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흰 망토가 아니라는 점이다. 순결을 상징하며 오염되고 타락할 가능성이 높은 흰 망토를 걸치고 가는 게 아니다. 여자들에게 오염되고 타락할 수밖에 없는 순결을 지니라고 저주를 거는 폭력 따위는 거부해야 한다. ‘감히 누구를 타락 가능성으로 가늠하느냐’고 분노해야 한다. 그리하여 순결 따위, 흰 망토 따위는 거부한 채, 불타는 빨간 망토를 걸치고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빨간 망토를 걸칠 용기가 없으면 아예 숲으로 들어가지도 말라. 그곳은 겁쟁이들이 들어갈 곳이 아니다.
아버지의 착한 딸로 스스로 욕망을 박제해서 인형처럼 눈꺼풀만 깜박이며 그 경배를 받고 사는 게 나은 여자들은 숲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그런 여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빨간 망토가 주홍글씨처럼 낙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네 삶은 죄의식의 좁은 닭장 안에서 푸드덕대는 삶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닭장 속에서 네 수탉이 다른 암탉에 올라타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정신을 칼날같이 날카롭게 세우고 유지하며 열심히 눈을 굴리며 살도록 해라. 어두운 숲속에서 스스로 붉게 빛나는 표상을 지닌다는 건, 살아 있음이 축복이므로, 살아 있으니 욕망하고, 욕망과 조우해 삶이 허락하는 바를 다 껴안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붉게 타오르는 기표가 없이 어떤 삶이 찬란하겠는가.
이 포스트는 『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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