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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빨간 두건이 달린 빨간 망토일까?

인문 교양 읽기/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

by 스마트북스 2018. 7. 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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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빨간 두건이 달린 빨간 망토일까?

빨간 모자는 왜 숲으로 갔을까?

많은 경우 뒤집어보면 진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할 때,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저주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터부시되는 많은 일이 인간에게 금지된 욕망이고, 인간이 금지된 것을 욕망한다는 건 당연한 비밀일지도 모른다.
빨간 모자는 그런 의미에서 시사적이다.
왜 아직 여자가 되지 않은 소녀는 꼭 숲에 가야 하는 걸까? 의문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할머니는 왜 어두운 숲을 지나 도달하는 먼곳에 사는 걸까?
세상은 늘 여자들에게 숲에 가지 말라고 한다. 위험하다고 여자들을 설득하며, 남자는 다 늑대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제대로 말하자.
남자를 거치지 않고 소녀가 여자가 될 수 있냐고. 어두운 숲을 거치지 않고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알 수 있냐고. 혹은 어둠 속에 빛나는 불빛을 밝힌 집을 발견할 수 있냐고. 삶의 어두움과 빛을 모르고 자라는 영혼이 어디 있냐고.
소녀는 숲에 가야 한다. 그것도 그냥 가면 안 된다. 빨간 두건이 달린 망토를 걸치고 가야 한다.’

순결 따위, 흰 망토 따위는 거부한 채

 

중요한 건 흰 망토가 아니라는 점이다. 순결을 상징하며 오염되고 타락할 가능성이 높은 흰 망토를 걸치고 가는 게 아니다. 여자들에게 오염되고 타락할 수밖에 없는 순결을 지니라고 저주를 거는 폭력 따위는 거부해야 한다. ‘감히 누구를 타락 가능성으로 가늠하느냐고 분노해야 한다. 그리하여 순결 따위, 흰 망토 따위는 거부한 채, 불타는 빨간 망토를 걸치고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빨간 망토를 걸칠 용기가 없으면 아예 숲으로 들어가지도 말라. 그곳은 겁쟁이들이 들어갈 곳이 아니다.
아버지의 착한 딸로 스스로 욕망을 박제해서 인형처럼 눈꺼풀만 깜박이며 그 경배를 받고 사는 게 나은 여자들은 숲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그런 여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빨간 망토가 주홍글씨처럼 낙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네 삶은 죄의식의 좁은 닭장 안에서 푸드덕대는 삶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닭장 속에서 네 수탉이 다른 암탉에 올라타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정신을 칼날같이 날카롭게 세우고 유지하며 열심히 눈을 굴리며 살도록 해라.
어두운 숲속에서 스스로 붉게 빛나는 표상을 지닌다는 건, 살아 있음이 축복이므로, 살아 있으니 욕망하고, 욕망과 조우해 삶이 허락하는 바를 다 껴안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붉게 타오르는 기표가 없이 어떤 삶이 찬란하겠는가.

내면의 허기와 갈망을 마주하는 곳

숲에 들어감은 늑대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늑대에게 잡아먹히기 위해서이다. 늑대의 허기와 은빛 털을 마주하기 위해서이다. 어리고 몽매한 소녀도 이미 숲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 여정이 허기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허기와 갈망과 욕망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간다. 숲을 지나게 되면 할머니의 허기, 아니 할머니로 가장한 내면의 허기와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숲속의 할머니는 죽음과 삶의 가장자리에서 지혜를 부리는 존재이다할머니의 이름으로 깨달음은 오게 되어 있다. 숲으로 들어가는 소녀는 허기가 근원적인 욕망이라는 것을 알기에, 허기를 붙들고 오래된 내면의 지혜를 상징하는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숲속에서 금지된 욕망의 실현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에, 욕망을 부르는 빨간 망토를 두르고 어두운 숲속으로 발을 디딘다
    

늑대야, 기꺼이 나를 잡아먹어라

늑대에게 먹힌다는 것은 세상이 빚어주었던 인식을 깨고 내면에서 타고난 오성悟性을 발견하고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오성이란 내면에 감추어진 힘으로 생명을 긍정하는 에너지이다. 위기의 순간 오성은 사람의 정신을 아득한 검은 우물에서 건져 올리는 황금 밧줄의 역할을 한다. 소녀는 금지된 욕망이 원하는 대로 모든 허기를 짊어진 늑대를 만나고, 늑대의 가죽을 입고 늑대의 감각으로 세상을 달릴 수 있게 된다. 그 배에 들어갔다 나와야 소녀는 감았던 눈을 뜨고 후아하며 숨을 내뱉은 후 두 발로 서서 숲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늑대에게서 나를 꺼내주는 사냥꾼을 부리는 것도 나, 세상이 하찮게 경고 딱지를 붙인 남자 사람이란 늑대따위를 거쳐가는 것도 나, ‘어떤 색의 옷을 입든 나는 나라는 것을 아는 그런 여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늑대야, 나를 잡아먹어라. 내가 불처럼 타오르는 망토를 걸치고 어두운 숲으로 달려갈 테니. 빨간 모자 | Little Red Riding Hood

이 포스트는 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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