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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사벽 일본 트라우마는 허상일 뿐

경제상식 경제공부/포스트 한일경제전쟁

by 스마트북스 2020. 8. 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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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기술격차가 50년"이라고?

현장에서 느끼는 일본과의 기술격차가 50년이다.”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직후, 한 경제단체 수장의 발언은 예상치 못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회에서는 이를 인용한 논평으로 정당 간 논쟁이 촉발되었고, 언론사들은 발 빠르게 팩트체크에 나섰다. 한 방송사는 객관적 연구결과나 최근 언론보도는 찾을 수 없었다고 보도했고, ‘50을 수사적 표현으로 이해해달라는 해명이 있고서야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웃어넘기기 어려운 해프닝이다. 오랜 기간 넓게 퍼져 있는, 일본을 넘어서기는 힘들다는 넘사벽 일본이라는 트라우마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자 산업강국이고 우리가 넘어서기 어려운 선진국이다. 반세기에 걸쳐 축적된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은 따라가기 어렵다. 극일은 좋지만 현실은 인정하자.”
넘사벽 일본이라는 프레임은 단순하고 강력하다. 그래서 더욱 경계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격차, 통계로 따져보니

일본이 소부장 선진국이 되는 데 50년이 걸렸고, 우리가 따라가려면 그처럼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통계를 통해 우선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소부장 산업에서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8년 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재부품 자체 조달률은 60% 수준이다. 업종별로는 반도체 27%, 디스플레이 45%, 기계 61%, 자동차 66%. 자체 생산이 안 되는 부분은 해외로부터 수입하는데, 특히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대일교역 통계를 살펴보면, 2001년 소부장 산업에서의 대일본 적자는 128억 달러수출 64억 달러, 수입 192억 달러였는데, 2018년에는 224억 달러수출 148억 달러, 수입 371억 달러로 96억 달러 늘었다. 대일본 수입의 68%가 소부장이며 이는 미국 41%, EU 46%, 중국 53%보다 높은 수치이다.
제품과 기술경쟁력에서 일본이 우위에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소부장 중소기업 1,002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기술력 수준은 일본의 89.3%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 대비 96.4%, 유럽 대비 86.8%, 중국 대비 115.0%.
하지만 한국은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2017년 산업기술진흥원의 산업기술수준조사에 따르면, 소부장 부문의 한일 기술격차는 201512.8한국 84, 일본 96.8점에서 201712.2한국 83.8, 일봉 96점로 감소했다. 양국의 소재부품 기술격차가 1985년 약 20배 수준에서 2000년 약 14, 2015년 약 3.8배로 격차가 줄었다는 동의대학 이홍배 교수의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양국의 기술수준 평가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과 일본과학기술진흥원JIST도 같은 의견을 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의 평가기술수준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술수준이 완만히 상승한 반면, 일본의 기술수준은 하락하면서 양국 간 기술격차는 20142.8, 20152.7, 20181.9년으로 줄었다. 일본과학기술진흥원도 연구개발의 부감 보고서에서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2009년 대비 2017년 한일간 기술격차는 환경 및 에너지0.5 0.37 , 나노재료0.43 0.36 , 임상의학0.37 0.27 등 대부분의 업종에서 줄어들었다.

일본 50년 vs 독일 13년?

그렇다면 우리가 일본과 같은 글로벌 수준에 오르려면 얼마나 걸릴까? 과거 일본의 사례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일본 큐슈에 자리 잡은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연구소는 틈새시장Niche Market에서 압도적인 세계시장 점유율Global Top을 자랑하는 일본 틈새 1등 기업Global Niche Top을 연구해온 싱크탱크다. 이 연구소는 2010년에 독일의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과 일본 틈새 1등 기업들의 비교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이 연구에 따르면 창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일본기업은 평균 54년이 걸렸고, 독일 기업은 13년이 걸렸다.
리츠메이칸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더딘 국제화를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세계 정상에 오른 일본 기업 99개 사의 성장경로를 조사한 결과, 77.8%가 내수시장에 머물다 나중에서야 국제화를 추진했다.
헤르만 지몬 역시 저서 히든 챔피언에서 성장을 막는 원인으로 일본 기업의 소극적인 해외진출을 꼽았다. 그는 미국과 일본 기업은 내수시장이 거대하기 때문에 글로벌화의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라고 분석하고, “많은 일본 중견기업은 해외에 진출하여 히든 챔피언이 될 힘과 기술력이 있는데도, 다른 나라의 히든 챔피언과 같은 에너지와 속도로 글로벌화를 하지 않고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본경제산업연구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계열관계 유무가 독일과 일본 기업의 글로벌화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계열관계가 약한 독일 중소기업은 마케팅, 기획, 개발, 영업, 판매를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이러한 능력이 글로벌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계열거래가 많기 때문에중소기업의 외부기업과의 관계 : 수직연계 66%, 수평연계 27%, 기타 7%, 중소기업들은 제조 및 개발만 담당하고 기획, 개발, 영업, 판매 등을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글로벌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경제사회 구조적 요인 외에도 산학연 클러스터 등 인프라, 영어교육 등 인적 요인도 양국 기업의 글로벌화 속도의 차이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지적된다.
결론적으로 일본 소부장 기업들은 글로벌 지향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독일에 비해 정상에 오르는 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내수지향과 글로벌 지향의 차이가 독일과 일본 기업 사이에 수십 년의 차이를 만든 것이다.

글로벌 지향성이 관건

이상의 분석을 참고하면 일본이 50년 걸렸다고 해서 우리도 50년 걸린다는 법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이 13년에 해냈다면 우리도 해낼 수 있다.
자학적 자기인식을 심어놓는 통치방식은 값싸고 효과적이다. 스스로 무릎 꿇게 하는 제국주의의 잔재라 할 수 있다. 한일 격차 50년 논쟁의 이면에는 우리도 모르는 이런 자학적 경제관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활용하여 자신들만의 독특한 거래관행과 시스템을 구축해온 결과 글로벌화에 50년이 걸린 일본, 야심적 목표와 글로벌 지향성으로 13년 만에 끝낸 독일. 어느 길을 택해서 어떻게 갈 것인지는 이제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이 포스트는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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