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평범해요"의 함정 _ 출발점 차이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부모의 지원으로 사업자금을 확보하기에 유리한 사람도 있고, 인적자원이 남들보다 훨씬 풍부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출발점의 차이는 비즈니스에서 초반의 유불리를 가르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학벌이 대표적인 예이죠. 학벌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학벌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학벌이 좋긴 해도, 딱히 이득 본 게 없다는 뜻이겠죠. 이 주장의 함정은 그들이 학벌 나쁜 환경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학벌로 인해 얻은 혜택을 노력으로 쟁취한 것, 혹은 당연한 것 정도로 믿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더 나은 출발점을 가졌다는 것은 명백한 우위입니다. 비즈니스는 남들보다 우위를 가진 요소로 경쟁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위가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고, 그것을 통해 경쟁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데 출발점의 차이를 부정하거나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업가라면, 자신의 노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출발점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심 탈레브는 이런 현상을 “1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 이 사는 아파트에서 100만 달러 연봉자는 자신을 가난뱅이라고 느낀다”라는 통찰력 넘치는 비유로 요약한 바 있습니다. 100만 달러 연봉자는 누가 뭐래도 최상위 소득자에 해당하지만, 1천만 달러의 연봉자에 비교하면 한참 모자라다고 느낄 수밖에 없죠.
너도 나도 다 서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서민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서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재미있습니다. 우선 서민의 의미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0%가 ‘소득이나 재산이 적은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소득이나 재산이 적다는 건 자의적 판단이죠.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라 자신의 내적기준을 통해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통해 자신을 서민이라고 답한 사람은 67%입니다. 이는 실제로는 빈곤층이지만 자신을 서민으로 여기는 사람, 중산층이지만 서민으로 여기는 사람을 모두 포함한 수치입니다. 자신을 서민이 아닌 중산층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겨우 29.7%에 불과합니다.
고소득층은 과소평가, 저소득층은 과대평가
위 그래프는 300명을 대상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경제적 지위와 실제 지위를 조사해 비교한 것입니다. 그래프에서 1분위는 소득 하위 10%이고, 10분위는 소득 상위 10%입니다. 또한 소득 5분위와 6분위를 가르는 지점이 전체 소득의 중간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식이 실제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면,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응답자가 생각한 경제적 지위가 모든 분위에서 고르게 10%에 가깝게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실제와는 완전히 어긋나 있습니다. 자신이 5분위에 해당된다고 답한 사람이 32.7%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21.7%는 4분위라고 답했으며, 6분위에 해당한다고 답한 사람이 15.3%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저소득층인 소득 1, 2분위라고 답한 사람들도 각각 3.7%, 3.3%로 실제 분포보다 크게 적었습니다. 다시 말해 고소득층은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과소평가하고, 반대로 저소득층은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평균?
조사대상을 키워서 살펴볼까요. 우리나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와 국가에 대한 생각과 인적조사를 실시하는 한국종합사회조사 설문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항이 있습니다.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과 비교했을 때, 귀댁의 소득은 평균보다 어느 정도 높다고, 또는 낮다고 생각하십니까?
① 평균보다 훨씬 높다.
② 평균보다 약간 높다.
③ 평균이다.
④ 평균보다 약간 낮다.
⑤ 평균보다 훨씬 낮다.
자신의 소득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묻는 것으로 소득 분위를 직접적으로 정하고 묻는 질문은 아니지만, 평균을 기준점으로 다섯 개의 영역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소득 5분위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 이 질문에 응답한 14,688명의 응답 비율을 살펴보면 역시 ‘평균’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고, 양쪽 1분위와 5분위로 갈수록 줄어드는 분포의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5분위 기준이라면 실제 분포는 각 구간이 모두 20%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즉, 조사대상을 1만 4천 명 이상으로 늘려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각각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과소평가, 또는 과대평가하는 현상은 동일하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자, 남들보다 앞선 출발점을 가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신들이 가진 우위를 과소평가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자신의 출발점이 남들과 동일하다고 여깁니다. 그들이 평가하는 자신의 위치는 결국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 중에서의 위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회 전체의 평균과 자신의 소속집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득과 여러 우위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도 진짜 성공 이유를 모른다?
이득과 우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시각을 갖추지 못한 사업가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관련 이야기를 할 때죠. 남들에 비해 명백한 우위를 가지고 출발했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우위가 없었으며, 오롯이 자신의 노력과 투입의 결과라고 실언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 사람들은 과거처럼 노력을 과대포장하는 것에 그리 관대하지 않습니다. 다른 계층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그런 주장의 문제점을 단번에 짚어낼 수 있습니다. 이는 사업가와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늘려도 모자랄 마당에 스스로 깎아먹는 것은 매우 큰 문제입니다.
둘째,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전파합니다.
남들보다 더 나은 출발점에서 성공의 우위를 확보하고 성취를 이루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폄하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우위를 모두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잘못된 믿음을 널리 전파하는 것은 예비 사업가들로 하여금 무리할 정도로 큰 위험을 부담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출발점의 차이는 분명 성공에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 이 차이를 제대로 언급하지 않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사업가의 발언을 조심하세요. 그가 밝히는 성공 이야기는 많은 부분이 자신의 노력과 자신이 겪은 고생으로 윤색되어 있을 것이고, 그 사람도 자신의 성공 이유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포스트는 『멀티팩터 _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거짓말』 (김영준)의 내용을 바탕으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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