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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는 고구려 정복을 위해 어떤 무기를 준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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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창의 시대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의 무기는 어떠했을까요? 수나라 역시 환두대도 형태의 직도를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국식 곡도는 당나라 때부터 유행하게 됩니다.
또한 중국식 전통 무기인 모와 피에서 더욱 진화된 이 수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합니다. 이후 창은 모든 병기들의 왕으로 일컬어지며 전쟁터나 무술세계에서도 군림하게 됩니다. 창은 19세기 말, 화약무기가 냉병기를 몰아낼 때까지 병기의 왕좌를 지켰습니다.

공성무기 종합세트

수나라는 산성 방어 위주의 고구려군을 공략하기 위해 공성무기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먼저 높은 고구려 산성을 공략하기 위해 높이 40미터의 접이식 사다리인 운제를 만들었습니다. 운제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규모가 훨씬 작았고 화공에 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수나라는 운제를 대형화하고 겉에 진흙을 발라 화공에도 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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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피차는 성벽 가까이 접근해서 땅을 팔 수 있도록 만든 장갑무기인데, 성 아래로 터널을 만들어서 몰래 진입하기 위한 공성무기입니다. 전통의 공성무기인 발석차당거도 빠질 수 없습니다. 발석차와 당거는 로마군의 트레뷰셋 투석기와 아리에스파성추에 해당하는 무기였습니다. 수나라군이 사용한 발석차의 사거리는 약 80미터였습니다. 수나라군은 고구려 성벽 앞에 아예 대규모 진지공사를 해서 성벽과 같은 높이의 고정식 공성탑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당시 수나라는 운하를 팔 정도로 매우 앞선 토목공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기술력을 십분 활용한 공성법이 당연히 존재했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역시 중국판 헬레폴리스인 ‘8륜 누차를 사용했습니다. 한마디로 수나라는 고구려를 공략하기 위해 공성무기 종합세트를 완벽하게 갖춰놓고 있었습니다.

거대군함 300척


마지막으로 수나라 군사들은 어떤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넜을까요? 그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수나라는 거대한 5층 누선을 제작해 사용했습니다. 최대 1,000명의 군사를 태울 수 있는 그야말로 거대한 군함이었죠. 이런 전함이 무려 300척이나 되었다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수나라 군대의 규모는 100만을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이에 맞서는 고구려군의 규모는 안타깝게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시 고구려 인구가 얼마였는지, 고구려 군대의 규모가 얼마나 됐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포스트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 1. 고대편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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