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죄책감이 지출을 줄여줄까?
저는 어릴 때부터 ‘돈은 아껴 써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는 진짜 부자들이 얼마나 검소한지를 늘 말씀하셨고, 절약하는 생활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돈을 쓸 때마다 부모님처럼 아끼지 못하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필요한 곳에 돈을 쓸 때도 찝찝한 마음이 들었고, 누군가 나를 비난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간혹 장거리 택시를 타거나 예쁘지만 쓸모없는 ‘쓰레기’를 구입하면 괜히 찔려서 변명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런 소비에 대한 죄책감이 지출을 줄여주었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제 경우에는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돈을 쓰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가득하니 온전히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돈을 쓰면서도 쓴다고 인지하지 못했고, 이는 남들만큼 쓰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남들만큼 누리지 못한다는 박탈감을 상쇄하기 위해 충동적인 소비를 했고, 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았을까 싶어 스스로가 안쓰럽기도 합니다.
먹고 살려면 누구나 그 정도 돈은 쓴다
‘돈은 안 쓰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요? 제가 이러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난 시점은 어디에 얼마만큼 쓰는지 직접 따져보면서부터입니다. 과거에는 남은 돈이 많으면 많이 쓰고, 적으면 적게 쓰는 생활을 했기에 평균적인 생활비가 얼마인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매달 각 분야별로 지출되는 비용을 파악해보고, 몇 달에 한 번씩 드는 비용들도 월간 비용으로 환산하여 생활비를 구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항상 아껴 쓰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나란 인간은 충분히 많은 돈을 쓰며 살고 있었으니까요.
어디에 많이 낭비를 해서도, 쓸데없는 곳에 돈을 써서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현대 사회에서 한 명의 인간이 생활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기 마련이었던 거예요. 그게 잘못일 리도, 문제일 리도 없습니다.
내가 번 돈, 눈치보며 쓴다?
하지만 절약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때 모든 소비는 잘못이 됩니다. 나에게 어떤 가치를 주었고 어떤 만족감을 주었는지와는 관계없이 저렴한 것, 안 쓰는 것이 우선이 됩니다.
또한 절약을 중시한다고 해서 정말 돈을 안 쓰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돈을 쓰는 게 불편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우회하여 소비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돈을 쓰더라도 돈 나가는 기분이 덜 느껴지는 신용카드 할부를 이용합니다. 월급은 아껴야 하는 돈, 상여금은 낭비해도 되는 돈으로 여기고 상여금으로는 그동안 구입하지 못한 것들을 쉽게 구매합니다. 그동안 못 샀던 물건을 산다는 점이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왜 내가 떳떳하게 번 돈을 당당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자꾸만 눈치를 보느냐는 것입니다.
할부가 되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물건이면 구입할 수 있습니다. 할부가 되더라도 찜찜한 물건은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상여금 100만원도 월급 100만 원과 똑같은 가치를 갖는 나의 소득입니다. 월급이라도 원하는 게 있다면 구입할 수 있고, 상여금이라도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구입을 망설여야 합니다.
돈 참 잘 썼다,고 느껴보자
때문에 내가 우선인 돈 관리에서는 절약보다는 만족을 먼저 살펴보자고 제안합니다. 무조건 적게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지불한 만큼 만족감을 얻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금액이 적든 크든 내가 지불한 만큼 대가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면 저절로 소비를 줄이게 됩니다. 옆에서 아무리 쓰라고 해도 내가 손해 보는 일은 싫기에 그러한 말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반면에 쓰고 나서도 두고두고 만족스러운 소비는 후회가 없습니다.
‘돈, 참 잘 썼다’ 하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이러한 소비는 돈쓰고 난 후의 허탈함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해줍니다.
절약이 무조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내가 쓰는 돈은 전부 만족스럽다, 그런데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절약은 피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먼저 줄여야 하는 부분은 ‘보다 덜 만족스러운 소비’입니다. 때문에 내가 우선인 돈 관리에서는 만족이 절약보다 우선입니다. 돈을 만족스럽게 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소비의 만족도를 살피는 일은 신중한 소비를 위한 충분한 기준이 됩니다.
이 포스트는 미스 페니의 『나의 첫 번째 머니 다이어리』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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