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는 의료용 바늘회사입니다. 스테인리스로는 의료용 바늘을 만들 수 없다는 업계의 상식을 깨고, 탱탱하면서도 단단한 바늘을 만들어 1960년대에 봉합용 바늘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사람의 신체는 부분별로 피부의 특성이 달라서, 의사들은 수술 부위에 따라 그에 적합한 봉합용 바늘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마니의 주력 분야는 안과용 봉합바늘로, 백내장 수술 후에 안구 절개면을 봉합할 때 사용하는 아주 작은 바늘입니다. 생산하는 업체가 많지 않아 마니가 독점하고 있어 안정적으로 매출이 나오는, 마니의 캐시카우Cash Cow였습니다.
그런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백내장 수술 방식이 발전해서 안구에 거의 상처를 내지 않고 수술이 가능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백내장 수술용 렌즈가 부드럽고 탄력 있는 신제품으로 바뀌면서 절개방식도 바뀐 것입니다. 기존 수술은 6㎜ 정도 안구 절개가 필요했는데, 새로운 방식은 3㎜ 정도로 줄어 봉합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봉합용 바늘 시장이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죠.
마니는 살길을 모색했습니다. 바늘을 만들며 축적한 금속가공 기술과 안과병원의 판매망을 이용할 방법을 찾았고, 바늘이 필요 없다면 메스를 만들자는 전략을 세웠죠. 결과적으로 이 전략이 맞아떨어져, 봉합용 바늘시장은 잃었지만 안과용 메스시장에서 매출을 만회할 수 있었습니다.
마니는 외과용 메스시장까지 진출했습니다. 외과용 메스는 안과용 메스나 봉합바늘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시장이죠. 외과용 메스의 성공으로 자신감에 넘친 마니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단행하며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했지만 처참한 결과를 맞았습니다. 판로를 찾지 못했고, 가격 경쟁력에서도 밀려 폐업을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죠.
이처럼 한 번의 큰 성공과 한 번의 큰 실패를 거치면서 마니는 ‘하면 안 되는 다섯 가지’를 사훈으로 삼고 경영방침을 다시 세웠습니다.
첫째, 의료기기 이외에는 하지 마라.
둘째, 기술이 없으면 하지 마라.
셋째, 세계 1위의 품질이 아니면 팔지 말라.
넷째, 1천 엔 이하의 작은 틈새시장 외에는 하지 말라.
다섯째, 전 세계에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면 하지 말라.
대기업과 경쟁을 피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특화한 철저 한 틈새전략을 경영철칙으로 삼은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정하고, ‘해야 할 것만 한’ 마니는 이후 1만 종 이상의 봉합용 바늘을 생산하며 다품종 소량생산 시장에 적응해나갔습니다. 그 결과 봉합바늘 시장의 90%, 안과용 메스 시장의 60%, 치간치료기구 시장의 90%를 차지하며 원가 1%, 영업이익률 40%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소부장 강소기업으로 도약했습니다.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일하고 또 일하고, 반복해서 일함으로써 가속도를 내려고 엄청난 할 일 목록을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다지 소용이 없다”라고 지적하며 위대한 기업을 만든 사람들은 “할 일 못지않게 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을 많이 사용하며, 쓸모없는 모든 것을 골라내는 데 굉장히 숙달되어 있다”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국내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대부분 마니와 같은 중소기업입니다. 경쟁자들은 크고 강하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확실히 정해서 자원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해야 할 일에 힘을 쏟을 수 있으니까요. 즉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생존하는 자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존이 있어야 승리가 있”습니다.
이 포스트는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왜 일본은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0) | 2020.08.18 |
---|---|
초고속 소재 개발, 화학산업의 새 기회! (0) | 2020.08.18 |
내리막 섬유패션산업에서 날개 단 기업의 비결은? (0) | 2020.08.14 |
규제를 기회로 살린 소부장 기업은? (0) | 2020.08.13 |
한국 자동차 부품 산업 약진 원인은? (0) | 2020.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