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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두렵고 힘든 나, 혹시 손 없는 소녀?

인문 교양 읽기/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

by 스마트북스 2018. 6. 2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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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두렵고 힘든 나, 혹시 손 없는 소녀?

사랑 불능의 트라우마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피아노를 보면 남편이 아내의 손가락을 도끼로 자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바로 그림 형제의 동화 손 없는 소녀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동화에서는 아버지가 죄 없는 딸의 손을 자른다.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갔다고는 하나, 결국 딸을 금은보화에 판 형국이다.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자른다는 것은 가부장제 아래의 여자들이 소녀 시절에 주체성이 거세되는 과정을 겪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아버지들이 가정 내 약자들에게 가하는 폭력이 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것은
바로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사랑 불능의 트라우마이다. 아버지들이 딸에게 직접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폭언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딸들이 상처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버지가 딸의 어머니에게 가하는 모든 폭력과 폭언이, 그것을 알알이 지켜보며 자라는 딸의 손을 자르는 도끼들이다. 아버지와 그 피붙이들이 전통이고 역할이라며, 딸의 어머니에게 강요한 그 모든 불합리와 고통 그리고 슬픔이 도끼가 되어 딸의 손을 잘라 피가 뚝뚝 흐르게 만든다.
남녀의 사랑이 저렇다는 것을 보고 자랐는데 과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기적 같은 남자를 만나 사랑할 수 있을까, 소녀는 울며 세상에 나서 길을 간다.

은 손을 단 여자가 된다는 것

 
부모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외려 사랑에 대한 갈망은 깊어지나 제대로 사랑할 능력은 없는 자존감 부족에 허덕이게 된다.
손이 잘린 여자는 갈망이 크므로 누군가를 찾게 되고, 찾다보면 누군가를 만난다. 남자의 호감과 관심, 배려에 마음과 몸을 열면서 그가 주는 사랑으로 잘린 손도 다시 키울 수 있을 거라는, 그러니까 능히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다시 키울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게 된다. 피와 살로 된 손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며,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남자는 절대 손을 키워주지 못한다. 대신
차가운 은으로 된 의수를 여자에게 끼워주며, 그 손으로 자신에게 복무하는 존재로 살라고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남자의 여자로 지위가 정해지면,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한때의 감정으로 휘발되어버리고, 끊임없이 강요되고 기대되는 역할만 덩그러니 남는다.
이제 관계는 시험에 들기 시작한다. 둘의 의사소통이 오해에 오해로 이어지며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다가 단절되어버린다.
어쩌면 살과 피로 된 진짜 손이 아니라 차가운 가짜 은 손을 달아주는 관계는 이런 파국이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손을 자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사랑을 꿈꾸었으나, 가짜 손을 달아주는 남자를 만나 자신의 내면이 죽어감을 느낀다. 가짜 손을 달고 하루하루 갇힌 역할 속에서 내가 조금씩 부서져 죽어가는구나를 느낄 때, 여성 내면의 오래된 지혜,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무의식 속 늙고 지혜로운 여인이 살기 위해 떠나라고 말해준다. 동화에서는 그게 왕의 어머니 모습으로 나타난다.

잘린 손이 자란다는 것

여자는 아들의 이름을 슬픔으로 가득 찬 Filled-with-Grief’이라고 짓는다. 7년의 세월, 완전함을 상징하는 수인 7을 써서 7년이니, 족하고도 남을 세월을 혼자서 슬픔을 품고 보듬으며 산다. 그리고 진짜 손이 천천히, 천천히 자란다.
이상야릇하고 슬프지 않은가. 사랑 타령을 하며 사랑에 목매달 때는 진짜 손이 자라지 않더니, 그리도 사랑했던 남자는 진짜 손을 키워주지 못하더니,
사랑을 내려놓고 남자도 잃고서야, 더 나아가 한 세상의 왕비였던 모든 것조차 다 내려놓고서야, 오로지 그 넓던 우주가 품에 안긴 생명 하나로 수렴될 만큼 작아지고서야, 비로소 진짜 손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라나니 말이다.
삶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슬픔은 그리하여 삶의 원동력이 된다. 품어서 뽀얗고 맑게 굳어지는 진주로 바뀌는 것처럼, 슬픔은 기쁨으로 바뀐다.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전 세계를 헤매도 찾지 못하는 생명의 힘은 사실 내면 깊은 곳에 있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은 잘린 손을 다시 키워주지 못한다. 손은 내가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자라나 남에게 뻗는 것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잘린 부위가 손인 것도 남에게 내밀고 뻗어야 하는 마음이 잘려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 마음을 스스로 키워 내밀 수 있을 때, 손을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 서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에게 손이 두 개인 까닭에 대해 할리우드 스타에서 국제적인 외교 사절로 일생을 보낸 오드리 헵번은 이 렇게 말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 손은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입니다.”

