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400만원으로 창업, 연 매출 30억 기업으로!
최영 펀비즈 대표
“자기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세요. ‘내 힘으로 돈을 벌어서 누군가의 봉급을 줄 능력이 되는가?’ 내 힘으로 변화를 일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뛰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퇴직금 400만원으로 천기저귀 시장에 뛰어들어 매출 30억을 이룬 최영 펀비즈 대표.
그녀는 어떻게 성공의 열쇠를 잡았을까요?
정보기술 산업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이 무슨 천기저귀냐며 주변에서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직접 재봉을 배워 제조 과정을 파악할 정도로 일해 시장에 안착했습니다.
펀비즈는 현재 기저귀를 비롯해 유아 속옷, 배냇저고리뿐 아니라 실버용품 등으로 품목을 늘리며 사세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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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대표는 중국 선양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던 이모부의 권유에 따라 선양위생학교 임상병리학과에 진학했지만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사실 중국에서 보낸 5년은 그녀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또래 친구들을 사귀면서 중국인의 성향을 이해하게 됐고 대륙의 무한한 가능성도 확신할 수 있었죠. 또한 끈끈한 중국 인맥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며 어울렸던 친구들이 지금은 경찰서장이 돼 있거나, 변리사를 한다거나, 정치협회장(우리나라의 도의회 의장)으로 일하고 있어 외국인이 쉽게 얻을 수 없는 탄탄한 꽌시(關係)를 자연스럽게 확보한 것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그들을 처음 만나야 했다면 공식적으로 통로를 뚫는 것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융숭하게 접대를 해야 했을 겁니다. 그래도 결과는 보장되지 않았을 테고요. 하지만 저는 어린 나이에 그들을 만나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온 만큼 서로 믿고 밀어주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런 꽌시를 그 사람의 중요한 능력이자 자산으로 봅니다. 주변에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가 그 사람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첫 번째 잣대이지요. ‘친구’의 의미도 단순히 사귄다는 개념을 넘어서 내 분수에 넘칠 정도로 대접하거나 챙겨주고, 또 나중에 나도 그만큼 돌려받는 관계로 인식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인적 자산인 셈입니다. 오늘 내가 친구한테 제공하는 모든 편의와 호의가 나중에 나에게 닥칠지 모를 어려움에 대비해서 저축하는 행위인 셈이죠. 이런 중국인 특유의 성향을 모르고서는 중국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최영 대표.
대학을 졸업한 최영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와 중국과 홍콩으로 산요
(SANYO)의 전자부품을 수출하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탁월한 중국어 실력과 경영학도라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해외사업부에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다양한 업무를 도맡아 하면서 직무 능력을 발전시켰고 시장의 변화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죠. 하지만 중국에서 저렴한 모방 제품이 잇따라 나오면서 회사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결국 2001년 부도를 맞았습니다. 4개월 넘게 월급이 안 나왔음에도 그녀는 회사가 완전히 정리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첫 직장이라는 애착도 있었지만, 3년 넘는 세월에 대한 의리도 적지 않게 작용한 것이죠.
회사가 문을 닫자 사장은 그의 동생이 운영하는 정보기술 기업 옴니텔에 그녀를 소개했습니다. 모바일 방송 및 무선 인터넷 콘텐츠 사업을 펼쳤던 옴니텔은 나래이동통신 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 출신의 김경선 대표가 1998년에 설립한 회사입니다. 그녀가 합류했을 때 옴니텔은 중국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었고, 자연스럽게 그녀는 중국사업팀장을 맡게 됐습니다.
“당시 중국은 부가 서비스 개념 없이 통화료에 매출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익 구조였어요. 반면에 한국의 통신사는 부가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선도적 위치에 있었죠. 특히 기본 통화료보다 부가 서비스 매출이 높아서 차이나모바일과 유니콤 등이 우리의 통신 서비스를 벤치마킹했지요.”
한국의 부가 서비스와 중국의 그것은 차이가 컸습니다. 우리나라는 대중가요 등 음악을 컬러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주류였는데, 중국은 성우가 1인 다역의 만담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비스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중국사업팀장을 맡았던 6년간 그녀는 한 달에 20일을 중국에서 살 정도로 중국 시장 개척에 열정을 쏟았고, 중국 26개 성에 지사를 설립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일궈냈습니다.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 사업’에 대한 열망을 키웠던 최영 대표는 2006년 6월 퇴직금 400만원을 갖고 창업에 나섰습니다. 가산동에서 사업하던 지인이 갑작스럽게 부도를 맞아 비워둔 사무실과 사무집기를 당분간 빌려 쓰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무턱대고 창업에 뛰어든 것은 아닙니다. 중국과 일본, 미국, 홍콩 등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는 친구들에게 사업 아이템을 추천받았습니다. 단, 각 시장별로 뜨고 있는 아이템과 지속 성장이 가능한 시장이라는 전제 조건을 붙였죠.
그러던 어느 날 구글 검색을 하면서 시장조사를 하고 있는데 유럽에서 판매되는 팬티형 천기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직접 구입해서 살펴보았는데, 크기가 너무 커서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 일회용 팬티기저귀를 사용하는 영아들이 입을 수 있는 크기로 친환경 천기저귀를 만들면 승산이 있을 거야!”
직장 생활 중에 중국 진출 업무를 하면서 영유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봤던 만큼 프리미엄 제품으로 영유아 시장을 공략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종국에는 ‘중국의 아가방이 되겠다’는 게 그녀의 창업 비전이었죠.
