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해외출장을 다녀온 혁준 씨는 어젯밤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출장은 정말 강행군, 바이어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출장지 도착 첫날, 바빠서 연락이 어려우니 한국에 도착하면 전화하겠다고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낸 게 전부네요. 혁준 씨 여자친구는 출장 기간 내내 일에 방해가 될까 봐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젯밤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긴 한 건지. 연락을 기다리다 지쳐서 잠이 들었고 아침에 전화를 했더니 전화기도 꺼져 있네요. 저녁이 다 되어서야 연락이 닿았습니다. 여자친구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이제 그만 화 풀자.” “뭘 잘못했는지 알기는 하는 거야?” “연락 못 해서 미안하다고. 너무 피곤해서 그랬다고 했잖아.출장 가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했어.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는데 그러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되냐?네가 이해 안 해주면 난 어디 가서 내 편을 찾겠냐?” 실제 많은 청춘남녀가 겪는 장면 아닌가요. 남자는 사과를 했는데, 여자는 도무지 화를 풀지 않습니다.
진짜 화가난 이유, 진짜 잘못한 것
여자친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냥 미안하다는 말이 아닙니다.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사과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력이 부족한 남자 혁준 씨는 사과를 했으니 됐다고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청춘남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사람 사이에 오해가 자주 생기기도 하고요. 어떻게 오해를 풀고 어떻게 사과를 하느냐에 따라 실수를 범했던 사람과 더 친해질 수도 있고, 관계가 완전히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과를 한다면서 변명을 하거나 핑계를 대면, 사과를 받는 쪽에서는 상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고 더 큰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사과의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으며, 그 실수로 상대방이 어떤 상처나 수고를 겪게 되었는지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사과는 그 순간의 어정쩡함이나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여자친구가 화난 이유는 단순히 연락을 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남자친구가 바쁜 것, 피곤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화가 난 것은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자친구가 걱정하고 연락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무시해 상처를 입은 것이지요.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네가 걱정하고 연락 기다릴 줄 알면서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전화를 안 해서 많이 속상할 거야. 나였어도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것 같아. 어떤 변명도 하지 않을게. 용서해줘.” 여자친구가 왜 상처를 받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사과가 진심으로 다가설 수 있습니다.
현재의 일에 과거를 끼우지 말 것
하지만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 대한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사과하면서 “예전에 너도 그렇게 해서 서운하게 했잖아”라는 식으로 토를 달면 싸움은 더 커지게 됩니다. “그래, 미안해. 생각이 짧았다. 네가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는 점 이해할게. 그런데 지난번에 너도 가족여행 갔을 때 연락 안 했잖아. 그때 난 쿨하게 넘어갔어. 그러니까 이번에 너도 좀 넘어가.” 이렇게 과거의 일이 끼어들면, 이제 둘은 과거의 일을 하나둘씩 꺼내 싸우는 순서로 넘어가게 됩니다.이런 사과는 안 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생각을 해야 진짜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내가 판단하지 말 것
사과는 내가 아닌 상처받은 상대방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행동으로 서운했다거나 상처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점을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관점에서 그걸 아니라고 부정하면, 그건 사과가 아니라 해명이 됩니다. 사과는 상대방이 입었을 상처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감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설득하려 하면 역효과가 납니다. “내가 전화 안 한 것은 맞아. 그 점은 사과할게. 그런데 겨우 전화 때문에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오버라고 생각해. 내가 얼마나 너를 존중하는지 그건 너도 알잖아?” 상대방의 감정은 그의 고유한 것이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의미가 없고, 상대방이 그렇게 느꼈다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사과가 아니라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제대로 사과하는 3가지 스텝
여기서는 남녀 사이의 문제를 소개했지만, 사회생활에서 사과할 때도 꼭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실수 후 사과를 잘못해서 문제를 훨씬 더 키우고, 심지어 자리마저 위태로워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봅니다. 기억해두세요. 사과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둘째, 지금 벌어진 그 일에 집중해야지 과거의 다른 일을 꺼내면 안 됩니다. 셋째, 상대방이 느꼈을 감정이나 기분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사과를 받는 사람은 사과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고, 사과를 진심이 없는 면피용 말이라고 간주하게 됩니다. 싸움은 더 커지고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