적자는 1988년 540만 달러에서 2010년 10억 달러로 20배 늘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이후로는 적자를 지속해서 줄여나가 2014년에는 소폭의 흑자를 기록했고, 2019년 현재는 정점 대비 10분의 1인 1억 달러 수준까지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이처럼 대일본 의존도를 줄임과 동시에 성장을 거듭해 생산 100조 원섬유84조 원, 반도체 84조 원, 고용 23만 명섬유 17만 명, 반도체 11만 명, 기업 수 9천여 개에 이르는 기간산업이 되었습니다.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 약진 원인
한국의 자동차 부품산업은 어떻게 대일본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릴 수 있었을까?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 동향을 업데이트해온 일본정책투자은행의 분석(2013년 2월, ‘자동차산업에서 한국 부품 서플라이어의 변화’)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일본정책투자은행은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이 약진한 원인을 합리적 가격, 품질 향상, 정부 지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합리적 가격: 한국 자동차 부품 업체들은 현대자동차 의존도가 높다. 현대자동차는 다른 완성차 업체에 비해 협력업체에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강한 편이다. 수요업체의 비용절감 압박과 한국의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비용은 한국산 자동차 부품의 가격경쟁력으로 이어졌다.
•품질 향상: 한국 완성차 업체는 1980년대 미국 진출과 함께 품질경영파이브스타제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중소 부품업체들이 정리되고, 현대모비스, 만도, 현대WIA와 같은 0.5차 공급자Supplier가 등장해서 모듈화를 추진한 것도 품질 향상에 기여했다. 보쉬, 델파이 등 한국 진출 업체와의 제휴, 일본 완성
차 업체의 퇴직 기술인력의 전략적 활용 등 외국으로부터의 선진기술 흡수도 빠뜨릴 수 없다.
•정부 지원: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1970년대 KS공장이 아니면 부품을 생산할 수 없는 KS명령품목 제도, 자동차 부품 품질관리등급제를 추진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부품소재발전기본계획2001년,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2009년을 수립했다. 코트라KOTRA, 대한무역진흥공사는 해외 자동차 부품 수출 마케팅을 밀착 지원했다. 한국 정부가 꾸준히 추진한 FTA 정책도 자동차 부품의 수출을 뒷받침했다.
동일본대지진이 일본 자동차업계에 준 교훈
일본정책투자은행의 이러한 분석은 수긍할 만하지만, 2011년 이후 자동차 부품의 급격한 대일본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를 설명하려면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인 동일본대지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최대진도 7로 일본 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이이었습니다. 인적, 물적 피해는 물론이고 공장 가동 중단 등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컸습니다.
마이콘이라는 자동차 제어장치ECU 반도체를 생산하는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세계시장 점유율 30%)도 동일본대지진으로 공장 천장의 일부가 내려앉고, 벽이 넘어져 대부분의 제조장비가 사용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르네사스가 생산을 멈추자 토요타자동차 등 일본 완성차 업체는 40% 이상 감산했고, 완전히 복구하는 데 6개월 이상이 걸렸습니다.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 원인은 마이콘을 르네사스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토요타자동차는 공급 단절 위험을 피하기 위해 덴소를 비롯해 복수의 협력업체로부터 제어장치를 공급받고 있었으나, 협력업체들은 제어장치의 핵심인 마이콘을 르네사스 한 곳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완성차 업체들이 부품을 표준화하지 않고 모델별로 미세한 기능적 차이를 두며 차별화를 꾀한 것도 비상시에 대체 공급품을 찾기 어렵게 만든 원인이 되었습니다. 르네사스가 생산하는 마이콘의 종류만 수만 종에 달했고, 제작공정이 모두 달라 르네사스 공장 간에도 대체생산이 불가능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고 난 이후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부품을 공통화했고, 하나의 부품을 여러 업체로부터 공급받았습니다. 하나의 업체로부터 집중 발주하는 일본 업계의 오래된 관행이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충격을 받고 비로소 바뀐 것입니다.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공급처 분산과 동시에 재난재해의 위험이 적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로부터 자동차 부품 수입을 늘렸습니다. 일본재무성 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전체 자동차 부품 수입액 중 아시아로부터의 수입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30% 수준에서 2018년 50%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일본 완성차 업체의 해외 현지생산 확대로 인한 일본계 부품의 역수입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증가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한일 역학관계를 바꾼다
2019년 전략물자 수출규제 이후 일본으로부터의 소재부품 수입은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정치 상황이 불안한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을 할 때 기업들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비용으로 고려하듯, 대일본 소부장 공급 단절 리스크를 경영판단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10여 년간 자동차 부품산업에서 한일 교역구조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듯, 2019년 전략물자 수출규제 이후 10년은 소부장 산업 전반에서 한일 간 역학관계를 바꾸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포스트는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내리막 섬유패션산업에서 날개 단 기업의 비결은? (0) | 2020.08.14 |
---|---|
규제를 기회로 살린 소부장 기업은? (0) | 2020.08.13 |
괴짜는 어떻게 혁신을 만드는가 : 일본 소부장 괴짜 기업의 공통점 (0) | 2020.08.11 |
일본이 소부장 강국이 된 진짜 이유 3가지 (0) | 2020.08.10 |
넘사벽 일본 트라우마는 허상일 뿐 (0) | 2020.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