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에 들어서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지역이 재생, 발전하면서 중상류층이 진입하는 경향을 나타낸 말로서, 원래 주거지역의 개발 및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쓰인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상업지역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도시개발의 역사가 선진국 도시에 비해 극도로 짧기 때문이다. 가장 발달한 도시인 서울만 해도 도시 개발이 1960년대 이후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개발지역이 50여 년이 되고, 주택의 라이프사이클이 한 바퀴를 돈 지금에 와서야 젠트리피케이션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주거에 혁신을 부른 아파트는 대부분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때의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으로 새롭게 재단장해왔기에 주거지역에서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일이 적었다. 그러나 상업지역은 매우 빠른 변화를 보이며 주요 상권들이 새롭게 탄생하고 몰락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과 문제점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가 된 것이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젠트리피케이션 자체는 부정적이지 않다.
낙후된 지역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노후화와 낙후화가 계속 진행되어 갈수록 위험한 곳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지역이 활기를 얻어 새롭게 부활하는 재생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각지에서 벌어지는 상업지역의 발전도 낙후된 주거지역이 새로운 상업지역으로 전환되며, 도시 전체에 활기와 다양성을 제공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이처럼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그 변화과정이 극도로 짧기 때문이다. 선진국 도시들에서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지던 변화가 우리는 10년은 고사하고 한 5년 만에 이뤄질 정도로 심각하게 빠르다.
이런 빠른 변화의 문제점은 단기간에 노후화된 지역의 상업적 발전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심지어 ‘쇠퇴’까지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빠른 소모는 패자들을 양산해낸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관련자인 임대인, 임차인, 부동산 중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단기적 이해 일치와 장기적 이해 상충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은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임대료와 임대차 계약 분쟁으로 인해 발생한다. 임대료와 계약 문제에서 이해 일치와 이해 상충의 문제를 살펴보자.
인천의 신포동에서 임대료가 급등하는 일이 있었다. 신포동 상권은 인적이 많지 않음에도 임대료가 60% 이상 올라서 월 100~120만 원 선이 되었다. 지역 언론의 분석기사에 따르면, 몇 년 사이에 유입된 부동산업자들이 수인선 신포역 개통 등을 이유로 외부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임대료를 조작해왔다고 한다. 즉, 외부 투자자를 유인하여 건물을 사게 한 뒤에 임대료를 높이고, 또 다시 다른 투자자들을 데려와서 같은 방식으로 하여 지역의 임대료 전체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부풀려진 정보를 믿고 시세보다 비싸게 구입하면, 투자자는 건물 매입 비용과 차입 비용, 그리고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임대료를 올리게 된다. 자신의 비용을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투자자와 임차인의 손해로만 끝나지 않는다. 임대료가 너무 오르면 입점할 사업자가 줄어들기에 상권이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며 침체하게 된다.
그런데 임대인들은 왜 이처럼 과도한 임대료를 책정할까? 여기에는 중개인들의 수입구조도 한몫을 한다. 상가 중개수수료는 환산보증금(월 임차료×100+보증금)에 요율을 곱하는데, 이때 요율의 한계선은 0.9%이다.
예를 들어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인 상가의 중개수수료는 0.9%의 요율 적용 시 108만 원이다. 중개인의 수입이 커지려면 임대료가 높아져야 하고 계약이 자주 갱신되어야 한다. 임대료가 상승하면 임대인도 좋고 중개인도 좋다. 즉 서로 이익의 방향이 같다. 그래서 임대인은 임대료를 잘 조정해서 올려주는 중개업자를 선호하며, 중개업자도 임대인에게 임대료를 올리라고 권하게 된다. 이것은 중개인이 사악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현행 제도와 부동산 중개업의 치열한 경쟁이 불러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변화가 별로 없는 동네라면, 임대인과 중개인은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의 임대료가 적정한지를 알고 있기에 무리한 인상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데 외부로부터의 변화로 인해 임대료가 오를 것으로 기대될 경우, 임대료를 올릴 경제적 유인이 생겨나게 된다.
신포동의 경우 (실제로는 예상 수요객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인선 신포역 개통이 호재로 작용하여 시장의 기대감을 높였다. 대부분의 뜨는 상권들도 외부에서 오는 변화로 인한 기대감으로 임대료 인상 랠리가 벌어지게 된다.
이 포스트는 『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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