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평양성은 작전이었다!
요동성 공략에 실패한 수나라는 요동성을 포기하고 바로 평양성으로 가는 ‘바이패스’ 작전을 씁니다. 평양성 공략에는 육군뿐만 아니라 내호아가 이끄는 수군도 출동했습니다. 바닷길을 통해 한 발 먼저 평양성 유역에 도착한 수나라 수군은 육군의 본대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공격을 감행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수나라 수군이 평양성에 도착했는데 웬일인지 성문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죠. 수나라 수군 사령관 내호아는 이를 항복의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수나라 수군은 열려 있는 평양성에 난입해 약탈을 시작하는데 이게 고구려군의 작전이었죠. 미리 매복하고 있던 고구려군의 기습을 받아 수나라 수군은 갈팡질팡했습니다. 당시 태자였던 영류왕은 500명의 철기병을 직접 이끌고 수나라군을 덮쳤습니다. 보병 위주의 수나라군은 철기병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수나라군은 수군이었기 때문에 갑옷이 빈약한 경무장이었고, 약탈에 정신이 팔려 전투 의지도 없었죠. 수나라군은 정신없이 두들겨 맞으며 배로 도망갔습니다. 상륙했던 4만의 병력 중 돌아와 승선한 자가 겨우 수천에 불과했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른 수나라 육군
요동성 공략에 실패한 수나라 육군 별동대 30만은 평양성으로 직진합니다. 이 전투부대는 전부 보병으로 병사 한 명당 100일치의 보급품을 각자 휴대했습니다. 100일치의 보급품이라면 100일치 식량과 각종 병장기를 이고지고 갔다는 말인데, 아마도 50킬로그램은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고구려의 지형이었습니다. 드넓은 평원만을 보아온 수나라 군대에게 굽이굽이 끝이 없는 험준한 산악 지형은 지옥 같았을 것입니다. 무거운 보급품을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강행군을 한 수나라 별동대는 금세 지치고 말죠. 수나라 군사들은 각자에게 지급된 식량과 무기를 버려가면서 진군합니다. 사실 그들이 식량을 버린 이유는 현지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청야작전을 실시해 쌀 한 톨도 수나라군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했고, 심지어 우물에도 독을 타 수나라군은 극심한 갈증에 시달렸죠. 오래지 않아 그들은 군량 부족으로 굶주리게 됩니다. 그리고 굶주리고 지쳐서 기진맥진한 수나라 군대 앞에 홀연히 나타난 것은 사방에서 히트앤드런 작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날랜 고구려군이었죠. 수나라 군대는 녹초가 되어 겨우 평양성에 다다르게 됩니다.
고구려군, 치고 빠지다
이때 고구려군의 지휘관은 을지문덕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군을 두 개로 나누어 1군은 압록강 상류, 2군은 평양성 인근 대동강 하구에 배치했습니다. 이는 도박이었습니다. 둘 중 한 군데라도 뚫리면 주도권이 수나라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고구려 입장에서는 별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수나라군이 매우 지치고 굶주려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었죠.
수나라의 별동대가 평양성까지 와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내호아의 수군과 만나서 식량을 지원받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나라 수군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채 물러가버린 상황이었죠. 고구려군으로서는 다행이었지만 수나라군으로서는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지치고 굶주린 수나라군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매일 고통스러운 전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연신 이어지는 고구려군의 치고 빠지기에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죠.
살수대첩, 수공의 진실
을지문덕 장군은 모든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수나라군을 전멸시키기로 마음먹죠. 그는 시를 한 수 지어 수나라군 진영에 전달했습니다.
‘신통스런 계책은 천문을 뚫었고, 묘한 계산은 지리에 통했도다. 싸움에 이겨 이미 공이 높으니 만족하고 돌아가라.’
어떻게 보면 사람 놀리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전투에 지친 수나라군 진영에서는 전혀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이 내용을 보고 고구려가 전쟁의 패배를 자인하고 조배를 들기로 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수나라군은 서둘러 철군을 결정합니다. 황급히 돌아가면서도 이건 후퇴가 아니라 전쟁이 끝나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자위했죠. 하지만 을지문덕은 은밀히 최정예 철기병으로 몰래 이들 뒤를 쫓게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수나라군이 살수에 이르렀습니다. 살수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살수대첩의 내용은 고구려군이 둑으로 강을 막아 수나라군이 얕아진 강을 건널 때 둑을 무너뜨려 수나라군을 전멸시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과연 진실일까요? 수십만에 달하는 대병을 물로 쓸어버리려면 적어도 오늘날의 댐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발생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당시 기술로 이것이 가능했을 리가 없습니다.
살수대첩 섬멸전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당시 기록에도 수공水攻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공火攻과 수공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적을 완전히 섬멸할 수 있다는 점이죠. 이런 이유로 후대에 와서 강을 중심으로 한 전투를 얘기할 때 각색이 들어간 듯싶습니다. 추측건대 수나라군이 강을 건너는 사이에 고구려군이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나 합니다. 강을 건널 때 군대는 강을 건너는 부대와 도하를 기다리는 부대로 분리됩니다. 이렇게 분리되는 순간은 매복병에게 기가 막힌 타이밍을 만들어줍니다. 더욱이 도강하는 사이 적의 공격을 받으면 이미 강물에 들어간 부대는 그저 앞으로 빨리 나아가서 강을 건너려고 하고, 도강 직전인 부대는 얼른 강을 건너려 서둘러 강에 뛰어듭니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되는 것이죠. 아마도 수나라군은 도강 중에 고구려군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공황에 빠져 자멸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힘든 전투로 사기가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전투 의지도 없었을 것이고요.
100만 대군 중 살아남은 자 3만
위풍당당하던 수나라 100만 대군은 글자 그대로 ‘전멸’했습니다. 출진한 113만 8,000의 군사 중에 살아 돌아간 자는 2만 7,000에 불과했습니다. 중국 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평가받는 수양제는 이 한 번의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는 고구려에 복수하려고 이듬해 다시 군사를 동원했지만, 군사들은 모이지 않고 오히려 전국 각지에서 수양제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났죠. 무려 13명이 넘는 반란군 우두머리가 난립했을 정도였습니다. 수양제는 강도로 내려가 은신하고 있던 중 친위대의 반란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포스트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 1. 고대편』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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