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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왜 새로운 소부장강소기업이 없을까?

경제상식 경제공부/포스트 한일경제전쟁

by 스마트북스 2020. 8. 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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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일본 소부장 산업의 바탕

일본 소부장 산업은 전쟁의 폐허에서 자라났습니다. 일본 근현대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이 시기에 소부장 산업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그 역동성의 한 단면을 창업률과 폐업률 통계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는데 1955년의 창업률은 20%, 폐업률은 15%2000년대 대비 각각 5, 4배 높았습니다. 한 해에 18만 개 업체가 창업했고, 14만 개가 문을 닫았죠.
패전 후 일본에는 퇴역한 군인, 귀환한 학도병, 실직한 기술자들이 넘쳐났고 군수업체의 폐업으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많은 사람이 대안으로 창업을 택했습니다. 소니(1946년), 세키스이화학공업(1947년), 파이오니아(1947년), 혼다기연공업(1948년), 오므론(1948년), 와코루(1949년), 무라타제작소(1950년)와 같이 우리 귀에 익은 대기업들이 이때 생겨났으며,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부장 중소기업들도 이 시절에 함께 탄생했습니다.

핵심 전략 ‘차별화’

당시 소부장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만의 특기 분야를 선택해서 밀어붙이는 차별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쟁 중인 1942년에 설립된 오카모토광학연구소는 원래 해군용 육분의를 만들었는데, 해군용 육분의를 만들 때 프리즘을 평평하게 깎는 기술을 특기로 삼아, 이후 평면 계측기 업체로 성장했습니다.
1950년 설립된 일본제강소는 대포를 생산할 때 초대형 강괴를 용접하지 않고 통째로 성형하는 기술을 활용하여 원자력 압력용기 분야에 진출하여 세계시장 점유율 80%를 달성했습니다. 기관총 업체에서 파생된 오사카정밀기계(1951년 설립)는 기어의 정밀도를 측정하는 것을 주특기로 삼아 측정기 부품 생산업체로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에 창업한 기업들이 군수산업 연관 여부나 기술의 우수성을 떠나, 전쟁 전과는 달리 평평하게 깎는다’, ‘눌러 성형한다’, ‘압력을 견딘다’, ‘정밀도를 측정한다와 같이 타 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주업主業으로 삼았다는 것은 다양성과 차별화를 핵심으로 하는 소부장 산업의 발전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소부장 기술의 뿌리는 전쟁에 있었을지 모르지만, 차별화라는 핵심 전략의 뿌리는 패전 후에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죠. 또 패전 후 일본 경제에서 외자 규제로 인한 수입 곤란, 극심한 물자 부족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도 소부장 업체의 탄생에 기여했습니다.

일본제강소 / 사진 출처 : https://www.jsw.co.jp/ja/guide/pamphlets.html

 

왜 지금은 소부장 기업이 안 나올까?

이처럼 패전 이후 수많은 소부장 강소기업을 배출한 일본에서 왜 잃어버린 20이라고 불리는 1990년대 이후에는 새로운 소부장 기업이 나오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패전 당시와 비교해 일본 경제와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진 점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창업 및 폐업률 통계를 다시 한 번 살펴볼까요. 2015년 기준 일본의 창업률은 5.8%인데, 이는 프랑스13.2%, 영국13.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일본의 폐업률은 3.5%로서 영국12.2%, 프랑스10.3%3분의 1, 이 역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1945년 패전 후 70여 년이 흐른 지금, 역동적이었던 일본은 창업도 폐업도 거의 없는 안정된 또는 침체된 사회가 되었습니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창업률은 14.7%, 폐업률은 11.5%)
역동성의 자리를 안정성이 차지한 대가는 컸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미국의 CB인사이트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및 유니콘 기업 442개 중에서 미국 기업은 217, 중국 기업은 104개인데 일본 기업은 단 3개에 그쳤습니다.
세계은행의 2019년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2019에 따르면, 일본의 비즈니스 환경은 201315위에서 201925위로 하락했으며, 한국3, 폴란드20, 포르투갈21, 체코22위보다 낮았습니다. 이 조사에서 10개 평가항목 중 법인설립 항목은 93(한국 11), 신용공여 항목은 85(한국 40), 납세 항목은 97(한국 24), 계약집행 항목은 52(한국 2)로 평가받았습니다. 대내 직접투자(2016)G7 중에서 가장 낮은188억 달러에 그쳤는데, 일본 국내 언론에서는 한국(170억 달러)에 역전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죠.

 

이 포스트는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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