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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재위 25년 동안 1,112건의 살인사건을 검토했다고?

인문 교양 읽기/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2

by 스마트북스 2021. 5. 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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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최 여인이 남편의 당질(사촌형제의 아들)인 조광신과 몰래 간통하다가, 며느리 박 여인이 자신의 추한 소문을 퍼뜨릴까 봐 겁이 나서 목을 조르고 이어 칼로 찔러 그날로 죽게 하였다.

[상처] 목 아래 찔린 자국이 있고, 귀뿌리가 검푸르고, 목덜미와 목에 목맨 자국이 있다.
[실인] 스스로 목을 칼로 찌른 것이다. 을사년 11월에 옥사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박 여인의 남동생 박용해가 사연을 왕에게 호소했다.

1785년에 <심리록> 15권 황해도 편에 실린 살인사건 기록의 일부다.
처음에 며느리가 죽은 사인은 스스로 칼로 목을 찌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자살하도록 만들었다고 결론이 났다. 그런데 목맨 시신의 목에 칼로 찔린 상처가 있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해 다시 조사했다. 하지만 이미 죽은 며느리를 매장해버려 제대로 조사하기 어려웠고 1년이 흘러갔다.
그 사이에 관찰사도 바뀌고 사건이 흐지부지되었다. 이에 며느리 박 씨의 남동생 박용해가 사연을 국왕에게 호소하여 사건을 다시 수사하도록 했다.

정조가 암행어사까지 보내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살인자가 시어머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칼로 찔러 죽이고 목매달아 자살한 것으로 위장한 것이다.

 

정조, 재위 25년간 1,112건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다

<심리록>1776년부터 1800년까지 정조가 재위 25년 동안 심리한 사형 죄수들의 판결 내용을 모은 책이다. 정조는 살인사건에 대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사람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일이 검토했다. <심리록>에는 모두 1,112건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사건 개요와 함께 조사 보고, 왕의 판결까지 상세히 실려 있다.
반드시 세 명 이상이 수사에 참여하고 사건현장 및 주변인의 진술도 모두 꼼꼼하게 기록하도록 했다. 또한 요즘의 과학수사만큼이나 과학적인 수사를 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는데, 처음에는 술 먹고 다리를 건너다 헛디뎌 사고사로 죽은 것으로 판단했으나, 시신을 검안하니 물에 빠지기 전에 이미 독약을 먹고 죽은 것이 밝혀져 범인을 찾아낸 경우도 있다.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억울함이 없게 하라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법의학

조선시대에도 법의학서가 있었다
시신을 검안해 어떤 독으로 죽었는지, 죽은 시간은 언제인지, 살인에 사용된 흉기는 무엇인지 등을 알아낼 수 있었다. 1748년 출간된 <증수무원록>에는 시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죽은 원인은 무엇인지를 검사하는 방법과 재료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무원록>원통함이 없도록 한다’는 뜻이다.

증수무원록언해

독극물 검사를 할 때 사용하는 것을 법물(法物)’이라고 하는데, 은비녀, 술지게미, 식초, , 소금, 매실과육 등이 사용되었다. 은비녀는 순도 100퍼센트로 공식적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혹시라도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순도가 떨어지는 은비녀를 사용하면 독극물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극물 검사의 또 다른 방법으로 반계법(飯鷄法)이 있다. 반계법은 닭에게 밥을 먹이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흰밥 한 덩이를 시신의 입안과 목구멍에 넣고 종이로 덮어두고 한두 시간 후에 꺼내서 닭에게 먹인 뒤, 만약 닭이 죽으면 독살로 판단한다. 가끔 반계법에 사용된 닭을 잡아먹고 사망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어서 절대 먹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인 범인이 증거물인 칼을 물로 씻어 핏자국을 없앤 경우 요즘 같으면 루미놀을 사용해서 혈흔 반응을 살필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 루미놀이 있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증거물을 확보했을까?
살인도구로 사용된 칼을 물로 씻어내 핏자국을 없앴다 하더라도, 그 칼을 숯불로 뜨겁게 달군 후 고초액이라고 하는 진한 식초를 부으면 핏자국이 나타난다고 한다. 당시 진한 식초가 루미놀의 역할을 한 셈이다(고초액에 철과 반응하는 성분을 넣었다는 설도 있다).

_ 이 포스트는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21조선을 보는 또 다른 창, 실용학문(안나미)’ 44~46쪽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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