눈물로 키운 손이 있는가?

손은 다른 사람에게 내밀어 뻗으라고 있다. 내밀어 뻗을 수 있을 때, 내밀어 뻗어 품에 안을 생명이 생겼을 때, 능히 그러할 수 있을 때, 진짜 손은 자란다. 당신에게는 눈물로 키운 손이 있는가? 내밀어 뻗을 손이 있는가? 한때 손이 잘렸던 여자들이, 한때 가짜 은 손을 달았던 여자들이, 여자로 태어나 인간으로 완성되는 모퉁이에서 받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사랑을 제대로 못 받아 손이 잘렸고, 손이 없어서 사랑을 못하니, 제발 누군가가 날 사랑해서 손을 키워주세요, 빛나게 해주세요, 나를 완성해주세요하며 손목 뿌리만 남은 손을 가지고 울며 세상을 떠돌던 삶은 손을 내밀어 뻗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그렇게
마음을 먼저 내밀어 뻗으면 손이 따라 자라서 드디어 온전한 존재로 완성된다.
    


손 없는 소녀 | The Girl Without Hands
옛날 가난한 방앗간지기가 있었다. 어느 날 숲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이상한 노인이 다가와 말했다. 너의 집 사과나무 뒤에 서 있는 것을 3년 후에 내게 주겠다고 약속하면, 부자로 만들어주마.”
방앗간지기는 그러겠노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과연 금은보화로 넘치고 있었다. 그런데 사과나무 뒤에 서 있는 것은 자신의 딸이었다.
3년 후 악마가 데리러오자 딸은 자기 주변에 원을 그려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이제 악마는 딸의 손을 자르지 않으면 대신 너를 데려가겠다고 방앗간지기를 협박했다. 그는  딸을 숲속으로 데려가 도끼로 손을 잘랐다. 하지만 딸이 흘린 눈물로 잘린 손목이 또 깨끗해지자 악마도  어찌할 수 없어 돌아갔다.
악마가 돌아가자, 딸은 부모에게 이제 세상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손 없는 아가씨는 며칠을 떠돌다 어느 아름다운 정원에 다다라 왕을 만나 결혼했다. 왕은 그녀에게 은으로 가짜 손을 만들어주었다. 몇 년 후 왕은 전쟁터로 나갔고, 손 없는 왕비는 그동안 어여쁜 아들을 낳았다. 왕의 어머니는 기쁜 소식을 편지로 써서 보냈지만, 악마가 가로채서 내용을 바꿔버렸다. 왕비가 낳은 아이는 요정이 바꿔치기 한 아이라고. 왕은 그래도 건강하게 잘 키우라는 답장을 써서 보냈는데, 이번에도 악마가 편지를 가로채 왕비와 아기를 죽이라고 했다.  왕의 어머니는 차마 왕비와 아기를 죽일 수 없어서 둘을 내쫓았다. 손 없는 왕비는 아기를 등에 업고 깊고 깊은 숲으로 들어가 작은 집에서 살았다.
전장에서 돌아온 왕은 왕비와 아기가 없어진 것을 알고, 이들을 찾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렇게 7년이 다 되어갈 무렵, 우연히 깊은 숲속 작은 집에서 왕비와 일곱 살이 된 아들을 만나게 된다. 왕비는 잘렸던 손이 자라 진짜 손을 하고 있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들을 데리고 궁으로 돌아와 다시 결혼식을 올리고 생을 마칠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이 포스트는 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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