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가 물었다. “사회는 고착화되고, 경제는 불황이며, 지식만으로는 더 이상 운명을 바꾸지 못하는데 우리는 뭐하러 공부를 하는 겁니까?”
나는 이 질문이 마음에 들었다.
단조롭지만 망망한 미래.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럼 한번 질문해보겠다. “지식은 정말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이전 세대에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과 그 후손들은 재벌이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제아무리 ‘격동의 시대’라 해도 저소득층이 역습을 노리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게다가 실제로 역습을 노렸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학벌이 그리 높지 않았다.
어쩌면 운명을 바꾸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공부하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모종의 잠재력일지도 모른다.
어떤 노인이 젊고 아리따운 여자와 재혼을 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임신을 했고, 노인은 기쁜 마음에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에게 물었다. “나는 이미 늙어서 능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부인이 임신을 한 게 정말입니까?”
의사는 대답 대신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한 사냥꾼이 사냥을 위해 산에 올랐는데, 뒤늦게 장총 대신 우산을 챙겨왔음을 알았다. 그때 갑자기 곰이 나타나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사냥꾼은 급한 마음에 우산을 쐈는데,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곰이 쓰러졌다.
노인이 말했다. “그럴 리가요. 다른 사람이 총을 쏜 거겠죠.”
“맞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이제 이해를 하셨군요.”
누군가는 사냥꾼이 곰을 향해 겨누던 우산을 보고 또 총성과 함께 쓰러진 곰을 보고, 우산이 굉장히 무서운 살인 무기라고 여길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지식을 습득한 후 경제적 여유를 얻은 사람을 보고 지식이(엄밀히 말하면, 졸업증서 혹은 자격증 한 장뿐이겠지만) 운명을 바꾸기에 충분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증명서는 우산과 같다. 설령 그게 지식이라 쳐도 총알이 없는 빈총일 뿐이다. 증명서 한 장 혹은 그저 그런 지식 한 토막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과도하게 긍정적인 것이다.
지식이란 무엇일까? 지식(知識)이란 세상에 대한 기본적 인지이다. 배운 것(知)을 깨우친다(識)는 말이다. 배운다는 것은 그저 한 가지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깨우친다는 것은 깊은 곳까지 닿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지’보다 ‘식’이다.
깨우침을 얻으면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의 일을 모두 알 수 있다. 그러나 배움만 있다면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배움은 죽은 지식이다.
교육은 인간의 환경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는 있다. 행동은 머릿속 생각이 밖으로 표출된 결과이기에 바른 생각이 바른 행동을 만들 것이다. 바른 행동이란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가치 있는 일로, 자연스럽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렇듯 우리의 행복과 고통이 사고방식에 의해 결정됨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이다. 누군가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전면에 나선다. 반면 폐쇄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당면한 문제와 상황, 자신이 맡은 일, 심지어 주변의 무생물들까지 전부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문제 상황에서 전자는 흥분하여 문제의 난이도를 좀 더 올릴 수 없을까 고민하는 반면, 후자는 자신이 힘들고 불공평한 일에 맞닥트렸다는 생각에 한탄한다. 이 두 유형의 사람이 인생에서 성취하는 것은 당연히 하늘과 땅 차이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교육은 전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더 뛰어난 지능 구조와 능력을 갖추도록 하여 인생의 난제를 해결해나가게 한다. 교육이 후자를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형편이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할 뿐이다. 폐쇄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교육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자유를 속박한다고 여긴다. 교육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체면치레만 하려 한다.
교육의 본질을 벗어난 이런 생각들이 타인은 물론 자신까지 속이는 관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식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같은 의혹들 말이다.
지식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했을 법한 질문이다.
그럼 어디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얼마큼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그것으로 몇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며, 몇 사람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가?
현재 우리 사회는 공부를 많이 해도 써먹을 곳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보다 보편적인 것은 만약 누군가 지식을 습득하고 그에 맞는 가치를 창조한다면 그것이 사회 속에서 연쇄 반응을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인생을 즐기느라 지식과 운명의 관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 질문의 근저에 깔린 의미는 이런 것이다.
‘내가 가진 이 증명서로 대충 편하게 먹고살 수는 없을까?’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 한 장을 지식의 개념으로 치환한 것이다.
그러면 질문이 한층 고급스러워 보일 뿐만 아니라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사회적 불공평은 분명히 존재한다.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로 인한 피해자 역시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폐쇄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이러한 상황을 만들고 피해자를 자처한다.
가장 좋은 교육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사고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에서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사람, 사회적 불공평 속에서 고통받 지 않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포스트는 『그럼에도 사는 게 쉽지 않을 때』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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