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는 1990년 주식 및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다음 기나긴 침체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2003년 국제통화기금은 일본 경제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일본이 현재 겪고 있는 일은 다른 나라의 정책 입안자들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다. 가벼운 디플레도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지, 그리고 디플레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를 배워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죠.
2013년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시행된 다음에 경기가 좀 반등하는 듯했지만, 여전히 인플레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임금도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0년을 전후해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붕괴된 것은 일본만이 아닙니다. 당시 북유럽(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국가도 주식/부동산 시장의 붕괴 속에 깊은 불황을 겪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왜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불황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북유럽 국가는 금방 위기를 벗어나 다시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는데 말입니다.
이에 대해 수많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주장을 펼쳤지만 특히 2000년대 초반 미국 연준이 발표한 보고서(「디플레이션 방어하기:1990년대 일본의 경험이 주는 교훈」)에 매우 귀한 정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보고서에서 미국 연준의 경제학자들은 아주 흥미로운 주장 두 가지를 펼칩니다.
첫째, 1989년 버블이 붕괴된 직후 “일본의 중앙은행(일본은행, Bankof Japan)이 정책금리를 공격적으로(200bp 이상 = 2%포인트 이상) 인하했다면 디플레의 악순환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한마디로 일본 경제가 20년 넘게 침체된 것은 1989년을 전후한 일본은행의 정책 실패 탓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연준의 보고서에 담긴 두 번째 주장은 “지나친 경기부양으로 인플레가 발생하면 긴축으로 전환하여 해결할 수 있지만, 경제가 일단 디플레의 영역에 진입하면 다시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라는 것이죠.
결국 연준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일본이 자산가격의 붕괴로 불황이 시작되었을 때 단호한 대응을 취하지 못했고, 그 결과 20년 넘게 디플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본경제 30년사』(얀베 유키오)에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전후한 일본 정부의 잘못된 정책방향이 잘 보입니다. 당시 정권을 잡은 자민당 하시모토 정부는 소비세 인상 등 단호한 개혁정책을 밀고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1997년 7월 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일본도 곧 영향을 받아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정책’ 공약을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야마이치 증권을 비롯한 주요 금융기관의 연쇄적인 도산 속에서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금융 시스템 개혁을 밀고 나갔습니다. 금융기관들이 알아서 각자 위기를 해결하라는 식의 이러한 정책노선은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죠.
금융기관들이 자기만 살겠다고 몸을 사리기 시작하면, 경제는 더욱 나빠지게 마련입니다. 대출이 만기가 되는 족족 회수당하면, 재무구조가 건전한 기업이나 가계마저 유동성 위기를 겪고 망가질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다음의 그림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전후한 일본의 경제성장률과 기업 대출 증가율의 추이를 보여줍니다. 기업 대출이 1997년 말부터 1999년까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1998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하여 하시모토 내각이 퇴진하고 오부치 게이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에야,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금융기관 지원 및 재정지출확대 정책이 시행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의 그림은 일본의 GDP 갭과 물가상승률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일본은 1990년 주식시장(그리고 1991년 부동산시장)이 폭락한 이후 GDP 갭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GDP 갭이 마이너스인데도 물가가 오른 것은 ‘소비세 인상’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1997년과 2014년에 각각 소비세를 2%포인트와 3%포인트 인상했고, 이것이 물가상승에 반영된 것이죠. 경제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는 상황( = GDP 갭 마이너스)에서 소비세를 인상하는 조치가 과연 타당한 것이었을까요?
일본 정부가 이 부분을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일본 경제가 그토록 긴 불황을 겪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이 포스트는 『디플레 전쟁』(홍춘욱)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한일경제전쟁 최대 승부처는 화학산업 (0) | 2020.08.20 |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왜 새로운 소부장강소기업이 없을까? (0) | 2020.08.19 |
초고속 소재 개발, 화학산업의 새 기회! (0) | 2020.08.18 |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하는 게 중요한 이유 (0) | 2020.08.17 |
내리막 섬유패션산업에서 날개 단 기업의 비결은? (0) | 2020.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