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 중개인과 함께 상가의 이해관계자 중 한 주체인 임차인은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이기만 할까? 상가 임차인을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자로만 보는 시각은 현실을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임차인은 희생자이자 가해자이며 촉진자이다. 임차인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발생시키는 이해관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 그러한가? 바로 권리금 때문이다.
2014년에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권리금의 유형을 바닥권리금, 영업권리금, 시설권리금, 이익권리금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각 권리금의 특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근거가 매우 희박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닥권리금’은 장소적 이익을 토대로 형성되는 것으로, 최초의 상가분양 시 임대인이 임차인으로부터 받는다. 그런데 사실 장소적 이익은 이미 임대료에 반영되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바닥권리금을 받을 것이아니라 그것만큼 보증금과 임대료로 반영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권리금을 받는 것은 그 근거가 부실하다.
‘영업권리금’은 영업 노하우와 거래처 등의 가치에 대한 권리금이다. 영업권리금은 새 임차인이 기존 임차인이 운영하던 사업 자체를 인수하고, 단골고객과의 연결고리와 영업비법을 전수받아야 인정된다. 기존 가게를 엎고 업종이나 품목이 바뀌면 인정되지 않는다.
‘시설권리금’의 경우 임차인이 기존 임차인이 투자한 시설과 설비를 인수하는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대개는 새 임차인이 설비를 인수하지 않고 철거하거나 중고시장에 판매하므로 시설권리금 또한 근거가 희박하다.
‘이익권리금’은 허가권을 같이 거래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지불한다. 이 또한 기존 임차인과 새 임차인 간의 사업 연속성이 있을 때에 수긍할 수 있는 권리금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이와 관련이 없다.
권리금은 이처럼 존립 근거가 희박하다.
물론 사회적으로 시설 및 설비 투자가 적을 때, 권리금의 보호는 적절한 수준의 투자를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얼마 안 된 시설과 설비를 금방 다시 뜯고 재설치하는 등 오히려 사회적 낭비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임차인들이 사업적 측면에서 선각자인 것은 아니다. 사업자마다 감내하려는 리스크 수준이 다르고, 그에 따라 서로 다른 업종과 입지를 선택한다. 상권을 키워내는 뛰어난 임차인들은 대부분 리스크 추구형이다. 그런데 어떤 임차인들은 상권의 활성화 과정에서 무임승차를 하여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사업 자체에는 열의가 별로 없고 대충하면서 ‘권리금 장사’를 노린다.
어떤 가게가 권리금 장사를 노리고 들어온 곳인지는 명확하게 짚어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소 의심되는 곳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상권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가게들을 종종 볼수 있다. 영업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이 자리에서 이걸로 장사가 되나 싶은 가게나 간판만 달린 가게의 경우, 대체로 그 상권의 발달에 올라타려는 무임승차자일 확률이 높다.
경리단길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평당 권리금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될수록 상권에 진입하려는 경향이 높아졌고, 과도한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더 오래 영업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임대료가 너무 높아서 남는 수익이 거의 없더라도, 권리금 상승을 통한 차익을 보려는 투기적 시도로 볼 수 있다.
임차 사업자의 투기적 행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상권을 황폐하게 만든다. 첫째, 상권에 진입할 수 있는 사업자의 수는 정해져 있다. 그런데 권리금 상승을 노리는 투기적 사업자가 진입하면, 사업 그 자체에 목적을 둔 다른 이들의 진입이 막힌다. 투기적 사업자들은 사업 자체에 초점을 두지 않으므로 경쟁력이 없는 사업을 하기 마련이며, 결국 상권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둘째, 투기적 사업자가 권리금을 크게 높일 경우,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자가 진입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상권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높은 임대료와 권리금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대형 프랜차이즈일 가능성이 높기에 상권이 단조로워지는 것이다. 단조로워진 상권은 결국 천천히 쇠퇴를 맞게 된다.
권리금이 만들어내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권리금은 사업수익과는 다른 일종의 자본수익이다. 그래서 돈만 있다면, 자영업을 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도 사업에 뛰어들게 만든다.
불과 1년도 못 갈 유행 아이템들이 길거리에 범람하고, 매해 물갈이가 되는 근본원인 중의 하나가 권리금이다. 어차피 그런 사업들은 누구도 오래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프랜차이즈 사업 설명회에서 “생각만큼 잘되지 않더라도 권리금으로 충분히 뽑습니다”라는 말을 대놓고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유행 아이템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이미 권리금 상승을 고려사항으로 넣는 경우가 많다.
권리금 차익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작 상품과 서비스 자체에는 신경쓰지 않는 사업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상권은 이런 가게들이 많아질수록 다양성과 특색이 없어지며,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이탈하게 되고 저부가가치 서비스의 격전지가 된다. 바로 이런 무임승차자들이 젠트리피케이션과 상권의 황폐화를 만드는 또 하나의 주범이다.
이 포스트는 『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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