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산업은 일본 제조업의 중심 산업입니다. 제조업 전체 생산의 18%, 고용의 17%를 차지하며, 부가가치의 21%를 만들어냅니다. 소재산업 중에서도 화학산업은 업체 수의 60%, 고용의 70%, 부가가치액의 77%를 차지하는 주력산업입니다. 또한 일본 소재산업은 화학산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일본 경제에서 화학산업의 비중은 크고 중요하죠.
화학(Chemistry)의 어원은 연금술(Alchemy)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화학의 특성은 연금술과 같이 불필요한 물질에서 가치있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석유화학은 원유에서 휘발유 등을 빼내고 남은 납사를 크래킹해서 에틸렌 등을 생산하고, 석탄화학은 석탄에서 코크스를 빼내고 남은 타르에서 시작합니다. 근대화학의 기초가 된 암모니아는 공기중에서 공짜로 얻을 수있는 질소를 수소와 반응시켜 생산하죠.
화학산업은 기초 범용 화학과 기능성 화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초 범용 화학제품은 대량생산체제로 마진율이 낮고 경기에 민감한 특징을 가지고 있죠. 반면에 기능성 화학은 접착제, 촉매, 코팅, 플라스틱 첨가제 등 특수목적용 화학제품으로 다품종 소량생산, 높은 이익 마진을 특징으로 합니다.
일본이 강점을 지닌 분야는 기능성 화학 분야입니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이 자국의 화학업체 18개 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 화학업체의 매출은 기초 범용과 기능성 화학이 절반씩을 차지하지만 영업이익은 기능성 화학이 2배 이상 높습니다. 액정 디스플레이 분야의 경우 완제품에서는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지만 필름, 유리기판, 편광판등 기능성 화학제품에서는 50% 이상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80~1990년대에는 전자와 자동차, 전차가 일본 경제성장을 견인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약진과 함께 일본의 전자산업이 하향 궤적을 그리면서, 일본의 화학산업은 전자산업을 뒤로하고 자동차에 이은 2대 산업으로 부상했습니다.
앞으로 일본 경제에서 화학산업은 더욱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1990년대부터 화학산업의 중요성을 설파해온 이타미 히로유키 도쿄대학교이과대학 교수의 분석을 살펴보겠습니다.
이타미 히로유키 교수는 19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은 다양한 산업의 생산공정과 제품에 전자기술을 접목하는 ‘산업의 전자화’에 잘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화학기술이나 제품이 기존의 기술이나 제품을 대체하는 ‘산업의 화학화’에 누가 더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산업 주도권의 향배가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항공기 소재가 금속에서 탄소섬유로 바뀌고,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 자동차를 타고, 필터·도광판 등 화학제품을 탑재한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시대에는 기능성 화학제품의 경쟁력이 일국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말입니다.
일본 화학산업의 위상은 경제 단체장 인사人事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2014년 스미토모화학 출신 요네쿠라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회장이 물러나고, 같은 화학업계 출신인 도레이의 사카키바라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일본 경제단체의 또 다른 한 축인 경제동우회는 대기업 미쓰비시화학의 고바야시 회장(2019년)이 취임했습니다. 이는 일본 재계의 파워가 자동차와 전자산업 중심에서 화학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일본 경제산업성도 업계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 2013년 기능성 화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회를 발족한 데 이어, 2019년에는 화학과를 연관 품목과 묶어 소재산업과로 확대 개편했습니다.
일본 경제에서 화학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시점에 불산가스,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와 같은 기능성 화학제품의 수출을 규제한 것이 우연일까요?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기능성 화학산업이 일본 산업의 마지막 보루이자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국으로서도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인만큼 양국 간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입니다.
이 포스트는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선진국 가계 자산 구성은 어떨까? (0) | 2020.08.25 |
---|---|
전문화와 다각화 동시 추구하는 기업은? (0) | 2020.08.24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왜 새로운 소부장강소기업이 없을까? (0) | 2020.08.19 |
왜 일본은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0) | 2020.08.18 |
초고속 소재 개발, 화학산업의 새 기회! (0) | 2020.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