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최소로, 돈은 최대한 많이 버세요?
위계조직의 연공서열제는 비효율적인 경제체제로 알려진 공산주의와 많이 닮아 있다. 평등을 중시하는 공산주의에서는 개인의 능력 및 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위에서 계획을 철저히 세우면 아래에서는 그 목표량에 맞추어 각 팀별로 일을 수행한다. 성과에 대한 평가가 팀별로 이루어지고, 보상도 똑같이 배분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최소한으로 일하려 하게 된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일을 열심히 할 이유도 별로 없고, 위에서 획일적으로 설계된 업무 지시는 실무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체제에서는 개인에게 동기를 부여할 만한 강력한 사상적 장치가 필요해진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과 지도자를 위해서 한다는 식의 장치이다.
위계조직에서는 이와 유사하게 창업주나 현재 가장 높은 명령권자가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지에 대해 계속 강조한다. 가장 아래에 있는 직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업무 지시가 내려와도 탁월한 결정이라고 믿고 수행해야 한다. 위에는 더 많은 정보가 있고 아래에는 훨씬 적은 정보만이 주어지므로, 위에서 하는 결정이 더 좋은 결정일 것이라고 믿게 된다.
위계조직은 작동원리뿐만 아니라 성과에 대한 보상도 공산주의와 닮아 있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보상은 연공서열의 범위를 넘지 못하며, 개인의 기여보다는 팀의 성공이 우선시된다. 그렇다 보니 위계조직의 최고 덕담은 “일은 최대한 적게 하고 돈은 많이 버세요”가 되어버린다.
회사에 충성하고 시키는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위계조직의 특성을 얼마간 겪고 나면, 이런 조직에서는 내 전문성을 쌓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고, 윗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
성과주의 안에선 혁신이 어렵다
많은 기업들이 열심히 일하고 더 좋은 성과를 내도 보상이 더 많이 주어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과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몇 개를 생산하든 같은 시급을 받았다면, 성과주의를 도입하면 한 시간에 20개를 만드는 사람은 10개를 만드는 이보다 보상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하지만 위계조직의 성과주의는 다양한 부작용을 낳는다. 단기성과를 좋게 만들기 위해 정규시간 외에 무리한 근무를 하기도 하고, 부서간 경쟁을 통해 회사 전체적으로는 더 큰 비효율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 보여주기식 프로젝트들이 생기고 다른 사람의 성과를 가로채는 일도 발생한다.
가장 큰 문제는 도전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성과가 좋지 않으면 보상도 줄어들기 때문에 혁신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만약 한 시간에 인형을 10개 만드는 사람이 신기술을 이용하면 배우는 기간에는 5개밖에 만들지 못하지만, 6개월 후에는 20개씩 만들 수 있다고 해보자.
항상 같은 액수의 월급을 받는 사람의 경우, 6개월 후에 20개를 만들 수 있는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성과주의 기업에서는 신기술을 익히는 기간 동안 월급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꺼리게 될 수 있다.
이처럼 위계조직 내의 평등주의는 근본적인 생산성에 문제를 가져오고, 성과주의는 혁신에 문제를 일으킨다.
회사의 미션에 어떻게 기여했나요?
혁신에 최적화된 역할 조직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기준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것을 ‘기여주의’라고 이름을 붙였다.
기여주의를 채택한 기업에서는 “당신은 얼마만큼 많이 생산했습니까?”가 아니라 “당신은 우리 회사의 미션에 어떻게 기여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획일화된 생산량이 아니라 주관적인 기여도가 평가기준이다.
“당신은 우리의 미션에 어떻게 기여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5개밖에 못 만든 사람도 앞으로 20개를 만들기 위해서 신기술을 익히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만들도록 응원하고 간식을 제공했다든가, 아니면 기계 박람회에 가서 앞으로 생산혁신을 위한 신기술을 알아보았다는 등 여러 면에서 평가가 가능해진다.
실리콘밸리 문화에서는 간식을 제공한다는 것이 임팩트는 크지 않지만, 팀원들이 고마워하는 기여이다. 자신의 주업무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했기 때문이다. 팀에 대한 헌신보다 개인에 대한 평가가 우선되는 환경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작은 희생은 팀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허드렛일이 아니라,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마음을 다해 준비한 선물이 된다.
매니저의 일괄적인 평가도 불가능해진다. 함께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 간식을 제공하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고 팀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자원의 낭비로 보일 수도 있다. 또한 기계 박람회에 가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회사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시간 투자로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시간 낭비일 수도 있다.
기여주의 핵심은 건설적 피드백
기여주의 평가의 핵심가치는 바로 이처럼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단순히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그가 우리의 미션에 더 잘 기여하려면 어떻게 하는것이 좋을지를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기여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인사평가는 획일화된 기준을 가지고 평가를 당하는 두려운 시간이 아니라 나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받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넘어 나의 전체 커리어의 발전을 위한, 동료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기여주의 평가방식을 통해서 회사는 성과주의의 많은 비효율을 없앨 수 있다. 성과주의는 각 개인을 획일화된 평가척도로 단순화하여 평가하는데, 이 경우 미션을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성과지표에 최적화된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예를 들어 직원의 성과척도에 수익증대가 들어 있는 회사에서 자사 홈페이지에 ‘광고를 몇 개 삽입할까?’를 결정하는 담당자는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할까? 광고를 많이 넣으면 회사의 수입은 늘겠지만, 장기적으로 사용자 경험이 안 좋아져서 많은 소비자들이 홈페이지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두 직원이 각각 다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 보자.
직원1: 홈페이지에 광고를 많이 추가
직원2: 홈페이지에 광고를 최소한으로 추가
성과주의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수익증대 실적을 위해 광고를 많이 넣을 것이다. 수익증대 여부로 직원의 성과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익을 희생해서라도 사용자 경험을 개선했다고 주장해도 평가척도에 반영될 수 없고, 누군가가 윗사람에게 강변하지 않는 이상 의미 없는 말이 되어버린다. 사용자 경험은 쉽게 척도화할 수 없는 반면, 금전적 수익증대는 쉽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과주의에서 광고를 많이 넣는 것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과주의 체제에서는 ‘회사 전체를 위해서는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번 승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성과주의 체제에서는 각각의 안이 다음과 같이 평가될 것이다.
직원1: 수익 제고 점수 10점
직원2: 수익 제고 점수 2점
이러한 단순한 예 외에도 성과주의 평가방식으로는 윗사람이 좋아할만한 프로젝트만 선택한다든지, 실제로 한 일보다 성과를 부풀린다든지, 다른 사람들의 성과를 가로채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반면 회사 전체의 미션을 생각하는 기여주의에서는 수익을 희생해서라도 사용자 경험을 증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당신은 회사의 성공을 위해 어떻게 기여했습니까?’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상상해 보자.
직원1: 저는 수익창출을 위해 홈페이지에 광고를 많이 추가했습니다.
직원2: 저는 회사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수익을 조금 줄이더라도, 사용자들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성과주의에서와는 달리 기여주의에서는 어떤 미션을 가지고, 어떤 가치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만일 회사의 미션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생존을 위해 단기적으로 돈을 모으자’라면 직원1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고, 회사의 미션이 ‘장기적으로 사용자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자’라면 직원 2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기여주의 평가방식은 회사 전체의 미션과 미래를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에, 각 직원이 획일화된 수치가 아닌 자신만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한다. 그러한 관점의 변화를 통해 획일화되고 무의미한 경쟁보다 효율적이고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포스트는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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