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켄공업 : 100만 분의 1g 기어
플라스틱 사출성형업체, 주켄공업의 마츠우라 사장은 선착순으로 직원을 뽑습니다. 누구든 빨리 온 사람을 채용합니다. 그래서 주켄에는 공고를 나온 폭주족, 피어싱을 한 여고 중퇴생 등 다양한 출신과 배경의 직원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러나 마츠우라 사장은 일할 분위기만 만들어주면 직원들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켄은 정년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퇴직하면 아들이 입사해 아버지의 뒤를 잇는 세습도 이루어집니다. 불필요한 사내경쟁은 시키지 않으며, 개인평가도 하지 않지만 팀워크는 중시합니다. 급여는 연공서열순입니다.
창업 초기 마츠우라 사장은 전시회에 어떤 상품을 들고 갈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사출성형 기술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어를 만들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보자고 생각하고 1만 분의 1g짜리 기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미지근했습니다. ‘그럼, 더 작게 만들어주지.’
6년 후 주켄은 10만 분의 1g짜리 기어를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반응이 왔습니다. 자동차부품 대기업 덴소, 스위스의 유명 시계 브랜드 스워치 등에서 주문이 들어왔죠.
“더 작게 가볼까? 100만 분의 5g은 어떨까?”
그러자 직원들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내친 김에 100만 분의 1g으로 하죠.”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어’라는 목표가 생기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직원들은 새벽부터 나와 일했고, 서로 도우며 개발에 전념해 100만 분의 1g 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지름 0.147㎜로, 담배갑만 한 케이스에 2만 개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너무 작아서 밀가루처럼 보일 정도이죠. 개발비로 2억 엔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너무 작아 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켄이 손해를 본 건 아닙니다. 100만 분의 1g 기어를 만들며 금형, 성형, 장비 등 각 부문에서 기업 역량이 몰라보게 향상되었고, 직원들 역시 크게 성장했죠.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어를 만든 회사로 소문이 나자 교수들도 현장연수를 하러 왔고, 폭주족 출신 직원이 강의를 맡아 교수님들을 가르치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미타카광기 : 기발한 아이디어로 난제 해결
1966년 일본국립천문대의 천체망원경 수리업자가 세운 미타카는 독특한 채용시험으로 유명합니다. 총 세 가지 시험을 보는데, 바로 전구 데생, 종이비행기 만들기, 구운 생선 먹기죠.
데생은 관찰력을, 비행기 만들기는 손재주를, 생선가시를 발라먹는 모습으로는 심성을 각각 평가한다고 합니다. 뽑는 사장도, 이상한시험에 응시한 지원자들도 모두 괴짜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괴짜들이 모여 전 세계의 우수한 두뇌들이 집합한 NASA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어냈습니다.
1983년 NASA는 콜롬비아호에 탑재할 오로라 관측용 특수카메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영하 50°C와 영상 50°C를 오가는 극한 환경에서 사용되는데, 온도 변화에 따라 부품이 팽창하거나 수축하면서 카메라 정밀도가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했죠.
NASA는 일본 대기업들에 문제 해결을 의뢰했습니다. 이들은 히터와 냉각기를 붙여 온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제안했지만, 이 방법은 무게도 늘어나고 전력 소모도 많았습니다.
소식을 들은 미타카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부품 모양을 원추형으로 바꾸면 어떨까? 원추형이라면 온도가 높아져 부품이 부풀거나 온도가 낮아져 쪼그라들어도 중심축은 동일해 카메라 정밀도에 전혀 영향이 없습니다. NASA는 일본 대기업의 대안 대신 미타카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미타카는 반도체 업계의 고민도 해결했습니다. 반도체 산업 초기에는 반도체 제품의 최종검사를 수작업으로 진행했습니다. 반도체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수작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졌죠. 자동으로 반도체의 결함 여부를 가려낼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미타카는 천문대에서 새로운 별을 찾는 방식을 응용하여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별을 찾아낼 때는 수년 전에 찍은 밤하늘 사진과 최근 사진을 고속으로 스크린에 교차시킵니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별이 있으면 필름이 교차할 때 그 자리가 반짝이죠. 여기에서 착안해 같은 방식으로 회로 필름과 생산된 반도체를 고속으로 교차시키니 회로에 불량이 있는 반도체는 빛이 반짝여 불량품을 가려낼 수 있게 되었죠.
스미다광학글라스 : 광학계의 페라리
광학유리 업체인 스미다광학글라스의 사풍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유입니다. 취미처럼 일하고 일하는 것처럼 노는 회사입니다. 관리는 최소화합니다. 연구개발 비용은 상한을 정하지 않고,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스미다는 ‘광학계의 페라리’가 목표입니다. 페라리는 1년에 자동차를 9천 대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죠. 규모를 늘리지 않고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재미있게 일합니다.
스미다는 마스코트와 사옥에도 이러한 경영철학을 담았습니다. 스미다의 마스코트는 나제타로라는 닭인데, 마당에 풀어 키우는 닭과 같이 자유롭고 활기차게 일하자는 의미라고 합니다. 1993년에 40주년 기념으로 다시 지은 사옥에도 마스코트인 닭을 형상화했습니다. 피뢰침에는 닭 벼슬, 현관에는 닭 발자국을 디자인했죠.
자유로운 사풍은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스미다는 주력제품인 광파이버를 한 달에 50만㎞ 생산합니다. 이는 지구를 12바퀴 감는 거리입니다. 광파이버는 석영 등 희토류 15종류를 배합하여 만드는데, 고객 맞춤형 대응이 필수입니다. 즉 굴절률이 큰 제품을 원하면 아연을 더 넣고 가벼운 제품을 원하면 붕산을 더 넣는 식이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능동적으로 일하는 직원들 덕분에 스미다는 업계에서 가장 빨리 고객이 원하는 광파이버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스미다는 남들이 포기한 일을 맡아 해결하는 해결사이기도 합니다. 파나소닉은 디지털 카메라를 작게 만들기 위해 렌즈 사이즈를 줄이고 싶었습니다. 많은 업체들이 도전했으나 실패한 이 문제를 스미다는 비구면렌즈를 만들어 해결했습니다 구면렌즈는 가운데서 들어오는 빛과 옆에서 들어오는 빛의 초점이 달라서 여러 렌즈를 겹쳐서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만, 비구면렌즈는 하나로 가능하죠. 스미다의 얇고 가볍고 싼 비구면렌즈는 디지털 카메라에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괴짜가 성과를 내려면
일본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기업 주켄, 미타카, 스미다가 괴짜라는 것외에 또다른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사장이 일일이 간섭하고 관리하기보다 직원들에게 도전하고 싶은 높은 목표를 제시하고, 믿고 맡기는 것이 아닐까요? 괴짜 짓도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믿고 맡기면 혁신은 따라옵니다. 조직을 책임지는 자리에 선 이들이라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교훈입니다.
이 포스트는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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