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 테슬라 사의 모델 S 롱 레인지 플러스Long Range Plus 버전은 2020년 한 번 충전으로 최대 주행거리 646㎞를 달성했습니다. 10대 미만의 극소량 생산으로 유명한 슈퍼카 람보르기니의 2015 베네노 로드스터Veneno Roadster는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이 2.9초에 불과합니다. 강력한 배터리와 엔진 등 복합소재 부품을 사용한 경량화의 결과입니다.
삼성전자의 폴더블 스마트폰과 LG전자의 롤러블 TV는 2019년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를 찾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가볍고 얇고 유연하며 열과 화학물질에 강한 첨단소재인 폴리이미드 필름, 그리고 일종의 경첩 역할을 하는 힌지와 같은 혁신 부품 없이는 접고, 둘둘 마는 혁신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소재·부품이란 테슬라의 복합소재, 폴더블 폰의 힌지, 롤러블 TV의 폴리이미드와 같이 상품의 제조에 사용되는 원재료 또는 중간생산물을 말하며, 장비란 이러한 소재·부품을 생산하거나, 소재·부품을 사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장치 또는 설비를 말합니다.(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2조)
소부장은 완제품에 녹아들어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인류의 삶을 좀 더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에는 특별법 전체를 개정해서 정책 대상을 소재·부품에서 장비산업까지 확대했고, 최근에는 소재부품장비, 약칭 ‘소부장’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소부장은 제조업의 허리이자 경쟁력의 핵심 요소입니다. 완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신제품 개발을 촉진하며, 산업 전반에 영향력을 미쳐 제조업을 혁신하는 원동력입니다. 친환경, 디지털 전환 등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은 경량화, 융·복합화, 스마트화를 실현하는 소재·부품·장비, 즉 소부장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1년에 출시되어 드림라이너Dreamliner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보잉787-9 항공기는 다른 항공기에 비해 연료 효율성이 20%나 높고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20% 적습니다. 주 날개, 꼬리 날개, 도어, 동체 등을 탄소섬유 복합소재로 만들어 가볍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에 필요한 부품 수는 약 700~1,000개 수준입니다. 자동차 부품은 10년 전만 해도 1만~2만 개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3만 개를 넘어 대형 픽업트럭은 3만 5천 개까지 늘어났습니다. 현재 가장 큰 비행기인 A380이나 보잉777 항공기는 부품 개수가 400만 개가 넘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레이더, 이미지센서, 디스플레이 구동칩 등 전자부품의 집합체입니다. 드론 역시 모터, 통신모듈, 미션 플래너, 컨트롤러 등 핵심 전자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죠.
반도체 산업은 웨이퍼, 산화, 포토, 식각, 박막, 금속배선, 검사, 패키징 등 8대 공정과 600개 이상의 세부공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는 수백 개의 소재와 공정 장비가 필요합니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는 산화와 포토 공정에 쓰이는 핵심 재료입니다.
자동차 제조공정은 프레스, 차체 조립, 도장, 의장, 검수로 이루어지며, 근로자 10명이 로봇 장비 2대와 함께 일합니다. 국제로봇협회IFR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산업의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2,145대에 달합니다.
소재·부품·장비, 이른바 소부장은 기술개발→소재/부품/장비→생산/조립→마케팅→서비스로 이어지는 전체 제조업 가치사슬의 상단에 위치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또한 소재·부품은 전체 생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평균적으로 60%를 넘습니다.
일본은 조립·가공과 같은 주요 산업 밸류체인의 하류 부분에서는 한국·중국 등 신흥국에 자리를 내주고 있지만, 소부장과 같은 상류 부분에서는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경쟁하고 있는 931개 품목 중에서 일본이 세계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품목은 309개입니다.(산업통상자원부, 2019년)
일본의 소부장 생태계는 광범위합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와 같은 주력 업종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비주류 업종에 숨어 있는 업체들도 많습니다. 천체망원경 광학렌즈 연마, 수족관용 대형 아크릴, 돔구장의 장막, 연어가공 장비, 중동 민족의상 칸도라 소재 등 산업의 구석구석에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죠.
한국도 적극적으로 소부장 산업을 육성해왔습니다. 1978년 수입선 다변화를 시작으로 2001년 부품소재특별법을 제정하고 약 5.4조원 규모의 R&D 투자를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소부장 생산은 2001년 240조 원에서 2017년 786조 원으로 3배 늘어났으며, 수출은 2001년 646억 달러에서 2018년 3,409억 달러로 5배 증가했습니다. 무역수지도 2001년에는 9억 달러 적자였지만, 2018년에는 1,375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이제 소부장 산업은 제조업 생산의 52%전체 1,518조원, 소부장 786조 원를 차지하는 중요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의 소재부품 무역수지는 매년 개선되어 2019년에는 수출 2,700억 달러, 수입 1,708억 달러로 전체적으로 992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는 수출 128억 달러, 수입 270억 달러로 여전히 141억 달러 적자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자부품이 45억 달러로 가장 적자가 컸고, 이어서 화학물질 36억 달러, 플라스틱제품 14억 달러, 기계부품 10억 달러, 1차 금속제품 10억 달러 순이었습니다.
수출 완제품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부품과 소재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서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일본이 가져가게 되는 구조적 문제를 흔히 ‘가마우지 경제’ 라고 합니다.(가마우지라는 새의 목 아래 를 끈으로 묶어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만든 뒤, 물고기를 잡게 하여 가로채는 중국 계림지방의 물고기잡이 방법에 비유한 것)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는 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내 소부장 산업을 가마우지 경제에서 펠리컨 경제로 바꿔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펠리컨 경제’란 먹이를 부리 안에 저장했다가 새끼에게 먹이는 펠리컨처럼, 한국의 소부장 산업의 자립도를 높이고 부가가치를 창출해 파급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입니다.
이 포스트는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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