퇴직금 400만원이 전 재산이었던 최영 대표는 원단을 구매할 돈도, 공장을 돌릴 돈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인 꽌시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중국에서 커튼공장을 하는 친구에게 자신이 보내주는 디자인대로 천기저귀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면서, 당장은 돈을 줄 수 없으나 나중에 제품이 팔리면 원단 값과 공임비를 주겠다고 했죠. 그 친구는 두말하지 않고 최영 대표의 요청을 수락했고, 그렇게 베이비앙의 첫 기저귀가 탄생했습니다.
“엄마들은 디자인적인 요소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그래서 13가지 색상으로 팬티형 천기저귀를 만들었어요. 신세대 엄마들이 ‘내 아이에게 꼭 입히고 싶은 기저귀’로 기억하도록 만들고 싶었거든요.”
물론 사업 초창기에는 베이비앙 브랜드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데다 일회용 종이기저귀에 익숙한 엄마들에게 천기저귀로 어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첫 6개월 동안 총 매출이 1,000만원도 되지 않아서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기회가 왔습니다. 2007년 2월 서울베이비엑스포에 천기저귀 제품을 출품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것이죠. 그와 동시에 매출도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사가 베이비앙의 천기저귀가 중국산이라 아기들한테 좋지 않다고 비방하면서 다시 위기를 맞게 되었죠.
고심 끝에 최영 대표는 친환경성을 담보한 메이드인코리아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일회용 기저귀 시장에서 문제로 지적됐던 형광물질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제품 생산을 목표로 삼았죠. 이를 위해 사무실 한쪽에 재봉틀 2대를 들여놓고 아주머니 2명을 고용했지만, 기대만큼 생산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중국 공장을 이용할 때보다 생산량은 떨어졌고 재봉 상태까지 불량해서 고객 불만이 접수됐습니다. 재봉 담당 아주머니에게 문제를 지적하면 ‘사장이 잘 몰라서 그런다’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죠.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의정부에 자리한 지인의 재봉공장으로 출근했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재봉을 배웠고 저녁에는 회사로 돌아와 밀린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더니 제조 과정을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문제를 빚었던 아주머니 2명을 내보내고 새로 사람을 구했습니다. 그 후 직원이 제품을 만들어놓으면 그녀가 새벽까지 꼼꼼히 점검하고 다림질과 포장 등 마무리 공정을 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신세대 엄마들 사이에서 베이비앙은 ‘무형광 국민 천기저귀’라는 별칭을 얻으며, 재고가 없어 고객에게 배송 날짜 지연에 대해 양해를 구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끌었습니다. 물론 무형광 소재로 만든 천기저귀이기 때문에 타사 제품보다 1.5~3배가량 비싸지만, 정직함과 성실함이 결실을 맺어 2016년에 총 매출 30억원을 달성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최영 대표에게 천기저귀의 가격 경쟁력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최영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24개월 아기 기준으로 일회용 기저귀 소요 비용이 보통 300만원에 달하는데, 천기저귀는 개당 2만원, 총 25장으로 50만원 정도만 소요됩니다. 세탁을 위한 수도세와 전기세가 들긴 하겠지만, 아이의 피부와 환경을 생각하면 천기저귀만큼 내 아이에게 큰 선물은 없을 거예요. 게다가 베이비앙의 천기저귀 원단은 세탁을 하면 얼룩이 거의 남지 않도록 기저귀에 특화해서 개발한 원단이에요.”
패셔너블한 출산·유아용품 브랜드를 지향하는 베이비앙은 천기저귀 외에도 배변훈련팬티, 속싸개, 수면조끼, 영유아 내의, 침구와 타월 등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24개월 이하 영유아를 핵심타깃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최영 대표의 치밀한 시장 분석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시장별 어린이 발육 정도를 조사해보니 전 세계적으로 24개월까지의 베이비 시장이 국적이나 인종과 상관없이 신체 치수가 거의 비슷하더군요. 토들러나 키즈 시장은 서양과 동양이 신체 치수 차이가 큽니다. 아시아로만 따져도 한국, 중국, 일본의 신체 치수가 다 차이가 나거든요. 만 24개월로 잡아야 글로벌 시장 진입에 장애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최영 대표는 베이비앙의 성공을 바탕으로 조만간 실버 세대를 겨냥한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입니다. 브랜드명은 ‘에코리아(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로, 코리아에 에코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맞춰 베이비앙과 함께 에코리아를 두 축으로 가져갈 방침입니다. 현 에코리아 브랜드로 실버 세대 전용 기저귀와 침구류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 중입니다.”
펀비즈는 궁극적으로 ‘아시아 시장의 넘버원’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최영 대표는 전 세계 인구 74억 명 가운데 45억 명이 아시아 사람인만큼 미래 성장 가치는 아시아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시아에 터를 잡고 앉아서 아시아 넘버원도 되지 못한 상태에서 유럽이나 미국 시장까지 가서 경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내 안방을 내주고 나가는 건 미련한 짓이죠. 안방부터 장악한 후에 도전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 베이비앙은 중국은 물론 대만,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에 진출해 있으며 올해는 베트남, 몽골, 라오스 등으로 시장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해외 시장 매출 비중을 20퍼센트로 끌어올려 올해 총 매출 5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 실버 시장까지 본격 진출하여 명실공히 출산·유아용품과 실버용품을 아우르는 저출산, 고령화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게 최영 대표의 포부입니다.
이 포스트는 『그녀의 창업을 응원해』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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