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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기업은 왜 대도시로 몰릴까?

경제상식 경제공부/디플레 전쟁

by 스마트북스 2020. 7. 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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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택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더욱 심화하는 요인은 바로 ‘클러스터 효과’입니다. 클러스터 효과란 좋은 직장이 집결된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또 이것이 다시 새로운 직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로 서울부터 수원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경부축’은 세계에서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하는 세 지역 중의 하나입니다. 서울-수원 클러스터보다 더 많은 특허를 출원하는 곳은 도쿄-요코하마(세계 1위)와 홍콩-선전(세계 2위) 지역 정도입니다.

클러스터 효과와 정보통신 혁명

사람들이 대도시로 집중되는 현상은 한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소도시와 수도가 평화롭게 공존하던 유럽도 최근 대도시로의 집중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 현상이 벌어지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정보통신 혁명 때문입니다. 예전의 제조업은 원료 및 노동력 확보가 쉬운 지역에서 발전했습니다. 미국의 클리블랜드와 영국의 리버풀 같은 도시들이 대표적이죠. 철광석이나 석탄 등 원료 조달이 편리하고, 운하 등으로 다른 지역과 이어진 곳, 그러면서도 주변 농업지역에서 값싼 노동력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제조업의 중심지로 부각되었습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포항에서 울산, 거제에 이르는 남동임해공업지역이 제조업의 중심지로 부각되었죠.

그러나 정보통신 혁명은 기업이 선호하는 ‘입지’ 조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과거에 비해 정보통신 기업들은 생산인력이 훨씬 적은 대신 훨씬 더 큰 기술개발 센터(R&D Center)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술개발 센터들은 죄다 대도시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엔리코 모레티는 혁신산업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전통적 산업은 국외로 이전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혁신적인 기업들은 옮기기가 훨씬 어렵다. 장난감이나 섬유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고 치자. 그 공장을 이를테면 중국이나 인도에 있는 완전히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중략)
철도나 항구가 가까이 있기만 하면, 그 소재지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제조업체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같은 논리가 혁신적인 기업에는 통하지 않는다. 생명공학연구소나 소프트웨어 기업을 멀리 인적이 떨어진 곳으로 옮겨놓고 그 연구소나 기업이 계속 혁신적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혁신을 창조하기는 훨씬 더 어려우며, 혁신 아이디어는 고립 상태에서 절대 탄생되지 않는다. 혁신적 생산을 위해서는 적절한 생태계를 찾아내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어떤 부문보다 더, 첨단기술 산업의 성공은 단지 그 근로자들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그 기업을 둘러싼 전체 지역 경제에 달려 있다. (중략)
혁신적 산업은 한 덩어리로 뭉치는 경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이런 뭉침은 없어지지도 않는다. 화상회의, 이메일, 인터넷도 이러한 뭉침의 정도를 낮추지 못한다. _ 엔리코 모레티(2014), 『직업의 지리학』, 김영사, 25쪽

'끌어당김의 힘'

정보통신 기업들이 대도시에 집중되는 것이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혁신기업들은 이미 형성된 산업의 중심지로만 모여드는 것일까요? 엔리코 모레티 교수는 이런 현상이 바로 ‘끌어당김의 힘’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이 세 가지를 싸잡아 ‘끌어당김의 힘(Force of Agglomeration)’이라고 하는데, 두터운 노동시장, 전문적인 사업 인프라의 존재,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지식 전파가 그것이다. (중략)
어떤 지역에 몇몇 첨단기술 기업을 일단 유치하면, 다른 첨단기술 기업들이 뭉치기에 더욱 매력 있는 곳으로 그 지역이 변모한다는 것이다. 많은 숙련된 개인들이 혁신적인 산업의 일자리를 찾아나서고 혁신적 기업들이 숙련된 근로자를 구하는 가운데 자기 지속성을 가지는 균형 상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중략)첨단기술 산업은 이용 가능한 숙련 인력, 전문적인 공급업체들, 그리고 지식의 흐름을 지원할 만큼 충분히 대규모인 혁신 중심지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더 창의적이고 더 생산적으로 변모한다. _ 엔리코 모레티(2014), 『직업의 지리학』, 김영사, 26~27쪽

기업들은 두터운 노동시장으로 인해 서울-판교 클러스터에서 상대적으로 손쉽게 필요한 인력을 구할 수 있습니다. 또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어떤 회사에서 해고되어도 가까이에서 금방 직장을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나아가 핵심 개발인력들이 대화를 나누고 식사하는 등의 과정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어, 이것이 다시 기업의 경쟁력을 개선시키게 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 정보통신 기업들이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부서를 수도권 핵심지역으로 이동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가 기술개발 센터의 위치를 용인으로 결정했던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정보통신 혁명의 수혜를 받는 사람들은 높은 소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생산성과 학력수준도 높아서 기업들이 후한 보상을 지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들은 항상 시간 부족에 쫓기는 처지이기에, 다시 말해 ‘시간당 비용’이 대단히 비싸기에 시장에 다양한 활동을 외주(外注)로 맡기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외식일 겁니다. 고소득자들이 집중된 대도시마다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받은 식당이 즐비한 이유도 이런 데 있습니다.

엔리코 모레티 교수는 이런 종류의 일자리를 ‘지역적 일자리’로 분류하는데, 첨단산업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보다 지역적 일자리의 증가속도가 더 빠르다고 합니다.

 

대도시 지역 320곳의 미국 근로자 110만 명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연구 결과, 대도시 지역 한 곳에서 첨단기술 일자리가 1개 늘어날 때마다 장기적으로 5개의 추가적인 일자리가 첨단기술 분야 밖에서 창출된다. 이 5개의 일자리는 다양한 근로자 조합에 이득을 준다. 승수효과에 의해 창출된 일자리들 가운데 2개는 전문직인 데 비해 나머지3개는 비전문직 일자리였다. _ 엔리코 모레티(2014), 『직업의 지리학』, 김영사, 97쪽

 

생산가능인구 줄어도 주택가격 상승세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 지 오래되었지만, 혁신산업의 중심지는 이런 경제 전체의 흐름과 큰 연관을 맺지 않습니다. 일단 혁신산업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 노동력이 이 지역으로 집중되는데다가 종사자의 소득수준이 높다 보니, 주거여건이 좋은 주택에 대한 수요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 될 것입니다.

다음 그림은 미국의 생산가능인구와 주택가격의 추이를 보여줍니다.

미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00년대 중반부터 줄어들었음에도 전국적인 주택가격은 2012년 이후 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주택가격의 앞날을 예측하는 데도 하나의 힌트가 될 것입니다.

이 포스트는 『디플레 전쟁』(홍춘욱)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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