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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소비자물가, 실제보다 높다고?

경제상식 경제공부/디플레 전쟁

by 스마트북스 2020. 7. 2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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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식적으로 측정해 발표한 물가상승률 수치는 실제보다 높을 수 있습니다. ‘인플레 과다 추정’의 위험 때문입니다.

최근 통계청은 소비자물가 가중치를 개편했는데, 그 결과 과거에 측정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실제 인플레 수준보다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2018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존에는 1.6%로 나왔지만, 개편된 지표에 따르면 1.5% 상승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왜 실제보다 높게 계산될까?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최근 발간한 흥미로운 보고서를 통해, 정부 당국이 집계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실제보다 높게 계산되는 경향이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https://www.stlouisfed.org/open-vault/2019/january/fed-inflation-target-2-percent

첫째, 품질의 극적인 개선이 소비자물가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물가지수에 배기량 2,000cc 자동차의 가격이 반영된다고 합시다. 20년 전의 자동차와 현재의 자동차는 배기량이 2,000cc로 같더라도, 기술발전으로 품질이 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를 계산할 때에는 배기량을 기준으로 자동차 가격을 비교하기에 품질의 극적인 개선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기술발전과 소비자물가 측정의 이러한 한계에 대해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D. Nordhaus)도 연구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1,000루멘(Lumen)의 빛을 얻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참고로 루멘이란 가시광선의 양을 측정하는 단위로서, 보통 대형 영화관에 쓰이는 영사기가 2만 루멘이니 1,000루멘이면 꽤 밝은 양의 빛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장작을 산더미처럼 쌓아서 얻은 1,000루멘의 빛과, LED 전등을 이용해 만든 1,000루멘의 빛은 같은 빛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모닥불은 그을음도 심하고 비나 바람 등 외부여건의 변화에 따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반면 LED 전등은 장작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를 절약해주는 데다가 빛의 품질도 탁월합니다. 그러나 노드하우스 교수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절대적인 1,000루멘 빛의 가격만 측정할 뿐 빛의 품질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죠.

둘째, 의류건조기처럼 기술발전과 경쟁으로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는 품목이 소비자물가 계산에서 누락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의류건조기는 처음 출시되었을 때 매우 비쌌지만, 기술발전과 경쟁으로 가격이 떨어지고 그 덕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계청은 ‘평균’적인 가정을 기준으로 소비자물가 바스켓을 작성하기 때문에, 의류건조기처럼 이제 막 보급이 시작된 제품은 소비자물가 바스켓에 넣기 어렵죠. 훗날 의류건조기가 소비자물가지수에 편입될 때는 그동안 진행되었던 가격 하락이 뒤늦게 반영되며 전체 소비자물가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로 통계청이 2017년 소비자물가의 가중치를 변경한 주요 품목을 살펴보면, 가중치가 크게 상승한 품목은 해외 단체여행비(+3.8), 커피(+2.1), 휴대전화기(+1.7) 등입니다. 즉, 소비자들의 지출이 꾸준히 늘어난 품목일수록 가중치가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죠. 결국 소비자물가가 하향 조정되는 것은 커피나 휴대전화기 등 가중치가 증가한 품목의 가격이 꾸준히 떨어졌거나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 1.1%포인트나 과대 계산되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현실보다 더 과장되어 있다는 논란은 미국 의회에서도 문제가 된 바 있습니다. 1995년 미국 상원은 노동부의 소비자물가 측정방법의 정확도를 평가했습니다. 흔히 ‘보스킨 위원회(Boskin Commision)’라고 불리는 이 위원회는 소비자물가지수가 생계비의 변화를 매년 1.1%씩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보스킨 보고서의 내용을 조금만 더 인용하자면, 물가의 과대평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때문이라고 합니다.

첫째, 소비자들은 물가가 급등한 제품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소비를 줄입니다. 예를 들어 버터 값이 급등하면 마가린을 비롯한 다른 대체재로 신속하게 소비를 바꾸기에 소비자들의 지출 꾸러미에서 차지하는 버터의 비중이 줄어드는데, 소비자물가지수는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둘째, 어떤 제품의 가격이 급등하면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아직’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 가격이 오르자 사람들이 아직 조금이나마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몰렸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셋째, 소비자물가는 제품의 품질 향상을 과소평가하고, 새로운 제품을 편입하는 데 너무 느립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가 미국 소비자물가에 반영된 것은 1998년이었습니다. 당시는 이미 휴대전화 가입자가 5,500만 명을 넘어섰고, 그 이전 10년 사이에 휴대전화의 이용요금은 51%나 떨어진 상태였죠. 한국의 의류건조기 사례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던 셈입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1% 이하면 물가하락?

이상과 같은 분석은 다음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즉,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를 밑돌고 있다면 현실적으로는 ‘이미 물가하락 중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2018년 이후 한국은 ‘이미 디플레가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이 포스트는 『디플레 전쟁』(홍춘욱)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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