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형님이 출소한 날. 밀수로 잡혀 들어가 물건을 어디에 숨겼는지 끝까지 비밀을 지킨 탓에, 20년 형을 받고 오늘 드디어 출소했다. 형님은 곧장 교외로 나가 물건을 숨겨둔 곳을 찾아 땅을 파서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냈다. 형님은 상자를 보자마자 몸을 덜덜 떨며 내 손을 꼭 잡더니 말했다. ‘이제 우리는 부자가 되는 거야. 지금까지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어. 우리 앞으로 잘 살아보자!’ 우리는 행복의 눈물을 흘리며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삐삐(무선호출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손발이 닳도록 고생해 스스로 회사를 세우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회사를 키웠어요. 인터넷 시대가 열릴 무렵에는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타오바오, 웨이보, 위챗, 애플리케이션까지 각종 비즈니스 플랫폼에 빠짐없이 진입했어요. 만들 수 있는 것은 다 만들었지만 효과는 생각만큼 없었어요.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간신히 내 차례가 됐다 싶으면 금세 또 바뀌어버리죠. 그러니 꽁무니만 죽어라 따라갈 수밖에요. 지금 이 시대는 너무 혹독해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헛수고를 하는 운명이에요.”
나의 강연을 들으러 온 모 기업체 사장의 말이다.
그렇다. 모든 것이 변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최신의 흐름을 따르자니 죽을 것 같이 힘들고, 그렇다고 가만히 멈춰 있자니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 같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거라면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치타는 사냥을 할 때 곡선을 그리며 뛴다. 물수리는 사냥할 때 곧장 물고기에게 날아가는 게 아니라 그보다 약간 앞쪽을 노린다. 왜 이들은 직선으로 접근하지 않는 걸까? 직선거리가 가장 짧은데 말이다.
직선거리가 가장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냥감들은 움직이고 있다. 만약 사냥감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간다면 가까이 가기도 전에 사냥감은 도망을 갈 것이다. 움직이고 있는 사냥감에게 접근할 때는 반드시 그 이동 속도와 방향을 계산해서 그보다 조금 앞쪽을 노려야 한다. 물수리의 사냥은 본능이다. 다시 말해, 하등 생물의 본능이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며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은 때로 이런 본능조차 없어 보인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삐삐 형님의 이야기에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 게임 산업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것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을 알아채지 못한 사람, 자식의 재능을 몰라보고 무시한 사람 모두 치타나 물수리만 못한 것이다.
어째서 사람들은 이런 본능을 상실한 채 산업사회에서 쫓기기만 하다가 지쳐서 한탄하는 신세가 되는 걸까? 그 이유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에 얻은 이익이 우리의 생존 지혜를 상실하게 만든 데 있다.
나 뮤지컬 배우고 싶어. - 그걸 배워서 뭐하려고?
나 지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는다. - 그걸 읽어서 뭐하려고?
나 바흐 칠 줄 알아. - 그걸 쳐서 뭐하려고?
나 멀구슬나무를 구분할 줄 알아. - 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차이캉융이 쓴 ‘<그걸 뭐하려고?>라고 묻지 말자’는 글의 일부다. 단시간에 경제적 부를 거머쥔 사람들은 마치 인형처럼 누군가가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그걸 뭐하려고?”라고 묻는다는 내용이다.
차이캉융은 이런 질문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은 뭘 하려고만 사는 게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모든 일에 용도를 묻는 사람은 본능의 지혜를 상실한 사람, 야생동물보다도 가여운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일에 용도를 묻는 사람은 자신의 머리가 멈춰진 상태인 탓에 이 세계 역시 정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고가 고착화되어서 세계 역시 고착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했을 때 일이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한 여성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걸 발견해서 뭐하려고요?”
패러데이는 비통했다. “부인, 아이는 낳아서 뭐할 겁니까?”
그 무엇보다 새롭고 경제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에 주목받을 물건은, 현재 시점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성장 중이다.
인터넷 시대에서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도 늘 한발 늦는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은 꽃이 만개한 후에야 꽃밭에 도착했다. 한바탕 바람이 쓸고 간 후 감상하려다 반 박자씩 뒤떨어져, 자신의 차례가 오면 이미 모든 규칙이 바뀌어버린 뒤였던 것이다. 사실 자신의 차례에 규칙이 변한 것이 아니다. 규칙은 계속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과거 생소하고 쓸모없어 보였던 것들이 서서히 주류가 된 것뿐이다.
원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스로 자신의 근시안적 태도를 바꿔야만 새로운 시대에 앞서나갈 수 있다. 이러한 인생이 즐겁고 유익한 것은 물론이다.
결핍에는 관성이 있다. 결핍은 사고의 관성을 부른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누군가는 여전히 삐삐 혹은 어떤 직업이나 인생 방향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을 가지고 있다. 다만, 방향이 다르고 무게가 다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성찰하지 않는 삶이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결핍의 관성이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이미 도태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자신을 정확히 성찰한다 해도 자신의 결함을 발견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타인의 결함을 발견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으면서, 오직 자신의 그것만 몰라보는 것이다. 눈으로 만물을 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필요하다. 친구의 독설과 지혜로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에게는 자조적 유머의 지혜가 필요하다. 친구의 무정한 반대에 부딪혔을 때 무작정 대립하지 않고 자조적인 태도로 난관을 헤쳐나간 후 차분히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은 무상하며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 완벽해 보였던 목표가 내일 수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성공의 길은 반드시 곡선을 그린다. 그러니 무리해서 직선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주변을 살피고, 인생의 진로를 조정해야 한다.
반드시 기억하라. 이 모든 변화 속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 간 교류밖에 없다. 모든 변화는 이 교류를 둘러싸고 발생한다. 이 점만 잊지 않는다면, 어떤 것이 유지되고 어떤 것이 눈 깜짝할 새 사라질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인생에 헛수고란 없다. 우리 인생에서 어떤 것이 쓸모없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 쓸모없는 것이며 우리 인생의 가치가 아직 거기까지 개발되지 못한 탓이다. 우리의 가치가 개발되어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 과거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감춰진 잠재력을 드러낼 것이다.
이 포스트는 『그럼에도 사는 게 쉽지 않을 때』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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